글쓰기는 감이 아니라 공식이다.
2019년 2월부터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와서 그랬는지 블로그 창을 열면 술술 써졌다.
블로그에조차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보면 감사한 일이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컸던지라 이은대대표가 진행하는 책 쓰기 프로그램 자이언트 정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스승은 목차에 따라 초고를 쓰기만 하면 되게 바탕을 깔아주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건만, 블로그와 달리 한글파일이 주는 압박은 상당했다. 백지의 공포가 무슨 뜻인지 처음 경험하게 되었던 것.
하얀 백지 위에 놓인 커서만 연신 깜빡였다. 도통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블로그 창은 열자마자 주르륵 써나가던 나였기에 이보다 더 당황스러울 데가 없었다.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막상 화면을 열면 막막했다.
가슴속에는 울컥하는 감정도 있고, 떠오르는 생각도 분명 있었건만 그걸 꺼내어 한 문장으로 만들지 못했다.
감이 오면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글감이 있으면...
영감을 받으면...
글을 술술 풀어나갈 줄 알았다.
마음이 움직이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말하고 싶은 게 가득할 때 그게 곧 글이 되어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감정은 넘쳐났지만 글은 흐트러졌고,
생각은 깊었지만, 글은 길을 잃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감정을 꺼내는 일만은 아니었다.
글쓰기는 감정을 데려갈 틀을 만드는 일이었다.
글감이든, 영감이든 감은 흘러간다. 구조는 그것을 붙잡아준다.
따라서 글은 느낌이나 감, 문장력이 아니라 구조로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글에도 질서가 있다. 감정을 뿜어내기 전에 그 감정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듯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왜 말하는지,
어떤 순서로 말할 건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낼 것인지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느낀 진심은 글이 되지 못한 채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이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감정보다 흐름을 먼저 본다.
메시지를 먼저 정리하고,
전하려는 말을 중심에 두고,
그걸 증명할 사례나 경험을 뒷받침해 준다.
첫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한 장치이고,
마지막 문단은 독자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 위함이다.
구조를 잡아 쓰기 시작한 글은 훨씬 덜 어지럽다.
쓰는 나도 덜 흔들리고,
읽는 독자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글이란 결국,
나를 정리하는 일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는 이걸 왜 쓰는지
내가 쓴 이 글을 누가 읽어줬으면 하는지
쓰는 동안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감에만 기대어 쓰려고 하던 시절에는
내 감정만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감정은 출발점일 뿐이고,
글로 가는 길은 구조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글을 쓰는 나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