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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마녀 Jun 17. 2020

아들의 첫 여자 친구

아이를 아직 세상에 내어놓기 두려운 엄마인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다. 아이만 데리고 주말 동안 시골에 다녀온 남편이 계속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뭐가 저리 뿌듯한지...' 

  궁금하지만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도록 지켜만 보았다.


병현이한테 여자 친구가 생겼다네..?


  내가 끝까지 묻지 않으니까 못 참겠다는 듯 결국 이야기를 꺼낸다.


친구나 제대로 사귈는지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아이가 잘 지내나 봐!


  남편은 둘째 아이가 꽤나 기특한 모양이다.        


                        

  그렇다. 아이는 아프게 태어난 아이다. 구순구개열로 태어난 아이. 백일, 돌, 6살, 10살 네 번의 큰 수술을 겪어내고 5살 때부터 4년 동안 1주일에 두 번 있는 언어치료를 마친 끝에 다른 평범한 아이들 속에서 큰 차이 없이 자라고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부터 남편도 나도 걱정거리를 한 아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서로에게 말은 안 했지만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왕따, 학교폭력 등등...


  뉴스에서만 보던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어쩌면 내 아이에게도 생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컸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다르게 태어났으니까...




  아이는 우리의 생각 그 이상대로 잘 자라주었고, 비록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일지라도 자신만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주눅 들까 봐, 다른 아이들이 놀릴까 봐, 지레 겁을 먹은 건 아이가 아닌 나였다. 


  으레 학기초 상담을 가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은지 혼자 상처 받지는 않은지를 꼬치꼬치 물어봤고,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친구들과 너무 잘 지낸다는 선생님의 답변이었다. '혹시..'라는 생각에 항상 안테나가 아이에게 곤두서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건 나의 아집이었고 나만의 세계에 아이를 가두어 생각하고 있었다.


  6학년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반 회장으로 당선되어 온 것도 참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아이에게 '예전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우리 1일 하자'고 고백을 한 친구가 있다니... 이 역시 충격적이었다.


  내가 둘째 아이를 13년 동안 케어해오면서 어떤 고생을 해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지켜봐 온 남편은 그저 뿌듯하고 벅차기만 했던 모양이다. 겨우 13살짜리 아이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남편 입에서는 '평생 연애나 결혼은 못할 줄 알았는데...'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아이를 아프게 낳았다는 죄책감으로 13년 동안 아이를 케어해 온 나에게는 달갑지만은 않았다. 기쁘고 뿌듯하고 기특한 마음도 컸지만 혹여 아이가 이로 인해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기쁜 마음보다는 그 생각이 앞섰다.


애들 소꿉장난 같은 거 가지고 너무 확대 해석하기는...


  다소 들떠있어 보이는 남편에게 한 소리했지만 나도 뭐 남편과 다른 마음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입을 지모를 상처가 두려웠다. 아직도 나는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기 두려운 모양이다.


  며칠 있으면 그 아이의 생일이라며 형이 아끼는 인형을 어디에 두었냐며 막둥이에게 묻는 둘째 아이 모습을 보니 아이는 그저 좋기만 한가보다. 인기 많은 형이야 뭐 수시로 바뀌는 여자 친구지만 둘째 아이에게는 첫사랑이다. 박보영을 좋아하는 형처럼 본인 휴대폰 배경화면을 김향기로 꾸며놓더니 어느 순간부터 배경화면이 다시 기본 화면으로 바뀌었다. 내성적이고 부끄럼 많은 성격 탓에 자신의 첫사랑을 선뜻 내보이진 못하지만 그 아이 최선의 사랑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먼!




  엄마는 아이를 그저 뒤에서 지켜봐 주고 돌아보면 엄마가 항상 나의 뒤에 있다는 그 존재면 충분한 걸까? 마음 같아서는 아이 앞에서 모든 세상의 바람과 태풍을 다 막아주고 아이는 그저 내 품 안에서 온전히 안전하게 고요하게 상처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다 해주고 싶은데, 뒤에서 묵묵히 아이가 나아가고 있는 걸 바라보는 게 맞는 걸까?


  그저 혹시라도 아이가 받게 될 상처가 두려운 건 나뿐인 것 같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건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이 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아이의 그릇이 엄마인 나보다도 더 커 보여 부끄러운 어느 날, 아이의 첫 여자 친구 이야기는 나를 또 한 번 돌아보게 했다.


  아이를 통해 또 배우게 되는 불량엄마는 언제쯤 마음 그릇이 커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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