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자마녀 Jun 18. 2020

어피치를 잃어버렸다

내 옆에 있는 모든 것은 당연하게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가방 안을 이리 뒤져보고 저리 뜯어보아도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어피치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쓰던 지갑을 주워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놨더니 막둥이가 내 지갑에 붙여준 이름. 아이답게 순수하구나!(유치하구나) 아이가 불러주니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새 나도 없어진 지갑을 찾으며 어피치라고 부르니, 뜬금없긴 하다. 


헉! 세뇌당했어!

            


내가 좋아하는 어피치~~♡

                                         

몇 년 전, 큰 아이가 찍찍이로 열고 닫는 전형적인 초등학생용 지갑이 촌스럽다며 새 지갑을 사달라고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멀쩡한 지갑을 놔두고 새로 사달라는 말이 어이가 없어 살살 달래고 혼을 내고 윽박질러가며 더 쓰게 했다.


나란 사람도 참....



남편 말대로 그깟 지갑이 얼마나 한다고.... 이후 나는 내 일이 아니니까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어느새 큰 아이는 동생에게서 선물 받은 - 흡사 대학생 형아들이 쓰고 다님직한 - 지갑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엄마한테 혼나고 큰 아이가 속상해하자 섬세한 성격의 둘째 아이는 형아가 안돼 보였는지 마음에 두고 있다가 형아 생일날 대뜸 지갑을 선물했던 모양이다.


아이가 쓰다 책상 한켠에 처박아뒀지만 지갑은 멀쩡했다. 버려지기엔 아까워 변변한 개인 지갑 없이 살던 내가 주워다 썼는데 쓰다 보니 요긴했다. 가게 지갑에 내 것과 가게 것을 혼동해서 쓰다 보니 가게 돈을 내 돈처럼 쓰기 일쑤였다.


돈 공부를 시작하면서 돈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고 사업용 계좌와 급여 계좌를 분리시키는 아이디어를 획기적으로 차용했는데, 아이가 쓰다 버린 지갑 하나가 그때와 마찬가지의 효과로 나타난 것이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덕분에 지갑 안에는 크게 재정적 손해를 입을만한 무언가가 들어있지 않았다. 지갑 안에 들어있던 건 도서관 대출카드와 예뻐서 소장하던 스타벅스 카드, 그리고 운전면허증...


아! 면허증 재발급해야겠구나 ㅠㅠ
도서관 대출증도... ㅠㅠ


애지중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쓰던 거라 나름 그래도 소중했는데 보이지 않다니 서운하기 그지없다.


모든 게 그렇다. 없어져봐야 소중함을 안다. 옆에 있을 때나 항상 손에 쥐고 있을 때는 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은데, 사람도, 물건도, 돈도 항상 늘 내 옆에만 있지 않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 주변을 에워싸는 공기, 마땅히 주어진 것만 같은 자연 이 모든 것들도 그저 옆에 존재했을 때는 당연히 있어주는 것만 같은데 당연한 건 없는 거였다.


하여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고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나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잘 써야 하는 거였다. 부모님도 남편도 아이도 시간도 자연환경도 돈도 당연히 내게 와준 것이 아니었다. 이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시 한번 던지며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던져준다. 사고의 경계는 무한히 확장된다. 이전 같으면 머리 아프다며 덮어두기만 하던 질문들을 요즘엔 나 자신에게 곧잘 던지고 깊게 생각해본다.


어피치를 잃어버린 어느 날. 지갑에서 비롯된 생각의 끈은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 중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으로 이어졌다. 그나저나 운전면허증 재발급은 어디 가서 해야 하는 거지....??


이 글을 저장해 두고 며칠이 지나서 어피치를 찾았다! 세상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게, 어피치야~^^







작가의 이전글 미역국보다 엎드려 절 받기를 더 챙기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