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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Apr 22. 2024

ep.18 '아일 오브 독스'와 양고기 케밥

런던의 근사함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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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슈트 농장을 나오니 바로 앞에 거대한 '밀월 부두'가 보였다.

밀월 부두는 탬즈 강물이 거대한 '아일 오브 독스' 한가운데에 호수처럼 들어와 만들어진 거대한 부두이자 호수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아참, 아일 오브 독스(Isle of Dogs)는 직역하면 '개들의 섬'이라는 뜻으로 과거에 이곳에 야생 들개들이 많이 살았나 싶은 이름.

과거 그리니치 궁에 왕실이 살던 시절에 사냥용 개들을 이곳에서 길러서 이름이 이렇게 붙었다는 설이 있다.

아일 오브 독스는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런던 시의 신도시 개발 지역으로 카나리 와프를 비롯하여 아주 멋들어지게 탈바꿈한 곳이다.

이 구역은 꽤나 넓은데, 내가 건너온 탬즈강 터널부터 해서 북쪽의 카나리 와프 바로 아래까지로 거대한 덩어리의 반도이다.

짤막한 검색으로 과거에는 탬즈강이 수시로 범람하는 습지지대였다는 사실을 찾을 수 있었다.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륙에 물이 워낙 많아 정말로 자주 물이 들어오고 나갔던 모습이 상상이 된다.



거대한 밀월 부두
넓다.
여유로운 백조 한 마리도 함께


호수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 한 마리를 보았다.

나도 저 백조처럼 여유롭게 물을 따라 걸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카나리 와프의 마천루들이 더욱 가깝게 보였다.

벌써부터 나타나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건물들.

건축학과는 아니지만 독특하고 멋진 건물들을 보는 것이 왜 이렇게 좋은 지 모르겠다.



예쁘다! 이게 도시지!
엄청나게 핑크핑크한 컨셉의 카페. 그럼에도 창가의 아저씨 두 명 테이블이 눈에 띈다.
가격은 아메리카노 2.9 파운드 정도로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

마침 푸드트럭 존을 만날 수 있었다.

푸드트럭 존이라고 해서 야시장이나 축제가 열리는 곳을 상상하면 안 된다.

트럭 4대가 있는 정도의 아기자기한 규모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과거 파리에서 즐겨 먹었던 케밥집 기억이 나서 이번 런던 여행에서도 꼭 케밥은 한 번 먹어야겠다 다짐했었는데 마침 임자를 만났다.

사진의 하버 케밥&버거 트럭에서 식사를 해결하게 되었다.


레스토랑과 푸드트럭


푸드트럭 존에 구매한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지만, 이미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기도 했고, 이 벽돌 도심 속 호수가를 두고 평범한 이곳에서 먹기는 싫었다.

테이크아웃해서 다른 먹을 곳을 찾아보기로 결정.

물론 물가에 앉을 곳이 있다고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이런 공간에 없을 리가 만무하니까.


트럭은 중동에서 온 아저씨들이 운영하고 있어 케밥의 근본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양고기 케밥 박스밀. 일종의 세트메뉴로 음료로는 체리코크를 골랐다.

주문을 하며 그들에게 런던에서 처음 먹어보는 케밥이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들이 다 먹고 꼭 소감을 알려달라고 하며 껄껄껄 웃었다.



메뉴판
소소한 푸드트럭 존


앞 손님의 음식이 나오고 나서 내 차례가 왔다.

묵직한 봉투를 받아 들고 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생각보다 근방에 적합한 자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벤치를 발견해도 새똥 범벅이 나있어 앉을 수 없다던가,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던가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다행히 자리를 발견하고 앉았다.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장소
결국 거처를 정했다.
내 식사 뷰


쾌적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장소를 찾기보다 그냥 대충 앉아서 먹기로 했다.

마침 무료 신문지를 가방에 가지고 있던 터라 청결하게 벤치에 깔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박스밀의 구성은 훌륭했다.

케밥, 샐러드, 감자튀김, 빵 등등...

오히려 내 크지 않은 위장에는 과하고 넘칠 정도였다.

그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내가 아무생각 없이 저 중동식 빵을 내 앞에 보이는 비둘기 한 마리에게 던져줬던 것이었다.

분명 한 마리뿐이었던 내 앞의 비둘기는 순식간에 불어나 군체가 되었다.

빵을 발견한 첫 녀석이 비둘기의 언어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른 것일까.

다들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이 동네 비둘기들이 모조리 날아와 새판을 만들어버렸다.

한 조각뿐이었던 빵쪼가리는 지들끼리 물고 뜯고 하면서 여러 조각으로 찢어져 비둘기 떼를 여기저기로 산개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내쪽으로 튀어나간 일부 빵쪼가리와 그것을 따라온 녀석들이었다.

그놈들 때문에 나와 내 식사는 위협을 느껴야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심의 비둘기 떼와 청결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나는 상당히 곤욕이었다.

녀석들을 꾸준히 견제하며 밥을 먹었다.

가끔 과도하게 가까워질 때에는 녀석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도록 강한 언어로 내가 쉬운 놈이 아니라는 건재함을 어필해야 했다.

'꺼져!'



내 소중한 식사
제발 가까이 오지 마... 꺼졋!


다행히 큰 문제없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선의로 던져준 빵 때문에 아일 오브 독스 곳곳에 비둘기 똥자국을 양산하는 것에 일조했을지는 모르겠다.

어쩐지 오기 전보다 떠날 때에 얼룩이 조금 늘어나 보인다.

먹었던 쓰레기를 정리해서 옆의 공중쓰레기통에 넣었다.


식사를 마쳤으니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할 시간.

계속해서 북쪽의 카나리 와프를 향하여!

지나가는 길에 푸드트럭을 다시 지나며 아저씨에게 엄지를 들어주었다.

그러자 동북아시아인과 중동인 사이에 교감이 일어났다.

그래, 우린 크게 보면 같은 아시아인이니까.


내가 밥을 먹은 다리의 이름?
페퍼 스트리트. 이름이 귀엽다.
잘 먹었어요!



ep.1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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