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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Jan 11. 2024

왜 런던으로 갔어?

가장 근본적 고민, 어디로 떠나지?

'좋아, 떠나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뒤이어 다음의 의문이 뒤따라온다.


'그런데, 어디로?'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의 반, 타의 반, 등 떠밀려 마음먹게 된 여정이었지만, 적어도 시간을 보낼 목적지 정도는 나 스스로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주변에 '뉴욕에 한 달 살거라', '발리에서 한 달을 살아보거라' 지시할 사람이 남아있기라도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제도 아래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을 유도해 주던 선생님들과 부모님들도 모두 본연의 소임을 다하고 나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 상태였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고, 나도 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모 둥지를 떠나온 성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것을 해내는 과정에는 지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과 그것에 의한 스트레스가 동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것을 시도해 보렴', '이것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이것을 구매하면 좋을 거야', '이 종목에 투자를 해'

계속해서 누군가가 정답만을 던져준다면 얼마나 편할까?

'지금 가지고 있는 걸 모두 불쌍한 이에게 나누어 주고 고행길에 올라라'나 '오늘부터 맨몸으로 직접 나무들을 깎아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라' 같은 청천벽력 같은 계시가 아니라면야 고민과 스트레스가 없는 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살다 보면 가끔씩 모든 걸 정해진 대로 따라만 가도 되었던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기는 하다... 만,


인생에 대한 여담은 이쯤으로 다음에 또 좋은 발화 기회가 있기를 바래보고, 다시 여행계획 이야기로 돌아가자.

목적지를 정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은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 경험, 지인의 경험 등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가 결정에 큰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그저 여느 때 같이 술을 마시며 오가는 즐겁고 가벼운 안주였을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아니었고, 내가 처한 상황도 그들의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사람은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발 벗고 나서서 시간을 투자해 조사를 하고, 진지하게 내 입장에 이입해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 대화들이 내 시야를 넓혀 주는 정도의 긍정적 영향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과의 대화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사실 그들이 말한 아이템들은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당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내 조건과 성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의 일부만을 안다.

어쩌면 반대로, 내가 지레 그들이 그저 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가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0에서부터 시작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먼저 막연히 떠오르는 장소들을 리스트업 했다.

도쿄, 뉴욕, LA, 발리, 방콕, 치앙마이, 오키나와, 런던, 베를린, 어느 유럽 국가의 한적한 시골...

도쿄는 원래 좋아하는 도시고, 뉴욕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여행 버킷리스트 상위 랭크에 등록되어있는 곳이다.

런던과 베를린도 세계적인 도시이고, 발리와 방콕 같은 휴양지에서 아무 걱정 없이 유유자적 시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명화의 반열에 올려두는 '러브 액츄얼리'의 장면처럼, 작가인 제이미를 연기하는 콜린 퍼스가 가혹한 스트레스를 피해 유럽의 시골로 훌쩍 떠나 글을 쓰는 생활도 예전부터 동경하고 있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 中


그러나 내가 이 지구 반대편의 시골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너무 지루하면 어쩌지?

가서 나도 영화 속 제이미처럼 고고히 글을 쓰면 되려나?

장기 계약한 숙소에 쥐 나 바퀴벌레, 뱀이라는 계약상 존재하지 않는 동거인이 있으면 어쩌지?

일종의 동거인인 그들에게서 숙소비 일부를 받을 수 없을 것은 자명하고 무전취식하려는 그들을 내쫓을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런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심각한 문제들까지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

허나 너무 염려 말라.

살면서 느낀 진리 중 하나는 '우리는 닥치면 다 헤쳐나가게 되어있다'이다.

막상 해야 하니까 다 하더라.

30년을 살아보니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래, 못할 것 없지!


그러나 이번에는 시골행을 고사하기로 했다.

목적지를 크게 둘로 나누면 시골과 도시로 나눌 수 있겠다.

둘 다 너무 매력적인 선택지지만 우선순위를 나누니 간발의 차로 도시가 1순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골은 버킷리스트에 고이 놓아두고 다음에 다시 꺼내보지 뭐.


지금처럼 이런저런 필터링 작업을 거치면 최종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쓰는 만큼 이번 여정이 완벽한 경험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곧바로 정리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든지 문서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를 다니며 엑셀이 얼마나 유용하면서 친근하게 활용할 수 있는 툴인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엑셀창을 띄워 이것저것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와 같이 탐구를 시작해 보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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