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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Jan 15. 2024

목적지를 찾아라

조건 나열하기, 그리고 우선순위 정하기


내가 원하는, 내게 적합한 곳은 어디일까?

함께 찾아나가 보자.


먼저 여러 조건들을 나열한다.

이 조건들을 쉽게 설명하자면 쇼핑몰 검색을 할 때 사용하는 필터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물건의 카테고리, 제조사, 무료배송 여부, 가격대 등의 필터로 원하는 범위 안의 것들로 검색 대상을 좁힌다.


그리고 그 조건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한다.

조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조건들이 많아질수록 모든 조건들을 만족하는 완벽한 아이템의 수가 적어지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쇼파에 쭈그려 앉아 이것저것 정리해보았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


:: 조건

영어사용 여부

안전한가?

물가 수준

항공권의 가격과 경로, 출발/도착 시간대

근교로의 여행 확장 가능성

지역 인프라

내게 낯선 곳인가?


이제 필터들이 준비되었다.

그럼 하나하나 뜯어보도록 하자.




1. 영어사용 여부


요즘은 과거와 달리 인터넷의 발달로 국내에서도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노력하지 않을 뿐.

그래도 영어를 배우는 최고의 방법은 예전부터 뭐니 뭐니 해도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에 내던져지는 것이었다.

언어적 인풋과 아웃풋이 모두 그 나라의 언어뿐인 환경.

그래서 다들 큰돈을 써서 어학연수나 유학길에 오른다.


나도 기왕 체류하는 거 영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했다.

여행도 하면서 영어도 연습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

거기다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공부를 병행한다면 학습 효율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물론 부지런히 공부한다는 것의 실천여부는 미지수였다)


나는 늘 영어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의 게으른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갈망만 가지고 있었을 뿐 노력은 따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법이나 어휘 수준들은 공부량의 정점을 찍은 고3 시절 수준에 머물러있긴 했지만서도, 영어 공부에 대한 마음은 늘 열려있었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영어과목의 점수는 웬만하면 1등급 선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회화능력은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요즘 아이들보다 덜 유창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요즘은 학교 교육과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몰라도 내가 학생이던 시기의 영어교육은 대입시험 대비에 집중되어 회화 부분의 교육은 빈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벙어리나 까막눈처럼 못쓸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 당장 외국인과 단둘이 대화를 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의사 교환은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높은 수준을 원했다.

내 목표는 자막 없이 그들의 진짜 대화(빠르고 복잡한)를 모두 이해하는 것이다.

현재 수준은 영화를 본다면 겨우 50% 정도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이번 기회를 발전의 기회로 삼아보고 싶었다.


'승진을 하겠다', '이직을 하겠다' 등의 딱히 영어를 써먹을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그래도 영어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확실히 더 강조되고 있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아마도 인터넷의 발달로 접할 수 있는 영어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반대로 자신을 세계 시장에 내보이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조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BTS의 세계적 성공이 이 트렌드의 트리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새로 생기는 아이돌 그룹들도 데뷔하기 전부터 영어 학습이 필수라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여행지를 찾아보자.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를 말할 때 바로 떠오르는 친구들은,

영어가 제1 언어인 국가들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그 외에 공용어처럼 영어를 사용할 것 같은 나라들은 동남아와 유럽의 몇 국가들.


따라서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영어가 모국어인 곳으로 가느냐, 혹은 다른 곳으로 가느냐.


얼핏 생각하면 영어게 모국어인 국가가 아니어도 어학연수로 유명한 필리핀이나 싱가폴, 그리고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유럽에서도 영어를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유니크하게 남아공이나 홍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허나 내 경험을 되짚어 내보면 영어를 위해 그런 곳으로 갔다가는 막상 도착해서 실망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경험상 유럽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문장으로 구성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은 드물었다.

그리고 영어가 가능한 사람과 아닌 사람들의 영어 수준 편차가 상당히 컸었다.

억양도 본토의 것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장이 아닌 알고 있는 몇 가지 단어들만 말하는 수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만약 그 사실을 현지에 도착해서 깨닫는다면 이미 너무 늦다.


그렇다면 첫 번째 필터부터 목적지 후보군이 확 줄어들게 된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이제 몇몇 국가들이 추려졌다.

우리는 여기서 타겟 범위를 국가에서 도시로 좁혀야 한다.

싱가폴처럼 도시국가가 아닌 이상 주어진 시간에 나라 전체를 돌아볼 수 없다.

그런 방랑의 여행보다는 한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이 보통의 한 달 살기이다.

역시 내가 원하는 것도 한 지역에 머무는 것이었다.


호주와 캐나다는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본능적인 필터인 '구미가 당기는가'에 걸러진 비운의 국가들을 지운다.


미국, 영국


저 나라들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도시들이 너무도 많다.

유명한 도시는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시애틀,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그 외에 어학연수지로 활용되는 중소 도시들은 셀 수도 없다.


이제 다음 필터로 넘어가 보자.




2. 안전한가?


나는 이번 체류에서 치안을 중요하게 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 지론 하나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모두 확률의 법칙 아래에서 돌아간다.'


관광객 대상의 소매치기가 극성인 파리에서 오늘 하루동안 내가 사고를 당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될 확률은 정확히 계산하기가 복잡할지라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그 결과를 어떻게든 숫자로 낼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을 위해 그것을 1%라고 임의가정한다면,

보통의 여행처럼 4일 정도만을 보내는 여정에서는 꽝 확률이 1%인 뽑기를 4번만 뽑으면 된다.

그러나 한 달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싫더라도 매일매일 총 30번의 뽑기를 돌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30번을 뽑는다고 꽝의 확률이 30%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재수가 없으면 4일만 머무는 여행에서도 첫 번째 뽑기에서 꽝을 뽑아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로 네 번의 뽑기를 하는 내내 아무 사고를 겪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모수가 늘어난다는 점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이겨도 본전.

꽝을 피해 99% 확률에 들어도 상품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저 무탈한 하루가 된다는 것일 뿐 다음 날 무조건 사고가 안 일어난다는 축복을 받거나 누가 축하한다며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99%에 들어도 본전인 게임에서 모수가 늘어난다고 안전 측면에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집 떠나온 해외여행에서는 자그마한 분실도 그 리스크의 정도가 고향에서와 사뭇 다르다.

휴대폰, 여권, 카메라 등 모두 작지만 잃어버리면 치명적인 친구들이다.

그리고 범죄자들이 노리는 사냥 타겟이기도 하다.

오늘은 99%에 들어 무사했다고 해도 내일은 1%에 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달 동안 반복해야 한다.

영화 '헝거게임'을 봤는가?

목숨이 걸린 데스매치에 참가할 조공인들을 뽑는 추첨식에 30번 연속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추첨으로 징병제를 운용하는 대만의 경우도 인생에 단 한 번만 뽑기에 참석하면 된다) 


당연히 그런 것을 다 따지면 여행은 어떻게 다닐 것이며, 애초에 집 밖으로는 어떻게 나다닐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협박당해서 강제로 가는 것도 아니다.

맞다, 당연한 소리다.

우리는 이 소중한 순간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과 시간을 기꺼이 투자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출발할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매일 밤 단잠에 든다.

우리는 기꺼이 이 리스크를 진다.

그래서 이 작고 소중한 여행을 위해 우리는 가능한 한 리스크를, 사고확률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확률을 1%라고 한 것처럼, 임의로 서울에서 당할 확률은 0.01%, 그리고 집 안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할 확률은 0.005% 이렇게 설정할 수 있다.

물론 이 확률법칙 아래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재수가 없다면 서울의 집 안에서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그래도 파리와 서울 두 개의 확률카드를 보여주고 안전해 보이는 곳을 고르라면 모두가 서울을 고를 것이다.

아프리카 사바나라던지 인도 외곽의 특정 마을이라던지 원하는 목적지가 확고히 정해져서 그곳의 치안 수준을 감내해야 하는 여행자 거나, 치안 수준 따위는 아랫우선순위인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쫄보인 나는 안전에 높은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래서 나는 비교군 사이에서 그나마 확률이 낮은 곳을 고르려는 것이다.

여기서는 '내 머릿속에서' 평가된 전체적인 치안 수준을 따지는 것으로 그것을 좇는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그들의 주요 도시들.

메가 시티들에는 늘 범죄가 들끓는다.

크고 작은 인종차별도 동양인이라면 서구권 나라에서는 필연적이라 피할 수가 없다.


그럼 미국과 영국, 두 나라 모두 이 필터에서 걸러지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았다.

전문적인 조사까지는 하기 귀찮았던 나는 최근 뉴스들을 검색해 보는 정도로 약식 조사를 진행했다.


한동안 동양인을 향한 증오 범죄, 폭력사건이 연신 보도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의 뉴스를 보면 배경은 대부분 미국이었다.

코로나가 끝난 지금도 간간히 뉴스화되고 있었다.

반면에 런던의 사건사고 뉴스들은 보통 휴대폰 소매치기가 부쩍 많아져서 주의를 하라는 기사 정도가 유효했다.

게다가 그것은 동양인을 특정한 범죄가 아닌 런던의 모든 사람들이 범행대상이었다.


이번 필터를 거치며 미국이 확실히 걸러지지는 않았지만 영국 쪽으로 조금 더 기울게 되었다.




3. 물가 수준


다음 조건인 물가이다.

휴직 직후 쌓아놓은 잔고를 보며 대범함이 속에서 들끓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기저기 황제처럼 쓰고 다니는 여행도 꿈꿔보았지만, 평소의 나는 혼자일 때 지갑을 타이트하게 쪼으는 것을 즐긴다.

나에게 쓰는 돈을 아껴서 남들과 쓸 때에는 죄책감 없이 펑펑 사용한다.

거기다 지금의 휴직이 무급휴직인 만큼 더 이상 정기적인 수익이 없다.

이는 이제 곳간에서 퍼다쓰는 마이너스 생활이 시작됐음을 말한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물가도 따지기로 했다.


슬프게도 팬데믹에 이르게 한 전염병 사태와 국제전쟁등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상승했다.

여행 다니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좋지 않은 시기라 할지라도 내 휴직기간은 정해져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알아봐도 물가가 살인적이었다.

원래도 높았던 외식물가가 더 올라 서울대비 약 1.5배~2배의 차이가 났다. (여담으로 코펜하겐의 물가는 서울의 2배~4배 차이가 났다)

서울에서 파스타 한 접시 말아먹는데 2만 원을 내야 한다면 그곳에는 4만 원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런던, 두 국가의 가격표의 숫자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 메뉴판의 가격만 보면 비슷하니 단순히 같은 물가라고 생각하면 되냐고?

그건 아니다.

벌써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여기에 두 가지 변수가 있다.

하나는 팁 문화의 차이, 다른 하나는 통화의 차이이다.


두 나라 모두 팁 문화가 있는 나라이다.

네이버와 구글을 뒤지며 블로그들을 탐독한 결과 미국은 외식 시 팁을 함께 계산하는 것이 강하게 기대되는 반면 영국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물론 인터넷으로 배우는 것에는 그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검증작업들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은 팁 물가도 올라 통상 15% 수준이었던 기본 팁이 20%까지 올랐다고 하는 슬픈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인 10~15% 정도의 서비스 차지가 붙는다고 한다.


두 번째는 통화의 차이.

미국은 달러, 영국은 파운드를 쓴다.

여행을 준비한 2023년 2월 기준 한화 대비 달러 가격은 1250원, 파운드는 1530원.

약 20%의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팁에서 유리한 영국과 통화 방면에서 유리한 미국의 경쟁력이 서로 상쇄되어 둘 다 비슷하다? 혹은 최종적으로 미국이 더 물가가 저렴하다?

단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위와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렇다면 앞서 치안 수준이라는 조건에서 영국으로 약간 기울었던 것이 다시 중립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던 미국에게는 아쉽게도 이 물가 차이를 뒤엎을 만한 아이템이 나타났으니...


영국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대형 마트와 편의점 프랜차이즈들이 내세우는 '밀 딜(Meal deal)'이라는 시스템이었다.

음료, 식사류(샌드위치, 샐러드 등), 스낵류(견과류 바, 초코바, 감자칩 등)를 마음대로 골라 구성하는 세트메뉴로 설명할 수 있겠다.

가격도 단품으로 각 항목을 고르는 것보다 많이 저렴할뿐더러, 메뉴의 선택지도 상당히 다양했고 양과 음식의 퀄리티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거기다 나는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은 좋아했지만 식사를 위한 맛집을 다니는 데에 큰 관심이 없었고 평소에 먹는 양도 작았기 때문에 내 식비 예산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다닐 건데 레스토랑에 가기도 애매하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밀딜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식비를 아낀 다음, 그만큼 뒷 여정인 코펜하겐에서 쏟아붓기로 했다. 



이렇게 세 번째 필터를 거쳐 최종 국가가 하나 남게 된다.

바로 영국이다.




4. 항공권


항공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직항 비행 편과 환승이 있는 비행 편.

당연히 편하게 갈 수 있는 직항 항공권이 대개 더 비싼 편이다.

그리고 한 번에 장거리를 움직이기 때문에 항공기도 대형 항공기인 광동체 모델들이 주로 배치된다.

큰 비행기가 더 시설들이 다양하고 고급형이다.

게다가 작은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큼직한 비행기를 타야지 여행의 기분이 더 찐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영국으로의 비행은 직항으로 약 14시간 30분이 걸린다.

이 직항 비행시간을 기준으로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환승시간 및 총 비행소요시간을 정해서 티켓을 고르면 된다.

나의 경우 어느 나라를 가든 총 소요시간 20시간 이하로면 거뜬히 잘 버티는 편이라, 직항을 고집하지 않고 저렴한 환승 항공편을 선호한다.

환승시간이 짧아 공항 내부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해도 여러 나라를 일부나마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기내식도 한, 두 끼 정도 더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기내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나에게는 장점이 된다)


검색 결과 크게 다섯 곳의 환승지가 있었다.

네덜란드 항공의 암스테르담, 핀란드 항공의 헬싱키, 에미레이트 항공의 두바이, 카타르 항공의 도하, 에티하드 항공의 아부다비.

위 옵션들 모두 타본 적 없는 항공사였고 환승지로서도 들러보지 못한 곳이라 내 흥미를 끌었다.

가격과 총 여행시간 등을 비교해도 박빙이었다.


최종 승자는 두바이와 에미레이트 항공.

승리요인은 바로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다분히 개인적인 요소지만 나 혼자 가는 여행이니까 당연하다.

학벌도, 자격증도, 성적도 비슷하다면 인상이 좋은 사람을 취업면접에서 뽑듯이 가격도, 여행시간도 비슷하다면야 면접관 취향인 사람을 뽑는 거지, 뭐.


예전부터 호텔과 리조트들에 관심이 많았다.

나의 호텔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중에 중동과 이슬람의 이국적인 맛을 즐길 수 있는 호텔로 찜해둔 곳이 두바이 근처에 있었다.

바로 두바이 옆에 위치한 다른 토호국 '샤르자'의 호텔.

그곳에서의 휴식을 위해 두바이 에미레이츠 항공을 선택하고 2박 3일의 스탑오버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다음에 샤르자에서의 여행기도 써보겠다.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비행 편은 도하와 카타르 항공편을 예매했다.

핀에어와 카타르 항공의 합작인 노선으로 542달러라는 만족스러운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편에서는 도하에서 추가적인 스탑오버 체류를 하지 않았다.

영국을 나와서 평소에 관심 있는 장소인 코펜하겐에서 머무르다 올 계획이었기에 그때쯤이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할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30년의 시간으로 나는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5. 근교로의 여행 확장 가능성


영국에는 많은 도시가 있다.

축구의 맨체스터와 비틀즈의 리버풀, 영국의 해변 휴양도시 브라이튼, 어학연수 학생들의 체류지인 작은 중소 도시들.

그리고 런던.

위와 같이 이름을 주욱 읊을 수 있는 도시가 많다지만, 나누면 결국 수도인 런던이냐와 아니냐로 나눌 수 있겠다.


영국 체류기간동안 여러 도시들에 균형 있게 머무르는 방식도 채택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리고 조금 더 한 달 살기에 가까운 것은 베이스 도시를 정해두고 생활하는 중에 다른 도시들을 자투리로 다녀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베이스로 쓸 도시를 선택해야 하는데...


근교 여행을 아쉽지 않게 조금은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근처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장소가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먼저 영국의 허리에 위치한 맨체스터.

섬의 중앙에 위치한 만큼 동서남북 어디로든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서쪽의 웨일스로도, 북쪽의 스코틀랜드로도, 남쪽의 런던으로도 거리가 비슷하다.

문제는 어디로든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인근의 리버풀을 제외한다면 편도 2~3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다음은 수도 런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수도인만큼 전국으로 도로와 철로가 뻗어있다.

그런 만큼 선인들의 런던 근교 여행에 대한 정보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인 브라이턴과의 접근성도 매우 훌륭하고, 옥스퍼드, 사우스햄턴과 같은 여행지도 가깝다.



최종 승자는 런던이다.

이번 승리요인도 결국은 내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바로 내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친구는 예전에 브리스톨에서 1년간 어학연수 기간을 보냈다고 했다.

20대 초반의 어린 어른이었던 그 시절 그녀는, 타국에서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던 한국식료품점의 한인 부부에게 안부 편지를 전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내게 해왔다.

시간이 제법 지나 아직 가게가 그대로 있는지도 모르고, 있더라도 주인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수락했다.

마치 예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TV는 사랑을 싣고'의 진행자가 된 것 같았다.

브리스톨로의 접근성을 따지면 리스트에서 런던이 가장 우수했다.

이렇게 흥미로운 일을 놓칠 수는 없지 않나.




6. 인프라


인프라는 런던이라는 선택을 더욱 확고히 해주는 필터였다.

나는 도시형 인간으로 원체 큰 도시를 좋아한다.

크고 발전한 도시.

한국에서는 당연히 서울을 사랑한다.

내 고향도시보다 더 사랑한다.

서울에 살며 서울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과연 영국에서 런던보다 더 현대적으로 발전한 도시가 있을까?


최종 선택을 하기 직전에 잠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기는 했다.

만약 리즈와 요크 같은 작은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어쩌면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시골의 삶도 어느 정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잠깐의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은 최종 선택은 바뀌지 않았다.

중간에 지루해지면 어쩌지?

지루함을 못 참고 요크를 뛰쳐나오게 된다면 숙소 계약을 파기하고 또 다른 도시에서의 숙소를 급하게 찾아야 한다.

저녁 메뉴를 바꾸는 것이나 다음날 일정을 바꾸는 정도의 즉흥성이라면 두 팔 벌려 즐길 수 있는 나지만, 큰돈이 오가고 몸이 피곤해질 수 있는 정도의 변경은 원하지 않았다.

평온하게 해외 체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애초에 목표였다.

그래서 치안을 높은 우선순위로 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최종 목적지는 런던으로 결정되었다.



7. 내게 낯선 곳인가?


이 필터는 최종 검증 단계 같은 것이다.

런던은 내게 낯선 곳인가?


답은 '그렇다, 낯선 곳이다'다.


처음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대학생 시절의 여름 방학, 학교 간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5주간 파리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들과 주말을 이용해 런던을 잠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계획을 짠 친구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모범적인 팔로워였기에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런던의 어디인지도 모르고 따라다녔었다.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었다.(당시에 친구들과 라면 런던이 아니라 아프리카 오지를 갔어도 즐거웠겠지만)




나는 구글 지도로 런던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곳은 낯선 곳이었다.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생각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방문했던 곳의 사진을 꺼내어 뒤적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정말 대책 없이 따라만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묵었던 한인민박이 런던 어느 쪽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이제는 내가 직접 계획을 짜야할 때였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디에서 살아볼까?

어디가 내 최애장소가 될까?

해리포터의 마법지도처럼 구글맵에 내 여정을 따라 발자국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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