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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Feb 04. 2021

인생의 파도 즐기기

이금이,《알로하, 나의 엄마들》

야호~드디어 끝났다.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홀가분함과 신혼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교차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와이이다. 신혼여행지로 아직은 많이 가지는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와이행 밤 비행기에는 올림머리를 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커플티를 입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신혼여행 전세기를 탄 기분이다. 새벽부터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든 하루였지만 막상 비행기 안에서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9시간을 날아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알로하 하와이(Aloha Hwaii).


이금이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하와이에 이주한 세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한인 미주 이민 100년사를 다룬 책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한다. 앳돼 보이는 여성들은 한 마을에서 함께 떠난 사진 신부들이고, 이 사진을 모티브로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버들은 포와에 가고 싶다. 공부하고 싶다. 앞으로도 과부의 자식으로 삯바느질하며 살다 비슷한 처지의 남자에게 시집가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 포와에선 결혼한 여자들도 공부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포와는 낙원이다. 버들은 제 욕심을 위해 식구들을 떠나려는 것 같아 마음 구석이 찔렸지만 사진 속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다.


홍주는 열여덟 나이에 결혼한 지 몇 달 안되어 과부가 되었다. 제대로 꽃도 펴보지 못한 채 시들어가기 싫다. 이쁜 옷 입고 신랑 차 타고 오만 데 구경 댕기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 얼굴 한번 못 보고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했던 홍주는 자신이 선택한 사진 속 남자가 첫 남자 인양 설레었다.


송화는 무당의 손녀여서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다. 양반, 상놈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무당이나 백정은 해당되지 않는다. 마을을 피해 산속에 숨어 살았다. 무당은 자신이 죽으면 산속에 혼자 남을 손녀가 안쓰러워 사진결혼을 시키기로 한다. 송화는 그렇게 해서 세상으로 나왔다.


1903년에 첫 한인 이민자가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다. 대다수는 독신 남자였고 그들은 고단하고 외로운 삶 속에서 늙어갔다. 독신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술이나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 일에 지장을 주자 1910년에 미국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사진결혼을 허락한다. 신랑감들은 젊었을 때 사진을 보내거나, 남의 차 앞에서 마치 자기 차인양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직업, 재산상태 등을 속이기도 일쑤였다.


색시들이 늙은 신랑 보고 얼마나 실망했을지 나도 잘 알아.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겠지. 신랑들이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땡볕에서 고생해서 더 늙어 보이는 거야. 맨몸뚱이로 와서 얼마나 고생했겠어. 서류에 이미 부부라고 못 박았으니 불쌍하게 생각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버들, 홍주, 송화는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와서 비록 자신이 꿈꾼 낙원은 아니었지만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간다. 어느 한 가지도 쉬운 게 없었던 삶이었지만 삶의 고비를 온몸으로 이겨내고 하나씩 하나씩 자기 것을 일궈나간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하와이는 연중 날씨가 따뜻하고 자연환경이 수려하다. 누군가는 신혼여행으로 또 누군가는 은퇴 후 휴양차 오는 이곳에 100여 년 전에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이 그려졌다. 오아후 카후쿠는 내가 섬 일주하다가 새우 트럭에서 새우튀김을 먹었던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버들이 남편과 함께 살 집이 있고 사탕수수 농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와이에 대한 내 기억에 소설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알로하는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를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 신혼여행지에서 신혼부부에게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에 서로의 생각과 행동 방식이 달라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새벽에 마우이섬 할레아칼라 정상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함께 일출을 기다렸고, 스콜에 옷이 흠뻑 젖었지만 저 멀리 쌍무지개가 떴다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웃었던 일, 바다에 수영하는데 옆에 거북이 헤엄쳐서 엄청 신기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결혼생활이 언제나 순탄할 수 없으며, 어려움에 닥쳤을 때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것을 처음 경험했던 여행이었다.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10주년  다시 하와이에 가자고 얘기했다. 2023 10월에 우리는 하와이에  것이다. 우리 딸과 함께.

알로하, 하와이!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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