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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Feb 11. 2021

쓸 수 있다는 믿음

사소한 신비


믿음이 그저 의심하지 않음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믿음은 좀 더 다른 차원의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에 가까웠다. 희미하게 산재되어 있는 인과성을 헤아릴 줄 아는 능력, 내가 다 헤아릴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영향력, 망각했고 홀대했고 무감했지만 이미 도착해 있는 가능성. 책에는 은총이라는 말이 믿음이라는 말과 함께 적혀 있었고, 저자는 자기 삶에 찾아온 자잘한 은총들을 자랑했다. 그 사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런 일은 나에게도 너무 많이 일어났던 것임을 기억해냈다. 나에게 일어났던 작은 혜택들이 실은 은총이었으며, 그건 내가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기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에게 일어난 우연한 일들과 나를 여태껏 지탱해주었던 자잘한 행운들은, 내 믿음의 결과물이었다.


- 김소연, 시옷의 세계 -



회사가 흥했던 시절이 가뭇하다. 사람들은 연초가 되면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고 2월이 지나도록 소식은 없었다. 팀원들은 모두 기대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을 때, 나는 우스갯소리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 혹시 나오면 그건 내가 마지막까지 믿어줬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 믿음?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인센티브가 나왔다. 크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마음을 접었던 터라 기쁨이 컸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오로라 보기가 있었다. 몇 년의 준비 끝에 캐나다 옐로우나이프에 갔다. 그곳에 가면 오로라를 쉽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조명이 없는 깊은 숲 속, 구름과 달이 없는 맑은 하늘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날은 눈이 오고, 구름이 많아서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 둘째 날도 몇 시간을 기다렸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데 하늘에 역시 구름이 많았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이 걷히길 바랐다. 추운 날씨에 엄청난 적막함 속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현상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오로라를 잠시라도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하늘에 그 많던 구름이 사라지고 연푸른 오로라가 움직이는 장관을 목격했다. 신기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명저 100권 서평 쓰기'를 도전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온라인으로 만나서 함께 읽고, 쓰고, 토론한다. 이번 주 책은 이반 일리치의《그림자 노동》이다. 책은 두 번 읽었고 이틀 전부터 서평 쓰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쓰지 못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쾌한데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갈피가 안 잡히고 이틀째 흰 바탕에 커서만 깜박이고 있다. 지웠다 썼다도 거의 못하고 있다. 써야 한다는 쓸 수 있을까? , 언제 쓸 수 있을까?, 못 쓰는 거 아냐?, 이러다 또 날 새겠다 등 생각이 복잡하다. 기다려 보자. 우선 브런치 글부터 쓰자. 

나는 쓸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의 기적을 기다린다.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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