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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Mar 18. 2021

느리게 읽기

내가 아침밥을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 그녀가 아침밥을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기다리다 지친 나는 급 처방을 내린다. 숟가락은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신하여 그녀의 입 속으로 날려 보낸다. "뽀로로 날아갑니다. 문 열어 주세요". "폴리입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곧 출동하겠습니다". 1시간 동안 밥을 먹는데 우아하거나 여유로운 모습은 아니다.  문득 모든 걸 내려놓고 그녀의 입을 바라본다. 오물오물거리는 입을 보고 있으니, 무릇 밥은 저렇게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하는데 내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느리게 먹는 법 중요하다. 그녀가 아니라 내가 고쳐야 한다.


지인이 애플잼 만드는 동영상 링크를 보내줬다. 마침 집에 사과가 잔뜩 있어서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찰나 그녀가 TV 속에서 본 애플파이가 먹고 싶다고 난리다. 애플파이는 아니더라도 애플잼을 만들어 식빵에 발라 줘야겠다 생각하고, 동영상을 대충 훑어봤다. 아주 간단한 레시피대로 40분간 사과를 조렸다. 먹어봤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맛있지 않다. 이번 주에 뭔가 만들어 먹겠다고 시도했던 요리가 모두 다 실패다.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보니 너무 빠른 시간에 대충대충 했나 싶다. 요리도 천천히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데 여전히 요리 초보자인 내가 그것을 간과했다.


이 책 저책 훑어보다가 데이비드 미킥스의《느리게 읽기》가 눈에 들어왔다. 책 읽는 방법은 읽는 목적에 따라 방법을 달리 할 수 있다. 저자는 천천히 정성 들여 읽을수록 우리가 더 많은 경이와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느리게 읽기의 규칙을 제시한다. 아래는 주요 규칙을 정리해 보았다.


1. 인내심을 가져라.

카프카는《취라우 아포리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른 모든 죄악을 파생시키는 인간의 대죄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조급함과 경솔함이다. 조급함 때문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며, 경솔함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오로지 한 가지 대죄가 있을지도 모른다. 조급함. 인간은 조급함 때문에 추방당했으며, 조급함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책과 독자는 서로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책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애쓰고 있다. 좋은 책일수록 그 메시지는 더욱 절박하며,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라.

작품 속의 중요한 이미지, 핵심 용어, 분위기와 어조, 처음과 끝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때로는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단, 그 작품을 역사적 시각으로만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그 작품이 같은 작가의 혹은 선대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의문을 품어 보는 것이 좋다.


3. 처음과 끝에 주목하라.

한 작품의 처음과 끝은 질기고 끈끈한 실로 이어져 있다. 첫 쪽과 마지막 쪽을 합쳐보면 어김없이 놀라움과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한 작품이 그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길을 어떤 방식으로 찾아가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4. 이정표를 찾아라.

한 작품의 이정표는 독서 여정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려 준다. 이정표는 핵심 단어, 핵심 이미지, 핵심 문장 또는 구절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5. 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이 답을 찾는 것만큼 난해한 작업도 없을 것이다. 보통은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오랫동안 지켜봐야 가능한 일이다. 


6. 의심의 기술을 길러라.

한 작품을 읽을 때에는 그 속의 인물들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의심을 품어야 한다. 훌륭한 작가는 진의를 호락호락 내비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인물에 대한 평가를 속단해서는 안된다.


7. 작품을 분해하라.

한 작품을 분해해 보면 작품의 구성, 줄거리의 의미 있는 변화를 알 수 있다. 한 작품에서 화제 또는 시간과 장소 또는 분위기가 변경되는 의미 있는 변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는 그런 변화를 감지케 하는 또는 새로운 부분의 시작을 예고하는 핵심 문장을 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 상단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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