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를 15년 다니는 동안 회사의 위치는 몇 번 바뀌었다. 출퇴근할 때 2호선, 7호선, 5호선, 9호선을 타 보았고, 지금은 공항철도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2호선은 순환선이라서 출근길에는 가끔 앞의 지하철이 문제가 생기면 뒤의 지하철은 계속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몇 번의 지각을 했고 그때마다 팀장님께 말씀을 드리면 무슨 지하철이 막히냐며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5호선은 출근길에 너무 푹 잔 나머지 한강을 두 번 건너 천호역까지 간 적이 있었다. 5호선은 그나마 2호선, 7호선에 사람이 없어서 그때가 가장 여유가 있었던 출퇴근길이었다.
9호선은 4량으로 운행해서 출근길뿐만 아니라 퇴근길도 지옥철이었다. 사람이 정말 그렇게 구겨질 수 있구나를 새삼 체험할 수 있었고, 그나마 당산에서 환승을 해서 십여 분만 버티면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십여분조차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최근에 타고 다니는 공항철도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객이 많다. 여행객은 좌석 앞에 각자 하나의 캐리어를 가지고 있어서 통로가 비좁다. 나는 중간에 내릴 가능성이 높은 즉, 캐리어가 없는 사람이나 공항 근무복을 입은 사람 앞에 서 있으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는 행운은 반반이다. 김포공항 전 역인 계양역은 9호선에 못지않게 아침마다 곡소리가 난다. 사람들이 쓰나미처럼 들어와 그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내리지 못한 사람들과 떠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아우성이다. 사람들의 파도는 중간에 서있는 나에게도 이따금 강하게 몰려온다. 그래도 이러한 상황은 다음 역인 김포공항역에서 해결된다.
지하철은 현대의 동굴이지 않을까? 과거의 동굴에서는 곰이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 내었던 정적인 공간이었다면, 현대의 동굴은 생계의 현장으로 가기 전부터 사람들과 부딪치고 때론 치열한 동적인 공간이다.
출근길에 잠이 덜 깬 피곤한 상태로 모두들 한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휴대폰을 통해 “여기 말고 거기” 세상으로 떠나 있다. 회사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이 출근길은 퇴근길에도 반복된다.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지하철이 우리의 보이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여기 말고 거기”에서 “지금, 여기”로 관심을 갖게 한다. 나는 이 책을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내가 있는 이 공간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딸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출근을 꼴찌이지만 퇴근은 1등으로 한다는 완주 씨, 딸에게 줄 보따리를 꼬옥 안고 타시는 바다에서 나고 자라신 할머니,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육아를 하느라 힘든 유선 씨 등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일곱 칸 의자 위 일곱 개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 봐요.
출퇴근길에 스쳐가는 사람들은 누구의 아빠이고,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아들, 딸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동지이다. 퇴근길에 읽은 이 책은 조금은 삭막하게 느낄 수 있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장소이다. 어찌 보면 과거의 동굴과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퇴근길에 이 공간은 오늘 하루도 고단했던 우리를 토닥토닥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