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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Dec 16. 2020

주인을 잃은 곰인형

동화 흰곰인형에서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커다란 곰인형의 로망은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포스터 때문이었다. 영화는 보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있는 남녀 주인공의 포스터가 참 사랑스럽고 예쁘다.


곰인형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크게 두 팔을 벌려 안으면 포근하고 편안하다. 무심코 보면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소를 짓고 있다. 흰곰, 브라운 곰, 베이지 곰 등 색깔과 얼굴은 조금씩 달랐지만  종종 영화, 드라마에서 곰인형은 등장했다. 보통은 남자 주인공이 커다란 곰인형을 어깨에 들쳐 메고 여자 친구 집에 찾아와 건네준다. 그 곰인형은 그렇게 주인을 만나 침대 머리맡에 놓인다. 지금은 곰인형 하면 "나 혼자 산다"의 윌슨이 먼저 떠오른다


예전에 살던 집은  직장인, 신혼부부가 많이 살고 신축 빌라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집 앞에 의류수거함이 있는데 이따금 주인을 잃은 곰인형을 발견하곤 했다. 축 늘어져 있는 곰인형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다. 한때는 누군가의 풋풋한 사랑을 전달해주며 사랑받는 존재였을 텐데. 이제 주인은 그 곰인형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지저분해져서 아니면 그 사랑을 잃어서. 어떤 날은 의류수거함 위에 엎드려 있는 곰인형을, 어떤 날은 비에 흠뻑 젖은 곰인형을 목격했다.


임정자 동화집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에 담긴 「흰곰인형」이 있다. 이 동화는 길가에 버려진 곰인형을 다룬 이야기인데, 버려진 곰인형을 바라보는 마음이 나만 무거운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이야기는 짧다. 도서관 직원이 어느 날 아파트 담장 재활용포대 위에서 횐곰인형을 발견한다. 흰곰 인형이 그에게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얘기했고, 그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곰인형을 어깨에 들쳐 메고 어린이도서관에 데리고 간다. 이름이 없었던 흰곰 인형은 "곰곰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아이들이 그 곰인형을 아주 좋아한다.

전 여태껏 누가 날 좋아한다는 걸 느껴 본 적이 없어요.(...)
어쩌다 옛 주인인 송이 아가씨의 베개가 되고, 등받이가 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침대 머리맡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게 일이었죠.
그러다 먼지 타고 더러워지니까 아가씨는 나를 버렸어요.
조금 외롭고 슬펐어요. 하지만 이젠 아녜요.


아이들이 곰곰이를 좋아할수록 곰곰이는 낡고, 병들어 간다. 결국 곰곰이는 옆구리가 터지고 보다 못한 도서관 직원은 곰곰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무실 한편에 앉혀둔다. 그는 한참 인형극 준비로 바빴고, 인형을 만들 재료가 부족해서 곤란한 상황이던 어느 날 곰곰이가 말을 걸어온다. 자신을 인형 재료로 써달라고. 그렇게 되면 곰곰이의 존재는 사라질 터인데 곰곰이는 괜찮다고 한다.


쓸모없는 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의 토끼로 다시 태어나는 걸.


주인을 잃은, 버려졌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슬픔이다.

곰곰이는 자신을 소멸시키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이다.

요즈음도 가끔 길에서 곰인형을 보게 되면,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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