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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Dec 18. 2020

여행 기념품 실패담

그림책 지하 100층짜리 집

여행은 좋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면 조금은 숨이 트이는 듯하다. 그래서 여행은 한번 가보면 계속 가고 싶어 진다. 그리고 매번 아쉽다. 여행의 기억을 추억하고 싶어 기념품을 챙긴다. 여행을 가기 전 '꼭 사야 하는 아이템'을 검색해 사보기도 하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잘 쓰지 않을 때가 많다.


내 경우의 여행 기념품을 떠올려 보면, 가장 실용적인 것은 옷과 가방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계속 입고 들 수 있어서 좋다. 처음 혼자 간 홍콩 여행에서 산 에스프리 후드티는 참 오랫동안 입었고 헤져서 버려야 할 때는 많이 아쉬웠다. 피렌체 H&M에선 산 티셔츠와 스커트는 여행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도 몇 년을 입고 다녔다.


정말 잘 샀다 싶은 아이템은 뉴욕 센트럴파크 앞 스타벅스에서 산 머그컵이다. 컵 표면에 New York이라 적혀있고 뉴욕의 랜드마크가 그려져 있는 크고 묵직한 컵이다. 잠시나마  도시마다 스타벅스를 순례하며 머그컵을 모아볼까도 생각했지만 디자인이 비슷하고, 도시명만 다른 것 같아 마음을 바로 접었다.


변하지 않은 여행 기념품은 여행지에서 산 마그넷이다. 처음 시작은 잔돈 없애기용으로 샀었는데 점점 늘어나 한 벽면을 이루었다. 볼 때마다 여행 추억이 새록새록 나서 더 의식적으로 샀다. 보라카이에서는 산 나무 물고기 마그넷은 10개 묶음으로 밖에 안 판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집에 10마리를 가져왔다. 우리 돈으로 3천 원어치다. 마그넷은 저렴하고, 여행 추억이 듬뿍 담겨있지만 아쉬운 것은 거의 대부분이 뒷면에  made in china라고 쓰여있다.


몇 년 전부터 기념품을 바꿔보기로 했다. 홍콩에서는 홍콩의 소소한 일상과 사진이 담긴 책을 샀다. 나름 홍콩의 과거 사진도 있어서 좋았는데 중국어 실력이 짧은 내가 사전 찾아가면서 읽는 것은 무리 싶어서 지금은 책장에 방치되어 있다. 3년 전 태국 방콕에 갔을 때는 그림책을 수집하는 것을 계획했다. 그림책에 막 입문해서 관심이 많았고, 그림만 봐도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 괜찮겠다 싶었다. 나중에 우리 딸에게 보여줘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호텔 맞은편 대형 쇼핑몰 지하에 작은 서점이 있었다. 책은 많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았고 태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 그냥 그림이 예쁜 책으로 샀다.


그림으로 봐서는 지하 100층 집이고, 지하층마다 다양한 동물들이 나오는 귀엽고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어릴 적에 나는 개미들이 지하 땅 속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커다란 유리병에 개미를 키워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책을 펼쳤다. 태국어라서 내용은 잘 모르겠고, 뒷부분까지 대충 훑어보기만 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림책 마지막 장의 거북이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한마디 했다.


거북이 할머니 입가의 주름이 일본풍인데...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여행에 돌아와서 시간이 좀 흐른 뒤, 온라인 서점에서 그림책 베스트셀러를 찾아보게 되었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그림인데...

남편 말 대로 작가는 일본 작가였고, 이 책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시리즈 그림책이었다.


원래 취지는 태국어로 태국 느낌의 그림책을 사려고 했는데...태국어 앞에서 까막눈이 되어 결국 예쁜 그림책을 고른다고 한 것이 태국에서 일본 그림책을 사 왔다. 내가 너무 무지했고, 꼼꼼하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그 나라의 그림책 작가를 조사해 보고 가야겠다.

여행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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