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심 Dec 22. 2020

조금만 더 기다리면

 현덕,  조그만 어머니

기다리다: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다


기다림은 희망, 간절함, 두려움 등 복합적인 마음의 감정이  담겨있는 단어다. 돌아보면 별일 아닌 것들이 그때는 기다리는 내내 마음이 복잡다단했다. 올해는 코로나 19가 종식되기를 기다렸고, 지금도 계속 기다린다.

어릴 적에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 이것저것 사다 보면 어느새 짐은 한 보따리다. 무더운 여름날, 엄마가 한 손에 나를 잡고 다른 한 손에 짐을 들고 다시 북적되는 인파 속으로 가서 장을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를 팥빙수 가게로 데리고 가서 팥빙수 한 개를 시켜주셨다. "팥빙수 먹고 있으면 다 먹기 전에 엄마가 금방 장보고 돌아올게". 나는 맛있는 팥빙수를 한 입 두 입 먹으면서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가게 밖을 쳐다 보고 다시 팥빙수 한 입을 입에 넣었다. 팥빙수는 점점 줄어가는데 불안한 내 마음은 점점 커져 간다. 이제 오려나 밖을 쳐다보지만 엄마의 모습은 저 멀리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팥빙수를 조금씩 조금씩 아껴 먹으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엄마가 돌아오실 거야라고 두려워진 내 마음을 다독였다.


엄마를 기다렸던 시간은 불과 이십여분이었지만 그때 나는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진 존재처럼 느껴졌고, 내 인생에 가장 더디 가는 시간이었다. 나도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나는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현덕의 「조그만 어머니」에는 파랑 치마 영이가 다홍 두루마기 아기와 함께 어머니를 기다린다. 어머니는 아침에 광주리에 귤하고 사과하고 배하고 가득히 담아 머리에 이고 거리로 나가셨다. 파랑 치마 영이는 하루 종일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돌본다. 어머니가 언제 오실까 어린 동생과 밖을 내다보며 어머니를 찾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저 멀리에도 보이지 않는다.

  인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어머니는 오실 걸. 광주리에 쌀하고 과자하고 많이 많이 사 가지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실 걸.

 


영이는 시무룩한 어린 동생을 업고 가만히 노래로 달랜다. 조그만 어머니 영이는 어머니가 늦게 오는 연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도 어린 동생처럼 어머니가 보고 싶고 빨리 돌아오셨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가만히 부르고 있는 이 노래는 어린 동생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어머니가 돌아오실 거라는 희망과 기원이 담겨 있다. 조그만 어머니 영이가 어머니를 기다린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더디 가는 시간이며, 어머니가 돌아오시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영이는 어린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기다리는 상황이 매일매일 반복된다.


조그만 어머니 영이는 알고 있을까? 영이의 어머니도 예전에 조그만 어머니였고, 자신의 어머니를 영이처럼 기다렸다는 것을. 어머니도 어릴 적에 세상에서 가장 더딘 시간을, 두려운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을. 영이 어머니는 이미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알지만, 영이와 아기를 위해서 광주리에 과일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마지막 장면이 눈에 머문다.

엄마를 기다리는 영이는 내 모습이자, 우리 딸의 모습이라서.

하루 종일 곁에 있어주지는 못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충분히 즐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키처럼 에세이 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