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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Dec 27. 2020

삶의 변화를 이끄는 진심.

손원평, 아몬드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 전체가 롤링페이퍼를 돌린 적이 있다. 내 이름이 적힌 종이는 돌고 돌아 나에게 왔을 때는 알록달록하고 빼곡한 글씨들이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글은 두 개다. 하나는 아침에 머리 감고 드라이로 말리면 머리가 붕뜨지 않고 예쁠 텐데 하며 잔소리지만 애정이 담긴 글. 평소에 짝꿍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라 단박에 누군지 알았다. 또 하나는 도통 누가 썼는지 알 수가 없는 글이다.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런데 가끔 네가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라는 이야기였는데 우선 내용으로 봤을 때 나랑 친한 친구는 아닌 것 같았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게 관심을 가져주고, 내 마음을 알아봐 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알았다. 때론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멀리 있는 사람이 나를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브룩 실즈는 젊었을 때 알고 있었을까? 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단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지 못하잖아.


곤이는 어릴 적에 엄마의 손을 놓친 이후, 혼자 외롭게 자신을 지키며 살았다. 아빠가 마침내 그를 찾아냈지만, 곤이는 엄마, 아빠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꾸기에는 이미 늙었다고 곤이는 생각한다.


남들은 다 본 영화를 나만 못 보고 있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못 보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눌 거리가 조금쯤은 많아지겠죠.


윤재는 기쁨도 슬픔도 두려움도 모른다. 양쪽에서 그의 손을 맞잡은 엄마, 할멈의 온기 덕에 윤재는 불편함 없이 살았다. 자신의 세계에 전부였던 두 사람의 부재로 윤재의 인생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윤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시도한다.


소설 『아몬드』는 두 괴물이 만나는 이야기이다. 윤재가 보는 곤이는 단순하고 투명한 아이인데,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곤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벽을 치고 강해지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여리다. 윤재는 너무나 무디고 서툴지만 곤이를 이해해 보려고 한다.


공감의 속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남의 처지를 충분한 사고로 이해하려는 ‘인지적 공감’과 남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느끼는 ‘정서적 공감’,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공감적 관심’이 그것이다. 윤재는 처음엔 인지적 공감조차 무디고 서툴렀다. 하지만, 곤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결국 마지막에는 곤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다.


결국 곤이의 텅 빈 마음에는 진심이 담긴다. 곤이가 윤재에게 쓴 편지에 진심이라는 단어 뒤에 찍힌 마침표는 곤이가 자신의 삶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소설『아몬드』는 우리가 하는 공감에 진심이 얼마나 담겨있을까를 돌아보게 한다.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소설『아몬드』의 공감으로 가는 길을 정리해 본다.


다가가다

"네가 먼저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중략) 그 애가 너한테 제일 많이 한 행동이 뭐지?"

"찾아온 거요"

"네가 할 수 있는 방법 하나는 찾은 것 같구나"

 

예쁨을 발견하다

"좋아하는 걸 말할 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면 눈을 빛낸다. 도라가 그랬다"


가슴이 머리를 지배하다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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