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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Dec 28. 2020

생일 의식

크리스마스이브에 케이크를 먹었다. 우리 딸은 자기가 초를 꽂더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후우우~ 후~ 촛불이 3개 그리고 나머지 한 개가 꺼진다. 그녀에게 생일은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부는 행위를 의미한다.


생일 축하를 받으면 살뜰하게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다. 하지만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고, 점점 늘어나는 초의 개수가 많아져서 새삼 부끄럽다. SNS나 메신저에서 챙겨주는 생일 알람을 슬그머니 비공개로 바꾸게 된다.


종교학자 엘리아데의『성(聖)과 속(俗)』에 의하면, 시간은 성스러운 시간과 세속적인 시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스러운 시간은 주기적으로 회귀할 수 있는 순환적 시간이고, 세속적인 시간은 한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다. 고대 문화의 종교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세계는 매년 갱신된다. 세계는 새로운 해가 될 때마다 '새로운' , '순수한', '신성한' 시간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신년이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하는 행위도 이러한 맥락이다. 어떤 의례를 통해서 세속적인 시간이 일시적으로 단절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거나, 자기 전에 감사의 일기를 쓰는 시간은 성스러운 시간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습관들 예를 들어 일을 하기 전에 커피를 한잔 타 온다거나, 컴퓨터 자판을 치기 전에 손가락 운동을 하는 것도 일종의 의례에 속한다. 최근에는 의식적으로 좋은 습관, 행동을 만드는 데 이것을 리츄얼(Ritual)이라고 표현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태어난 날을 우리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날은 한 존재의 탄생이고, 성스러운 시간이다. 낸시 틸먼의 그림책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에는 네가 태어난 그날 밤은 더없이 멋지고 근사한 날로 머나먼 곳에서 기러기들이 돌아오고, 북극곰들이 새벽이 올 때까지 춤을 추었다고 나온다. 이 책은 우리가 오직 하나뿐 인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준다. 굳이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그날을 기다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숨을 죽이며 그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태어나면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존재로 태어났고 매년 생일을 맞이한다.


돌아보면 생일이라는 단어 뒤에는 잔치, 파티가 어울린다. 생일은 함께 축하해주는 축제의 시간이었다. 이제는 탄생(誕生)이라는 결과보다는 재생(再生) 즉, 새로운 시작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태어난 날, 그날의 일종의 의식을 행하여 보는 것은 어떨까. 의식을 행하는 일 자체가 성스러운 시간을 즐기는 것이고, 내가 새롭게 태어남을 축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의 '내'가 내년의 '나'에게 편지를 써 봐도 좋고, 인생 책이나 영화를 매년 보고 그 느낀 점을 적어봐도 좋고, 매년 내 생일날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세상의 일을 살펴보는 것도 좋고, 좋아하는 장소에 매년 방문해서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생일 의식을 행한다면 무엇이든 좋다.



누구에게나 매년 주어지는 다시 태어나고 다시 시작되는 시간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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