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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Dec 26. 2020

이야기, 인생, 자기 정체성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소설인 줄 알았다. 이 책은 신경학과 의사가 병이 아닌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두고 그들의 병을 에피소드로 모아놓은 이야기이다. 표제작인「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시각 인식 불능증을 겪는 P선생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보통 사물을 접할 때 그것을 다른 것들과 관계 속에서 본다. 하지만 그는 관계를 짓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을 못 알아보고 심지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고 모자를 쓰려고 시도한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놀라운 내용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정체성의 문제」로 코르샤코프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톰슨 씨는 화려한 언변과 끊임없는 농담으로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이야기에는 항상 새로운 인물들과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와 같다. 그는 왜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역사와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연속하는 역사와 과거가 개인의 인생을 이룬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이다".

하지만 그는 기억, 존재, 의의가 단절된 상태이고 잊히고 사라진 것들을 메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자신을 구원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는 사회적 요구나 인간적인 요구에 정체성이 혼미한 상태로 계속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가 침묵할 수 있다면 그가 만들어낸 기만적인 자신과 결별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이 살아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평정심을 가질 수 있는 때는 인간이 없는 세계, 오직 자연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내가 느끼고, 보고,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들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현재는 과거의 경험층이 모여 이야기가 이루어졌고, 미래는 앞으로 전개될 에피소드가 더해질 것이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것은 내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깊어진다. 만약 글로 표현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정교해지고,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는 날개를 달아 자유롭게 전개될 수도 있지만, 화자인 '나'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2020년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고, 올해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2021년은 내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할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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