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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Jan 07. 2021

행복하고 안전한 거리

그림책, 행복한 사자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이 시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류시화의 <첫사랑>이다.

대학교 겨울방학 때 편지를 한 통을 받았다. 내 집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과친구가 편지를 보내다니 의아했다. 첫사랑과 얼마 전에 헤어졌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녀는 우리 과 예비역 선배를 좋아했고, 먼저 고백을 해서 사귀게 되었다. 그 친구의 용기에 놀랬고,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할 때 눈이 반짝 빛나면서 발그레한 얼굴이 참 귀여웠다.

편지에 헤어진 이유는 없었다. 다만 류시화의 <첫사랑>의 시가 적혀있었다. 그녀가 하늘에 별 하나를 올려다보며 울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나를 스쳐간 기분이었다.


그림책《행복한 사자》가 있다. 표지는 다홍색 배경에 사자가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표지 색감이 예뻐서 우리 딸이 좋아한다. 몇 번을 읽어줬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는 눈치다. 매번 읽을 때마다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나는지 "행복한 사자 읽어줘요"하며 내게 가져온다.

프랑스에 어떤 아름다운 마을이 있고, 공원이 있다. 공원 한가운데 사자가 살고 있다. 물론 둘레에 도랑이 있어서 물이 채워져 있고 사람들은 날마다 그곳을 지나가면서 사자에게 인사한다. “행복한 사자야, 안녕”


어느 날 공원 문이 열려있어 행복한 사자는 자신이 친구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커다란 앞발로 사뿐사뿐 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만,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도망가기 시작한다. 늘 다정하게 대해주던 사람들이었는데 행복한 사자는 그런 모습이 너무 이상했다.


어느 순간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이 사자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데, 관리인 아들 프랑소와가 그것을 보고 사자에게 달려와 인사를 한다. “안녕, 행복한 사자야, 나랑 같이 공원으로 돌아가자”


그 일이 있고부터 사자는 공원 문이 열려있어도 다시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자는 바위 정원에 앉아 있는 게 더 행복했다. 친구들이 찾아와서 도랑을 사이에 두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안녕 행복한 사자야”하고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많이 접했던 단어가 '거리'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에도 각자가 느끼는 편안하고 안전한 거리가 있다. 거리를 갖고 바라보는 것,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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