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사랑을 하면 하루하루가 감정의 콜러코스터이다. 어떤 날은 마음이 하늘로 붕하고 솟아오르고, 어떤 날은 땅으로 쿵하고 떨어진다. 끊임없이 되풀이는 되는 감정 기복은 어떠한 맥락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의 주체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고, 혼자 중얼거린다. “난 미쳤어”(174쪽),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204쪽), ”난 끔찍해!”(240쪽).
롤랑 바르트는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이다. 텍스트는 좁은 의미로 기호 가운데 구어 또는 문어 등의 언어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문학작품은 하나의 텍스트이고 독자가 경외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한다. 즉, 텍스트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하며 읽기와 쓰기라는 체험을 통해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사랑의 단상》은 제목만으로는 연애지침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랑을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의 파편들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앞에 두고 무대에서 하는 독백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우연적인 별거 아닌 일들로 기쁨, 슬픔, 괴로움, 절망 등 복합적인 감정이 비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대상으로 바르트가 사랑의 주체인 ‘나’를 구성하여 고백 형식으로 풀어썼다.《사랑의 단상》은 2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바르트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명성과 인기를 가져다주었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담론의 파편들을 문형(figure)으로 부를 수 있다. 이 문형은 ‘생동감 넘치는 행동하는 상태의 포착된 몸짓'(14쪽)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문형마다 서두에 논지(argument)가 적혀있다. 논지는 문형의 정의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구조 안에서만 용도를 갖는 하나의 문장'(15쪽)이다. 사랑의 주체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기에 순서를 정해서 배열하거나 정돈하기 어렵다. 하지만 책은 일정한 순서가 필요하기에 바르트는 문형의 이름을 짓고, 알파벳 순서로 정리하였다. 따라서, 독자는 책을 펼쳐서 읽고 싶은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괜찮다.
사랑의 주체는 모든 순간의 가치를 긍정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죽는다. 사랑 앞에서 무참히 무너져 자신이 용해되어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 사랑에 저항하지 않고 굴복하고, 자신의 약함을 긍정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욕망의 특별함이다. 내 욕망의 특별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명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근사해”라고 말한다. “당신이 근사하기 때문에 근사하다 ”,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42쪽)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 없는 언어의 맨 마지막에 ‘나’는 긍정으로 도취된다. 사랑에는 두 종류의 긍정이 있는데 하나는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긍정이고, 또 하나는 첫 번째 긍정이 의혹으로 찢겨지고 사랑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상황이 대두되었을 때이다. '나'는 위기의 순간에 이 상황을 벗어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 나는 긍정을 긍정한다. 사랑의 주체인 '나'는 처음의 긍정을 반복하지 않고 새롭게 다시 긍정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시 시작하자고"말한다.
사랑의 주체는 언어로는 감추면서 몸으로 드러낸다. '나'는 내 감정의 지나침을 말로 하지 않는다. 내 언어는 침묵하고 위장한다. 하지만 내 몸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내 언어가 감추는 것을 몸은 말한다.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검은 안경을 쓴다. 이 몸짓에는 눈물을 감추면서 울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있다. 그에게서 "무슨 일이오?"라는 다정한 질문을 유발하고자 하는 행동이지만 어디까지나 도박이다. 그가 이 별난 안경에 관심이 없어서 그 기호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사랑의 주체는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했을 때 접촉된 육체는 기호가 되고 그 다른 육체로 번져나가며 무한한 의미를 만든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수많은 소설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손바닥 안에서의 미세한 움직임, 비키지 않는 무릎, 아무 일도 아닌 듯 늘어뜨려진 팔. 그 위로 차츰 다가와 기대는 그의 머리. 그것은 미묘하고도 은밀한 기초들의 천국이다. 감각의 축제가 아닌 의미의 축제이다.
사랑하는 '나'와 글을 쓰는 '나'는 거리가 있다. 사랑의 주체는 깊은 상념의 불완전한 상태이고, 글 쓰는 주체는 이미 그 터널에서 나와 안정된 상태에서 글을 쓴다.《사랑의 단상》에는 사랑의 기쁨보다는 사랑 때문에 고뇌하는 문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글 쓰는 주체인 '나'는 사랑의 주체인 '나'와 거리를 두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긍정하고자 한다.
바르트는 사랑하는 사람의 순간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서 소설적으로 표현했다. 사랑하는 주체가 말하는 불연속적인 말들을 독자가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랑을 해 본 사람은 바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기호는 다를 수 있지만 의미는 통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래 나도 그때 이런 기분이었어"하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