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다. 호메로스의《일리아스》가 신과 인간에게서 태어난 영웅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라면 《오뒷세이아》 는 지혜로운 인간 오뒷세우스의 이야기이다. 오뒷세우스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20년 만에 귀향한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지만 후세에 이름을 남기면 불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은 인간이 오랫동안 꿈꿔온 소망이다.
영화, 드라마에는 불멸의 존재가 자주 등장한다.《트와일라잇》의 애드워드는 뱀파이어고,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외계인,《도깨비》의 김신은 도깨비이다. 만약 인간이 영원한 삶을 산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탈리 베비트의《트리갭의 샘물》은 안데르센상을 받은 작품이다. 신비스러운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 터크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은 어떨까.
제시 터크는 열일곱 살이지만 104년을 살았다. 지금 상황을 돌릴 수 없다면 즐기기라도 해야 한다며 세상 구경을 하러 돌아다닌다. 아버지 터크는 숨어 지낸다. 세상의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화하지만 자신의 가족은 영원히 한자리에 멈춰있는 삶이라서 마치 길가의 놓여있는 돌멩이와 같다고 여긴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의 아내 매는 좋든 싫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간다. 제시의 형 마일스는 사십이 되어도 항상 변하지 않는 모습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며 아내가 자식을 데리고 떠났다. 그는 아버지처럼도 제시처럼도 살고 싶지 않다. 세상에 속해 있는 이상 무언가 쓸모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무엇을 할지 찾지 못했다. 터크의 가족은 각자의 삶을 살다가 10년마다 한번 8월 첫째 주에 트리갭 샘터에서 만난다. 10년이면 꽤 오랜 세월이지만 터크 가족에게는 체감되지 않는다.
영화 《아델라인》은 자동차 사고로 영원히 늙지 않는 아델라인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10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29살로 살고 있다. 이 영화는 여주인공역을 맡은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시대별 패션을 보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워진다. 그녀도 역시 10년마다 직장도 옮기고 이사를 다닌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항상 아름다운 그녀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녀의 삶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다. 딸은 이미 백발 노부인이 되어 만나면 마치 할머니와 손녀를 보는 듯하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죽는다. 강아지의 죽음을 그녀는 사는 동안 몇번을 경험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한때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의 청혼을 받아줄 수 없어 말도 없이 도망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미래, 같이 늙어갈 미래가 없기에 이제 그녀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피한다.
우리는 마감(dead line)의 힘을 안다. 마감이 있어서 계획한 것을 실행하고 끝낼 수 있다. 우리 삶도 유한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삶은 움직임이다. 매 순간 변화하고, 자라고, 새로워진다.
이따끔 거울을 보다가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한다. 갑자기 서글퍼지기도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의연해지자. 지금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