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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Jan 13. 2021

크눌프가 나를 찾아온다면

헤르만 헤세,  크눌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방랑자 친구가 찾아오면 어떨까.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는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크눌프의 이야기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느슨하지만 기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한마디로 매일매일을 일요일처럼 산다. ‘크눌프’는 헤르만 헤세가 아끼고 사랑한 인물이다. 헤세가 쓴 편지에는 자신의 고향 칼브를 다시 찾았을 때,  거리 곳곳에서 크눌프가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칼브에 방문한다면 우리는 크눌프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크눌프》는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초봄>, <종말>이라는 세 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작품을 쓴 시기는 헤세가 결혼을 하고 안정된 생활을 시작했으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했던 시기이다. 이 소설은《데미안》이전의 작품으로 자기 성찰적인 소설을 왕성하게 발표하기 전 단계에 쓰였다.《데미안》은 청소년 필독서로 유명한 작품이라면《크눌프》는 성인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그리고《크눌프》는《데미안》보다 쉽게 읽힌다.


자유로운 영혼 크눌프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떨까. 이 책에 크눌프를 묘사한 부분이 있다.

" 마치 가정집에서 모든 사람들의 관대한 용납을 받는 귀여운 고양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부지런히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 자신은 아무 걱정 없이 우아하게, 화려할 정도로 당당하게 지내고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크눌프는 몇 년 만에 무두장이 로트푸스에 집에 방문한다.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크눌프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직 아이는 없다. 자신이 일구어낸 모든 것을 흡족해하며 크눌프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 같은 사람은 집과 가게가 있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네. 이보게, 자네도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장인이 되었을 테고 나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을 거야.” “난 지금 진심으로 하는 얘길세, 크눌프.”

“나도 마찬가지야, 로트푸스. 하지만 마치 결혼이란 걸 자네가 고안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할 것까지는 없네.”

친구의 부인이 크눌프를 유혹한다. 하지만 크눌프는 그 상황을 잘 대처하고 친구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행복을 만족해하고 자랑할 때 사실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일 수 있다.


수선 전문 재단사 슐로터베크는 혼자 투덜투덜하며 일을 하고 있다. 크눌프가 친구를 찾아간다.

“자넨 여전히 불평을 해야 하겠나, 슐로터베크”

“어휴, 크눌프, 말하고 싶지도 않네. 저 옆방에서 애들 소리 지르는 게 들리지 않나. 이젠 다섯이야. 여기 앉아 밤늦게까지 중노동을 하는데도 항상 부족하기만 해. 그런데 자네는 산책 말고는 하는 일이 없으니!”

“날보게! 자네는 나를 부러워하면서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 친구는 아주 편하게 살고 있다. 가족도 없고 근심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네."

크눌프는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낯선 곳으로 입양이 되어 버렸다. 아들을 보기 위해 그 도시를 찾아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스쳐 지나가면서 휘파람을 불어줄뿐이다. "자네에게 자식들이 있다는 걸 기뻐하게나!"

지금 내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고충은 있는 법. 같은 상황도 달리 보면 긍정으로 다가온다. 내 스스로가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크눌프는 폐결핵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숲을 걷고 또 걷는다. 그는 생각 속에서 하느님과 대화를 한다. 그의 삶의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일들이 왜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어야 하는지에 대해.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했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겐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 주어야만 했다."


친구들은 크눌프의 살아온 방식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둔다. 그들 또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산다. 때때로 크눌프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피난처가 필요할 때, 그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크눌프가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각자는 자신의 삶이 있다. 내가 선택한 삶을 내 방식대로 충분히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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