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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심 Jan 18. 2021

삶을 산다는 건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生)

내가 알고 있는 '모모'는 두 사람이다. 한 명은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임을 소녀 모모는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또 한 명의 '모모'는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다. 원래 이름은 마호메드이고 그는 어릴 때부터 로자 아주머니에게 맡겨져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산다. 소년 모모는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생(生)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은 생(生)을 미화할 생각도, 상대할 생각이 없다. 생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여긴다.


에밀 아자르의《자기 앞의 생》은 작가 로맹 가리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발표한 작품이다.《자기 앞의 생》은 공쿠르 상을 수상하는데 이 상은 원래 한 작가에게 한 번만 주는 상이지만, 로맹 가리는 공교롭게도 두 번 상을 받는다. 로맹 가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로맹 가리라는 고정된 이미지에 안주하기 싫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고, 다른 존재로 살고 싶어서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에밀 아자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에밀 아자르의 작품 세계를 인정받는다.


이 소설은 모모와 그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에게 세 살 때 맡겨진다. 로자 아주머니는 돈을 받고 창녀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을까 해서 복통과 발작을 일으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좀 더 관심을 끌어보려고 아파트 여기저기에 똥을 싸갈겼지만 그래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 뒤에는 가게 주인이 여자인 곳에 가서 물건을 훔친다. 그 이유는 틀림없이 자신의 엄마도 여자일 테니까. 모모는 자신을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증거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 뒤 모모는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존재가 되려고 일탈행동을 하곤 한다. 모모는 현재도 미래도 관심이 없다. 하루하루가 그냥 똑같은 삶이다. 행복해지기보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좋다. 어차피 행복은 자기편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도 안 쓴다.


로자 아줌마는 구십오 킬로나 되는 체중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칠층을 올라 다닌다. 층계는 그녀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젊은 시절에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간 적이 있어서 가끔 겁게 질려서 지하실로 숨는다. 지하실은 '유태인 둥지'라며 그녀에게는 어떤 존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그녀가 가끔 꺼내보는 사진 한 장. 열다섯 살의 로자 아줌마는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지금의 그녀는 예순아홉, 정신 노쇠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그녀를 보고 있으면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 같다. 층계보다 더 두려운 것은 모모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녀는 모모의 나이를 속인다. 열 살 모모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했고, 그 이유는 실제 나이가 열네 살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모모는 열 살에서 열네 살이 된다. 


하밀 할아버지는 아래층에서 양탄자 행상을 하시는데 매일 웃고 있다. 그는 육십 년 전쯤 사랑했던 처녀가 있었고 그녀에게 평생 잊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녀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하밀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 당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모의 이름도 모르고 심지어 그가 사랑했던 기억도 생각나지 않는다. 생은 매일 그의 시간을 도둑질하고 있었다. 모모는 그에게 말한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그제야 그는 얼굴이 환해진다. "그래. 나도 젋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하지만, 그는 사랑했던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모모는 할아버지를 부른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을 그에게 상기시켜주기 위해서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 하밀 할아버지가 소중한 존재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아침마다 눈을 뜨기를 희망했고, 그녀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로자 아줌마는 무척 아름다웠다고 기억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다.


모모는 어리지만 이미 생(生)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소중한 시간과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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