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인 '돼지 농부' 김건태 비전농장 대표
지난해 국내 농업 생산액 순위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돼지고기 생산액이 6조 7702억 원을 기록하며 6조 4000억 원대에 머문 쌀 생산액을 제치고 농업 생산액 1위로 올라섰다. 한국 농민들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품목이 쌀이 아닌 돼지고기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내 양돈농가는 웃음 짓지 못 한다. 생산액만 놓고 보면 2015년에 기록한 6조 9670억 원보다 약 2000억 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가 생산액 순위 1위로 올라선 건 쌀 가격이 돼지고기 가격보다 더 큰 폭으
로 하락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난 5월 16일 충남 홍성군 매현리에 있는 비전농장을 찾은 건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양돈농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1977년부터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건태 대표를 만났다. 어미 돼지 한 마리로 농장을 시작한 그는 40년 만에 돼지 사육 규모를 7000여 마리까지 늘렸다. 새끼를 낳는 어미 돼지만 약 700마리로 매년 비전농장을 거쳐 시장에 출하되는 돼지는 1만 1000여 마리에 달한다. 연 매출 30억~40억 원대를 거두고 있다.
농장에서 만난 김 대표에겐 기업 창업주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한국경제기자 신문 기자라 소개하자 그는 1970년대 초반 경제신문에서 읽었던 기사 한 토막으로 말문을 열었다. 경제신문에서 성공한 자영업자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해보니까 상가가 자리 잡은 목이 40%가량의 비중으로 성공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두 번째가 오너의 경영능력으로 25%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상가가 자리 잡은 입지야 바꿀 수 없지만 오너의 능력에 따라서 불리한 입지에 자리 잡은 상가도 성공할 수 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 말처럼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껏 줄곧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대목장을 일궈왔다. 이제 그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자.
농사짓기 싫어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김 대표가 어떤 마음으로 양돈업계에 뛰어들게 된 사연 등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FARM에 소개된 포스팅을 참조하기 바란다.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포스팅은 경영학적 관점을 주된 바탕으로 내가 취재한 농부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하는 데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농장의 규모를 어느 정도 키워낸 1990년대 초반 김 대표는 평소 거래하던 제일제당 사료 영업 담당자로부터 특약 대리점을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흔쾌히 응한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단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삼성이란 대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마음이 컸다. (제일제당은 1993년 분리되기 전까지 삼성그룹 계열사였다)
그곳에서 그는 회계, 재무, 영업 등 기업 경영의 토대가 되는 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회계·재무 지식이지 쉽게 말해 전표 정리와 연·분기·월간 실적 보고서 작성 등 아주 기본적인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농장에서 돼지 키우는 일에만 몰두했다면 쉽게 익히기 힘든 지식들이었다.
그는 "삼성이 대기업은 대기업인 게 정기적으로 대리점주들을 모아 교육을 시켰다"고 그는 설명한다.
대리점을 운영하던 시절 배웠던 기본적인 회계·재무 지식은 그가 농장 규모를 늘리는 데는 물론 훗날 대한한돈협회와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등 굵직굵직한 협회장 자리를 맡아 단체를 운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돼지고기 생산원가의 60%를 차지하는 건 사료값이다. 사료값을 낮출 수만 있다면 돼지농가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김 대표를 만난 날에도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 돼지 사료로 쓰이는 미국산 옥수수와 대두박(대두 콩껍질)의 국제 시세를 확인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사료값을 낮추기 위해 1990년대 중반 미국 시찰에서 배운 '자가 배합사료' 방식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1993년께 미국 양돈농가를 방문한 그는 미국 농부들이 돼지들에게 먹이는 사료를 유심히 봤다. 미국 축산업계에서 농부가 직접 칼슘과 비타민 등 필수 영양소가 담긴 소량의 프리믹스(Pre-Mix) 사료를 사다가 옥수수와 대두박(대두 껍질)과 섞어 직접 사료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농부가 직접 맞춤형 사료를 만들기에 그만큼 사료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는 이후 인근 양돈농가들과 3~4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7년 자가 배합사료를 생산하는 홍주골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미국에서 프리믹스 사료를 수입한 뒤 지역 축협 가공공장에서 옥수수, 대두박과 섞어 사료를 위탁 생산하도록 했다. 주문자 상표 부착(OEM) 방식 사료의 시작이었다.
김 대표는 1997년부턴 자체 돼지고기 브랜드도 개발해 운영해오고 있다. 동축포크란 이름의 돼지고기 브랜드를 만들어 1997년 충남 홍성에서 직판장을 열었다. 직판장을 통해 판매하는 돼지고기는 농장에서 출하하는 돼지고기의 10% 가량이다. 소비자와의 직거래 유통망을 갖고 있어야만 외부 시장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농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비전농장은 2만여평(6만6000㎡) 넓이의 목초지를 품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빛 초원을 보면 마음도 시원해진다. 이곳엔 가축 사료로 쓰이는 조사료인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목초가 자라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초원에 농장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목초를 길러 사료로 쓰면 돼지들에게 영영가 있는 먹이를 먹일 수 있을 뿐더러 생산원가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 년에 두 차례 풀을 수확해 돼지들에게 먹이는 데 그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목초 가공공장을 지어 가공 사료를 제조해 주변 농장들에 판매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기업 오너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경영의 성패가 100%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기자와 함께 풀밭을 걷던 그는 2000년대 초반 그가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을 맡았던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맺었던 일화에 대해 털어놨다.
당시 그는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 자격으로 매 분기 산하 축산단체장들과 함께 청와대로 가 대통령과 식사를 함께했다. 축산인들의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하면서 의견을 전하는 자리였다.
김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농림부 관계자가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정하기 위해 농림부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데 축산업계에선 건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냐는 전화였다.
김 대표는 '한국은 사람들이 삼겹살만 먹어서 삼겹살 값은 높고 안심·등심 가격은 낮은데 반대로 일본은 사람들이 안심·등심 위주로 먹어서 안심·등심 가격은 높고 삼겹살 값은 낮으니 일본과 한국이 서로 안 먹는 부위를 수출하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의견을 들은 농림부 공무원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무슨 삼겹살 이야기를 하냐'며 그저 웃고 넘어갔다. 반응이 그렇게 나오자 김 대표도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다.
얼마 뒤 정해진 날짜가 돼 김 대표와 산하 단체장들이 청와대로 가 김 대통령과 식사를 함께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때 축산업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고 김 대표는 지난번 농림부 공무원에게 이야기했던 한일간의 돼지고기 수출입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이야기를 들은 김 대통령이 논의해볼 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아이디어를 낸 돼지고기 수출입 건은 결국 정상회담 의제에 오르게 된다.
김 대표는 그때를 떠올리며 "최고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조직이 180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단 걸 배웠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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