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피셔와 켄 피셔의 책을 읽고 역사와 인간에 대해 생각하다
최근엔 아버지와 아들 둘 다 투자의 대가로 꼽히는 필립 피셔와 켄 피셔 부자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필립 피셔는 20세기 중후반에 전성기를 보낸 인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발굴해 투자한 뒤 기업 가치가 오를 때까지 장기간 기다리는 성장주 투자의 창시자로 불린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산운용사 피셔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한 켄 피셔는 오늘날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거물 투자자다. 2014년 포브스가 뽑은 미국 자산 순위 240위에 오른 부호다.
이들 부자의 책은 모두 네 권 읽었는데 우선 필립 피셔의 책은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1958>,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1975>를 읽었다. 켄 피셔의 책은 <3개의 질문으로 주식시장을 이기다, 2008>, <역발상 주식투자, 2017>를 읽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지만 두 피셔의 투자 철학은 상반된다. 필립 피셔는 개별 기업에 대한 치밀한 조사를 통해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수의 기업을 추려내고 일단 그 기업들에 한 번 투자하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선택을 믿고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모토로라 같은 주식은 30년 넘게 보유해 수천 퍼센트의 수익률을 거두기도 했다.
이에 비해 켄 피셔는 분산 투자의 신봉자다.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산업 분야, 여러 기업에 돈을 나눠서 투자한다. 투자한 기업 중 일부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 수익률이 플러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방식이다. 매년 계속해서 시장 평균 수익률보다 조금씩만 앞서 나가기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라는 게 켄 피셔의 철학이다.
피셔 부자의 책을 연달아 읽으면서 투자의 대가들에겐 세상과 인간,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경제·투자서적인 이 책들이 나에겐 그보다 철학서적 같이 느껴졌다.
사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투자도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실무적인 스킬보다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성패를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좌절을 안기고 있으며, 미래에도 사람들을 꺾어버릴 주식시장만큼이나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분야도 없는 거 같다. 주식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는 건 그만큼 인간 군상의 특징과 인간 개인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한 말 같다.
이 글에선 아버지 필립 피셔보단 아들 켄 피셔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써볼까 한다. 아버지가 비교적 담담히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데 비해 아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을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 그만큼 느낀 것도 많았다.
우선 켄 피셔의 글을 통해 내가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예전부터 그 이유에 대해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었지만 명확하게 설명하진 못했는데 그가 든 사례들을 통해 생각이 정리됐다.
지금 나에게 역사를 왜 배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눈 앞에 닥친 일에 '허둥대지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5년 동안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5분의 1로 조그라들었던 1930년대 초반의 대공황,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 독재자의 등장,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은 2차 세계대전. 이런 거대한 비극들이 앞으로 내가 사는 동안에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장담하진 못하겠다. 당대인들도 자신들이 그런 시련을 겪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을 테니.
만약 저런 비극들이 다시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세상 망했다고 외치며 한숨만 푹푹 쉬고 있어야 하는 걸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역사책을 읽는 건 그 속에 나와있는 숱한 비극과 시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대인들의 노력에 대해 읽음으로써 비슷한 사건이 터졌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다. 그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든 아니면 나 개인에 국한된 문제든.
켄 피셔는 자신의 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역사적 배경지식이 전무한 대중매체들 때문에 각종 경제 위기들이 더 확산됐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의 언론관은 신문사 기자인 나로선 불편할 정도로 비판적이며 대중매체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그의 언론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엔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주요 경제매체들이 어느 정도 제대로된 역할을 했다. 경험 많은 기자와 편집자들이 있었기에 경제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과거에도 이런 일은 수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이런이런 수단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했었으니 이번에도 그런 방법이 도움이 될 거다'는 식의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각종 인터넷 매체들이 나오고 언론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높은 연봉을 받는 경험 많은 기자와 편집자들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그 자리를 적은 임금만 줘도 되는 경험 부족한 젊은 기자들이 차지했다. 젊은 기자들만 넘쳐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슨 일만 터지만 세상이 망한 것처럼 기사를 써대는 통에 시장과 대중은 더욱더 패닉에 빠지게 되고 덕분에 경제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켄 피셔가 그런 악순환의 대표적인 사례로 든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그는 금융위기의 여파가 작은 건 아니었지만 역사적 사례를 찾아볼 때 그 같은 규모의 금융공황은 수차례 있어왔다며 우리가 좀 더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문제를 그처럼 키우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도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이 금융위기를 부른 게 아니라 미국 정부가 금융기업 보유 자산 평가 기준을 성급하게 고친 것에서 찾고 있다. 독창적인 견해다.
그의 책 <역발상 주식투자>(Beat the crowd)에선 경제와 금융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 수십 권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 내용에 대해 짧게 짧게 요약돼 있다.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과거 역사를 통해 비슷한 사례와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으니 너무 허둥대지 말라는 뜻에서다.
켄 피셔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3개의 질문으로 주식시장을 이기다>에 나오는 세 가지 질문이 그것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들이 다 맞다고 하는 믿는 것들이 진짜 맞는지 다시 한번 따져봐라. 인간은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실에 대해선 꼼꼼히 따지며 검증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둘째 남들은 모르고 있지만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사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해라.
셋째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이 나의 이성에 따른 판단인지 아니면 원시시대부터 이어져내려 온 본능에 따른 것인지 구분해라. 수백만 년 동안 살아남는 게 최우선 목표였던 우리 인류에 뇌에는 조금의 위험도 감당하지 않으려는 본능과 한 번 옳다고 믿은 것은 계속해서 믿으려는 본능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익에 대한 기쁨보다 손실로 인한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원시적 본능 때문이다. 공포와 확증편향이 당신을 집어삼켜 이성적인 판단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항상 경계해라.
이 세 가지가 켄 피셔가 그의 책에서 줄곧 이야기하는 자신만의 투자 비결이다. 주변 사람들이 믿는 걸 그대로 따라 믿고 일단 공포에 사로잡히면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는 인간 군상의 모습에 대해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의 그의 성공 비결인 것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남들이 모르는 사실이 무엇일지 항상 고민하는 태도와 자신의 판단이 때론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계속해서 각인하는 것이라는 게 켄 피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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