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땡전 한 푼 지원받지 않고 농민 교육을 하고 있는 이유는?
"농민 교육을 처음 시작한 건 1996년이에요. 연구소 동료들이랑 같이 회사에서 쓰던 중고 컴퓨터 열다섯 대를 갖고 경기 화성시에 있는 남양농협 김치공장 창고에 내려가서 농민들한테 컴퓨터 쓰는 법을 가르쳤죠.
처음엔 농민들이 우리 보고 컴퓨터 팔러 온 사람들인 줄 알았데요.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라고 소개하긴 했는데 농민들은 잘 모르니까 삼성이란 말만 듣고 '컴퓨터 팔아먹으려고 이러는구나'하고 생각했던 거죠. (웃음)"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 농업계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이력을 밟아 왔다. 일본 도쿄대에서 농업경제학 박사를 받고 1995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한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농촌으로 향했다.
1996년 화성시에 있는 남양농협 김치공장 창고를 빌려 설과 추석 명절만 빼고 주말마다 농민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친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3년 동안 매주 서울과 화성을 오가며 농민들을 만났다.
2001년엔 아예 학교를 차렸다. 충남 금산군의 한 폐교에 차린 한국벤처농업대학이다. 지금껏 운영 중인 이 학교에선 농민들에게 경영 마케팅 회계 등 농업 비즈니스 전반을 가르친다.
졸업생은 18개 기수, 2500여 명에 달한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남양호 전 한국농수산대 총장 등 교수진도 탄탄하다. 정부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학생들의 등록금과 주변의 기부금만으로 운영된다.
그는 "예전에 모 농식품부 장관이 벤처농업대학에 정부 자금을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며 "감사한 말씀이지만 일단 한번 정부 돈을 받게 되면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들만 교육하겠다는 애초 설립 취지를 못 지킬 것 같아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과 벤처농업대학 교수 일을 함께 해나가던 그는 2008년 청와대 농수산비서관에 발탁된다. 이듬해엔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이 독차지하던 차관 자리에 민간 전문가가 깜짝 발탁된 보기 드문 경우였다.
이후 농업 연구·개발기관인 농촌진흥청장을 거쳐 2012년 다시 민간기업으로 복귀한다.
연구소 연구원에서 농민 학교 설립자로 거기서 다시 고위 공무원으로 변신을 거듭하던 그는 2016년 또다시 도전에 나섰다.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직을 내려놓고 훌쩍 네덜란드 와게닝겐 대학으로 1년간 농업을 공부하러 떠난 것이다.
20년 넘게 농업 현장을 누비며 농식품부 차관까지 지낸 그가 농업에 대해 더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농민들을 만나고 벤처농업대학에서 수업도 했어요. 앞으로 농업은 어떻게 바뀔 건지, 우리 농민들은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그런데 그렇게 몇 년 하고 나니까 점점 밑천이 바닥나더라고요.
새로운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옛날에 차관이랑 농진청장했을 때 주워들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한 농민한테서 스마트팜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어물쩍거리는 제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때 "이래선 안 되겠구나. 내가 실력보다 과대 포장됐구나.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삼성 계열사 부사장이 받는 연봉과 그 자리가 주는 혜택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네덜란드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처음엔 주변에서 많이들 말렸다"면서 "연구소를 계속 다녔으면 몇 년 더 일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 가서 공부하러 가는 건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가 농업 선진국이란 건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다. 와게닝겐 대학교 농과대학은 그런 네덜란드의 농업기술 발전을 이끌고 있는 곳이다.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2016년 세계 대학 학과별 순위 중 농학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다.
1998년부터 네덜란드 정부가 와게닝겐 농과대학과 국립농업연구기관을 하나로 합쳐서 운영하는 게 이 대학이 갖고 있는 경쟁력의 비결이다. 민 교수는 이곳에서 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머물렀다. 그가 네덜란드 와게닝겐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농업이 발전하고 있는 나라예요. 한국 농업이 시속 50㎞로 달린다면 네덜란드는 80㎞쯤으로 달리고 있어요. 비행기로 치면 이미 이륙하는 걸 넘어서 상승 기류를 타고 쭉 앞으로 나가고 있는 거죠.
숫자만 봐도 그래요. 한국 온실에선 토마토를 평당 100㎏가량 생산하는데 네덜란드에선 평당 240㎏를 수확하거든요."
1996년 5월, 네덜란드 농업계는 보고서 한 편이 던진 충격에 휩싸였다. 네덜란드 농업의 미래를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브람 보고서(원제 : 지속가능한 지식, 지속가능한 농업)'가 주인공이다.
당시 로테르담 시장이던 브람 페퍼의 이름을 딴 이 보고서는 네덜란드 농업의 발전을 위한 과감한 구조조정 방안 13가지를 담고 있다. 와게닝겐 농과대학과 국립농업연구기관을 하나로 합쳐서 농업 교육과 농업 연구가 한 곳에서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제가 네덜란드에 가서 봤더니 브람 보고서에서 나와있는 13개 제안 중에서 11개는 이미 완료됐고, 두 가지는 현재도 계속 개혁이 추진 중이더라고요. 1990년대 후반에 이미 20년 후의 미래를 그린 겁니다."
네덜란드 연수 시절에 대해 한창 설명하던 그는 기자를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그는 요즘 네덜란드에서 지내면서 만났던 농업 분야 기업인 60여 명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현업에서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CEO들을 섭외하기 위해 연수 6개월 전부터 와게닝겐 대학 측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을 들였다.
그는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 네덜란드 농업이 어떻게 바뀔지 알려면 지금 네덜란드 농업기업 CEO들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아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지식과 인사이트를 국내 농업계와도 나누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여 년간 연구원으로 농민학교 설립자로, 농정 관료로 일견 순탄한 삶을 걸어온 것 같은 민 교수도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없지 않았다.
그가 국내 농업계에 남긴 대표적인 성과로 꼽히는 게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이다. 하지만 그도 한때는 학교 운영이 힘들어 학교를 그만두려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2012년쯤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 몇 년 전부터 금산군에 있는 강당을 공짜로 빌려서 수업을 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된 거예요. 민간단체에 공공시설을 무료로 빌려줬다는 감사 지적 사항이 나왔던 거죠.
원래 그전에 학교로 쓰던 폐교는 너무 낡아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공간이 없어서 농민들을 못 가르칠 지경이 된 겁니다."
당시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는 "솔직히 그땐 나도 좀 비겁했었다"라며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그땐 저도 좀 지쳤었어요. 10년 동안 매달 지방에 내려가서 수업을 하고 차관 일, 농진청장 일도 하면서 학교 운영도 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주변 사람이나 아내한테 '이제 10년 됐는데 10년이면 많이 한 거 아니야?'라고 묻고 다니면서 스스로 그만두는 걸 합리화하기도 했었고요.
밤 10시에 수업을 마치면서 이제 강연장도 마련하기 힘들고 해서 학교를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놨어요. 그랬더니 학생 농민 분들이 다들 울면서 말리시더라고요. '박사님이 이렇게 그만두시면 농민들도 잘 사는 세상 만들어보자는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다음날 아침엔 각지의 졸업생 농민 분들도 달려오셔서 말리시고 난리가 났었죠."
다행히 그날 이후 벤처농업대학은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 벤처농업대학 졸업생 출신 금산군 농민이 자신이 갖고 있던 땅을 싼값에 학교 측에 넘긴 덕분에 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농민들이 적게는 몇 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 기부를 해준 덕에 건설비 4억 원도 모금할 수 있었다.
민 교수는 "다른 학교에 비하면 '하꼬방'(판잣집을 일컫는 속어) 같은 시설이겠지만 10년 넘게 남의 집에서 살다가 우리 집을 갖게 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지난 18년간 벤처농업대학이 정부의 지원 없이 운영될 수 있었던 비결은 전적으로 농민들의 열정 덕분이라고 말한다. 벤처농업대학은 한 달에 한 번씩 1박 2일 수업을 한다. 토요일에는 오후 세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아홉 시간 동안 수업이 이어진다. 수업을 네 번 이상 빠지면 졸업을 못 한다.
졸업할 때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자신의 농장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설명하는 사업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1년 등록금은 120만 원가량이다. 농번기에는 시간을 내기 힘든 데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농민들로선 학교를 졸업하기가 만만한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매년 한 기수 200명 내외의 신입생을 모집할 때면 보통 3대 1 가량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농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벤처농업대를 시작한 건 충분히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남이라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하지 못해 평범한 '원석'으로 남아있는 걸 농업 현장을 다니면서 많이 봐서 그래요. 제가 처음 1996년도에 화성에서 농민 교육을 시작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게 3년간 매주 찾아뵙고 교육을 하니까 교육을 듣던 분 중에서 세 분이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다음에 대학까지 진학하시더라고요. 평생 농사일만 하느라 모르고 있었던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신 거죠. 요즘은 20년 전에 비해서 농민 분들의 학력도 정말 많이 올라가긴 했어요.
그래도 벤처농업대에 와서 새롭게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알고 경영과 마케팅에 눈 뜨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는 게 제일 큰 보람이죠"
민 교수는 앞으로 미래 농업의 성패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농업 분야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머물렀던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은 이론으로 알고 있던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시설이나 소프트웨어는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진다"며 "그에 비해 데이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가 시설원예가 강하잖아요? 그중에서도 유리온실 자재 쪽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업체가 '프리바나 홀티맥스예요. 그런데 이쪽 임원들을 만나보면 온실 자재 제조기술은 5년만 지나면 금세 후발국가들한테 따라 잡힐 거라고 보고 있어요. 소프트웨어 기술도 10년이면 따라 잡힐 거라고 보고요.
그런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따라 잡히더라도 데이터만큼은 쉽게 따라잡을 수 없거든요. 이 회사는 기온이나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도 만들고 있는데. 앞으로 이 센서를 사용하는 유리온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전 세계 농가들의 재배 정보도 모을 수 있게 되겠죠.
전 세계에서 들어온 재배 데이터를 갖고 농가들에 어떻게 하면 작물이 잘 자라는지 컨설팅을 해줄 수도 있을 거고요. 그렇게 되면 농업 분야에서 고소득 일자리가 새롭게 만드어지겠죠. 네덜란드에선 '빅데이터 사이언스센터'를 만들어서 학계와 업체가 농업 데이터를 공유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어요."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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