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안드레스는 어떻게 10년간 400만 명을 먹일 수 있었을까?
센트럴 키친(Central Kitchen)은 식품업계에선 ‘중앙 집중식 조리시설’이라 불리는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가리킵니다. 식자재 전처리(조리 전 재료 손질)를 전문으로 하는 공장에서 미리 식자재를 씻고, 다듬고, 먹기 좋게 잘라서
그리고 메뉴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조리까지 한 다음에 포장해서 식당들로 보내면 식당 조리실에선 편하고 빠르게 음식을 조리해 손님들 앞에 내놓는 시스템을 말하죠.
센트럴 키친 시스템을 도입하면 식당들로서는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들이는 인력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어느 지점에서든 똑같은 맛의 음식을 내놓을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되죠.
그리고 여기 ‘센트럴 키친’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는 단체가 하나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이름 앞에 월드(World)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월드 센트럴 키친’이란 이름의 단체죠.
이곳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요? 전 세계 식당들을 대상으로 식자재를 공급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세워진 회사일까요? 아니면 세계적인 식당 체인을 꿈꾸는 프랜차이즈 외식업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은 2010년부터 지금껏 10년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제 구호단체입니다. 자연재해와 기아 등에 시달리는 현장을 찾아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단체죠. 이름에 ‘키친’이란 표현이 들어가는 건 이 단체의 주요 멤버들이 모두 요리사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단체의 창립자는 미국에서 유명한 요리사, 흔히 말하는 ‘스타 셰프’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28곳을 운영하는 호세 안드레스가 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각종 방송에 나와 인기를 끌면서 많은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그는 몇 가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2019년 노벨평화상 후보 중에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고요. 또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꼽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 순위 9위로도 뽑혔습니다.
그와 같이 순위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에는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 부부(1위)가 있고요. 마화텅 텐센트 창업자(4위),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5위) 등 쟁쟁한 인물들도 목록에 포함돼 있습니다.
노벨평화상 후보와 <포춘>이 선정하는 위대한 리더는 그저 요리만 잘 한다고 해서, 레스토랑 20여 곳을 잘 운영한다고 해서, 방송에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뽑힐 수 있는 자리는 아닌데요. 호세 안드레스와 그의 동료들이 만든 ‘월드 센트럴 키친’이 어떤 활동을 해왔길래 그는 이 같은 주목을 받는 걸까요?
‘월드 센트럴 키친’의 10년간의 활동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전 세계 재난 지역에 가서 400만인 분의 식사를 무료로 지원했다’는 겁니다. 음식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활동을 해왔던 게 그가 노벨평화상 후보가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요리사로서 우리는 좋은 음식이 사람들에게 영양분을 줄 뿐만 아니라 특히 위기에 순간에는 안도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게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명입니다.
재난 현장에서 제공되는 음식이라고 하면 군용 식량이나 컵라면, 삼각김밥, 통조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셰프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만큼 '월드 센트럴 키친'에서는 미리 조리해서 포장된 음식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요리해서 만든 음식을 이재민들에게 제공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재활용이 가능한 식기에 담아 제공하는 게 이 단체의 원칙이죠.
호세 안드레스가 이 단체를 만든 건 2010년이었습니다. 당시 큰 지진 피해를 입은 카리브해 국가 아이티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그로 하여금 단체 설립을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연재해가 할퀴고 지나간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폐허 더미 위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구하지 못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과 동료들이 나서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죠.
“큰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는 게 그가 남긴 말인데요. 음식이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음식을 만들어 그들에게 제공하면 된다는 뜻이죠.
이 단순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와 동료들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푸에르토리코, 화산이 폭발한 과테말라, 지진과 쓰나미가 몰아닥친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몰려든 콜롬비아 등 배고픈 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10년간 400만인 분의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포춘>에서는 그를 위대한 리더로 뽑은 이유에 대해 상당히 긴 분량을 들여 설명했는데요. ‘안드레스와 그의 팀은 구호활동을 위해, (정부 당국의)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게 <포춘>이 그들의 활동을 표현한 말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오늘 당장 먹어야 한다. 수십 차례의 회의와 계획을 세운 후, 내일이나 앞으로 일주일 후에 행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군가가 지시를 내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는 게 안드레스의 설명입니다.
‘월드 센트럴 키친’의 활동은 자연재해가 멈춘 뒤에도 계속되는데요. 재난 현장에서 음식을 요리해 제공하는 걸 넘어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 이후로도 계속 굶주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터전을 만드는 일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위한 음식’(Food For Thougt)이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티와 과테말라에 150개의 학교를 짓고, 지역 주민들이 한데 모여 요리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주방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재난이 휩쓸고 간 지역의 주방 시설과 환경을 개선하는 데 투자해 (주로) 여성들이 보다 더 안전한 환경에서 가족들을 위해 보다 더 위생적인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왔죠.
개발도상국의 소농들을 지원하는 일이야말로 그들과 그들의 나라가 굶주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푸에르토리코에선 농민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영농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이 수확한 농작물의 판로를 열어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쟁기에서 접시까지’(Plow to Plate)라는 이름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껏 설명드린 것과 같은 이유 덕분에 호세 안드레스는 그저 유명하고 돈 잘 버는 스타 셰프가 아니라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돕는 위대한 리더이자 노벨평화상 후보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면 의사와 간호사들을 데려와야 한다. 건물을 새로 지으려면 기술자와 건축가들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먹이려면 전문 요리사들이 필요하다”는 게 그가 남긴 말이었습니다.
(<유리한 판>을 읽으시면 손정의, 빌 게이츠, 벤 호로위츠, 윈스턴 처칠, 앙겔라 메르켈, 레이 달리오, 이나모리 가즈오 등의 사례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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