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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Feb 07. 2020

8년 전에 썼던 입사 자소서를 다시 읽으며

나는 왜 신문사 자소서와 두 번째 책의 첫 문장을 이소룡의 말로 시작했나

(저의 두 번째 책 <내게 유리한 판은 만들라>의 첫 문장은 액션 배우이자 무도인인 이소룡의 말로 시작됩니다.


“만 가지 발차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건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인데요.


이소룡의 말로 중요한 글을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신문사에 지원했을 때도 자기소개서를 이소룡의 말로 시작했었죠. 2012년이었으니 벌써 8년 전의 일이었었네요.


이소룡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소서를 다시 찾아 읽어보니 이소룡부터 시작해서 무협지, 협객, 무하마드 알리, 권투 같은 단어들이 가득하더군요.


자소서를 이렇게 쓴 덕분에 면접 때 "경제신문 기자는 지력(知力)이 굉장히 필요한 직업인데 홍선표 씨는 자기소개서에 순 이소룡, 무협지 이야기만 써놨다. 왜 그랬냐?"는 질문을 듣기도 했었죠.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2년간 휴학했던 대학 시절


다행히 그때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치고 나가는 식으로 대답한 덕분에 회사에 입사에 지금껏 잘 다니고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책 서문에 다시금 이소룡이 등장한 걸 계기로 그때 그 자소서를 다시 찾아서 읽어봤는데요. 재밌더군요. 8년 전의 제가 어떤 생각을 했었고,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요.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학교를 2년간 휴학하고 돌아다니다 통장 잔고가 몇 백 원 밖에 안 되는 위기에 몰린 채 몇 개월 동안 지냈던 경험과 군대 시절에 처음 경제 입문서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경제학에 대해 조금씩 눈을 떴었던 이야기 등등이 그대로 담겨있네요.


아래 있는 자소서를 쓸 때만 해도 제가 8년 뒤에 경제와 경영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요. 


그렇지만 8년 전의 저의 모습을 뒤돌아 보니 그때 저는 비록 뚜렷하게는 그리지는 못했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12년에 쓴 자기소개서


“산다는 것은 그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 이 소 룡 -


어떤 철학자는 축구 경기를 통해 인생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 묻는다면 지금 나의 절반은 무협지에서 왔다고 답하겠다. 중, 고등학교 시절 이부자리에 누워 읽었던 손때로 반들반들한 무협지들. 무협지 속의 영웅호걸과 협객들은 그 뒤에 내가 접한 어떤 어려운 책들보다도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낭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협(俠), ‘겨드랑이 협’자를 ‘사람 인’ 자가 지탱하고 있는 형상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협(俠)이란 단어의 연원에 대해 혼자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사람과 겨드랑이, 겨드랑이와 사람이라...


약한 사람을 항상 옆에 끼고도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강자에게는 강하게 맞서 싸우지만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이들이 협객이니까.


고등학교 시절, 언론인이 되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저널리스트야말로 오늘날 세상에서 유일하게 협객이라 불릴 수 있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속 조르바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


대학에 진학하고 신문방송학과를 택했다. 2학년이 되자 캠코더 하나를 둘러메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다.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녹화가 시작된 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구닥다리 칼빈 소총 하나 들고 진흙탕을 포복하듯 밑바닥부터 하나하나를 스스로 배워나갔다.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휴학을 결심했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경제 독립을 선언했다. 몇 달 동안 하숙비가 밀렸다, 휴대폰도 끊겼다. 통잔 잔고는 몇 백 원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화끈하게 한 번 해보자’란 의지가 더 컸다. 수차례의 도전 끝에 방송국에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나서 받은 방영료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2년간 휴학했던 대학 시절


생활이 안정되자 다른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어 졌다. 선배가 찍는 졸업영화의 조연출을 맡았다. 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삼천포에서부터 서울 종로 한가운데 위치한 낙원상가까지, 뜨거운 여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로드 무비였다.


애초부터 터무니없는 제작비로 시작한 촬영이었지만 현장은 훨씬 더 만만하지 않았다. 허름한 콜라텍에서의 마지막 촬영이 끝나는 순간 하늘에선 비가 내렸고 아홉 명의 스탭 모두 환호성과 함께 살짝 눈물을 지었다.


예술성을 추구하는 독립 영화일지라고 실제 제작 현장은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추진력’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의 대선 구호 -


"야, 어제 신문 어딨냐?”


“여기 있습니다. 홍 병장님. 제가 또 미리 챙겨놨습니다”


“그래, 고맙다”


“저 그런데 신문 보시고 다시 가져다주실 수 있으십니까? 대대장님께서 가끔씩 다시 찾으실 때가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오케이. 알았다.”


기자 초년병 때 썼던 기사


군 복무 시절, 신문 읽기는 생활의 큰 낙이었다. 당시 우리 대대의 대대장님 <OO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다. 대대장실의 당번병보다 선임이었던 나는 당번병에게 부탁해 대대장님이 다 읽은 신문을 받아서 읽을 수 있었다.


그 날의 일과가 끝난 뒤 생활관 침상에 걸터앉아 신문을 읽을 때가 하루 중에서 가장 느긋하고 편안한 순간이었다. 사회에 비해 읽을거리가 부족한 군대였기에 첫 번째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든 기사를 놓치고 않고 샅샅이 읽었다. 사회에 있을 땐 건너뛰고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경제면도 빠뜨리지 않게 되었다.


경제 기사를 읽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도 제작하고, 사회과학 책들도 읽으며 사회 이슈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이 안다고 자부했었지만, 경제 기사를 통해 바라본 한국은 내가 알고 있던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경찰기자로 일할 당시 한 강력팀 사무실에서 찍은 사진


1년 넘게 경제 기사들을 빠뜨리지 않고 읽으며 깨달았다. 모든 사회 문제의 밑바탕에는 경제가 놓여있다는 것을. 경제적인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과 정책들은 반쪽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제대 이후 부족한 경제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경제학 전공자가 보기엔 너무 쉬운 책이겠지만 경제 사상사의 흐름을 다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부터 시작했다. <경제학 콘서트>, <회계학 콘서트> 같은 책들이 그 뒤를 이었다.


책을 통해 기본 지식을 쌓음과 동시에 <한국경제>를 읽으며 현실 경제의 흐름을 익혀나갔다. 최근에는 ‘비사 MB노믹스’를 재밌게 읽고 있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시행된 경제정책들의 성공과 실패, 배경과 내막을 알아가는 재미가 크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김 과장 이대리’는 지금도 여전히 직장인들의 애환을 알아가는 소박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 무하마드 알리 -


“그게 아니라니까, 큰 거 한 방 노리지 말고 잽을 던지라니까”


링 위에 올라 스파링을 벌일 때마다 코치님이 항상 하는 말이다. 가볍게 툭툭 던지기 때문에 저게 무슨 위력이 있나 싶지만 계속해서 맞으면 한순간에 ‘훅’ 가는 것이 잽이라면서.


시작한 지 아직 일 년이 안 되는 복싱이지만 얼마 뒤에 있을 대회를 준비하며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교훈들을 배울 수 있었다. '평소에 행하는 소소한 것들이 일의 성패를 결정짓는다’, ‘맞으면서 밀리면 더 힘들고 아프다. 뒤로 물러서기보단 어떻게든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권투는 정직한 스포츠다. 연습한 만큼 강해지니까.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발로 뛴 만큼 좋은 기사가 나오니까. 권투 선수는 링 위에서 철저히 혼자다. 자신의 모든 것을 관중들에게 드러낸다.


기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바이라인 위에서 철저한 혼자가 된다. 자신의 모든 역량이 발가벗겨져 독자들에게 노출된다. 하루하루 현실의 링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선배님들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유리한 판>을 읽으시면 손정의, 빌 게이츠, 벤 호로위츠, 윈스턴 처칠, 앙겔라 메르켈, 레이 달리오, 이나모리 가즈오 등의 사례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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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를 쓴 이유에 대해 설명드리는 책의 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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