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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Mar 12. 2020

카이사르, 그가 공포와 맞서 싸워 이긴 방법

그기 두려움과 절망감에 휩싸인 부하들을 공포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낸  방법

이번 글에서는 로마제국의 토대를 쌓은 인물이자 사실상 제국의 첫 번째 황제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가 병사들과 함께 전쟁터의 진흙탕을 뒹굴었던 시절에 어떻게 자신의 군대를 집어삼키려 했던 공포와 절망감, 패배주의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카이사르란 인물과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그가 직접 기록으로 남겼던 전쟁의 모습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자신의 책 <갈리아 전쟁기>에 써놓은 내용인데요. 그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카이사르는 며칠 동안 베손티오에 머물면서 식량과 군수품을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지독한 공포가 아군 전체에 퍼져 병사들의 사기와 의욕을 크게 떨어뜨렸다.


우리 병사들의 질문에 갈리아인과 상인들은 게르만인들이 엄청나게 키가 크고 강하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용감하고, 무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고 설명했다. 어떤 자들은 전투에서 게르만인과 마주 섰을 때 그들의 험한 인상과 강렬한 눈빛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다고 떠들어댔다.   


공포는 먼저 군관, 외인군 대장, 그리고 카이사르와 친분을 쌓기 위해 로마에서 그를 따라온, 전쟁 경험이 전혀 없는 자들 사이에 퍼졌다. 어떤 자들은 급히 떠나야 한다고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휴가를 신청했고, 어떤 자들은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울며 겨자 먹기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두려운 표정만은 감출 수가 없었고, 때로는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들은 막사 안에 틀어박혀 자신들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동료들끼리 모여 서로의 운명을 한탄했다. 유서를 쓰고 서명하는 소리가 진지 전체에 가득했다.

  

장교들의 눈물 섞인 불평 때문에 군단병, 백인대장, 기병대장 등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군인들까지도 공포에 물들기 시작했다. 어떤 자들은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적 따위는 무섭지 않으나 그들과 아리오비스투스(로마군의 적인 게르만족의 족장) 사이에 놓은 좁고 험한 길과 울창한 숲이 문제라거나, 식량이 제대로 수송될지가 걱정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카이사르의 면전에서, 총사령관인 카이사르가 출동 명령을 내려도 병사들이 공포 때문에 군기(부대를 상징하는 깃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때문에 공포와 절망에 휩싸인 로마군


이 글은 카이사르와 그의 군대가 8년 동안 갈리아 지방(지금의 프랑스)에서 벌인 갈리아 전쟁의 첫 번째 해인 기원전 58년의 기록인데요.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 지방으로 진격해 들어온 게르만족과의 전투를 앞둔 로마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갈리아 지방으로 넘어온 게르만족은 12만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들 중 무기를 들 수 있는 성인 남성들의 숫자만 해도 수만 명에 달했죠.


당시 유럽 최강의 전투력을 갖춘 로마군이었지만 게르만족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건 몇십 년 만에 처음이었는데요. 카이사르가 이끌던 로마병사들에게 게르만족은 이야기로만 전해들었던 상상속의 존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부대 안을 떠돌면서 병사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는데요.


이들 게르만족은 오늘날의 독일인들의 조상들인데요. 지금의 독일인들처럼 이들 대부분은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이었습니다. 이들에 비한다면 라틴족으로 이뤄진 로마군은 상대적으로 작고 왜소한 편이었죠.


일단 겉으로 보이는 몸집에서부터 이렇게 눈에 띄게 차이가 나다 보니 로마 병사들 사이에서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죠.



또한 당시 게르만인들은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흔히 말하는 야만족이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상인들을 통해 물품을 사고파는 라인강 건너 갈리아민족과는 달리 게르만민족은 대부분 사냥과 약탈을 통해서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로마군이 상대해온 어느 적들보다도 거칠고, 잔인한 상대였죠.


이렇게 자신들보다 덩치도 크고, 수도 많고, 또 흉포하기까지 한 게르만민족과 한판 싸움을 앞두게 되자 로마군 진영은 카이사르가 묘사한 것처럼 순식간에 지독한 공포에 질려버렸습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책을 통해 ‘사람은 무언가를 처음 마주치게 됐을 때 지나치게 무시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두려움을 떠는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인다’고 말하는데요. 이 당시 로마군 지휘관들과 병사들이 보였던 반응은 지나친 두려움에 떠는 거였죠.

 

카이사르의 묘사는 한 집단 안에서 어떤 순서로 공포가 퍼져나가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원래부터 겁이 많은 겁쟁이들과 스스로의 힘으로는 세상을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운 좋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던 나약한 인간들부터 공포에 질식해나갑니다.

  

카이사르의 군대라면 그와 연줄을 쌓으려고 로마에서 온 귀족 집안 자제들이나 역시나 귀족 출신으로 주로 군대 안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군관, 외인군 대장(카이사르와 동맹을 맺은 부족들이 보내온 군대를 지휘하는 장교로 대부분 그 부족의 고위층 자제들이었음)들이 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공포는 어떻게 퍼져나가는가


그리고 이 같은 이른바 ‘지식인층’에 속하는 이들이 겁에 질려 울며불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원래는 별생각 없던 대부분의 사람들한테까지 빠른 속도로 공포가 퍼져나가게 됩니다. 카이사르의 군대라면 기병대장과 백인대장 그리고 그 밑에서 싸우는 군단병들과 같은 로마군의 주력이 이에 해당되는데요.

  

이미 그 이전에 여러 적들과 맞서 싸워 승리했던 경험을 갖고 있던 이들이지만 같은 진영에 있던 고위층 인사들이 모두들 공포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힘들었습니다.

  

세상살이 경험도 없으면서 운 좋게 높은 지위에 올라 말만 많은 이들로부터 시작된 공포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한테까지 퍼져나가는 건데요. 한 번 이렇게 시작된 공포는 마치 종이 위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 종이 전체를 검게 물들이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이처럼 자신의 부하 대부분이 겁에 질려, 게르만족과 맞서 싸우려는 의욕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금 부하들에게 전의를 불어넣었을 수 있었을까요? 만약 카이사르가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카이사르는 존재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죠.


카이사르는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모습을 묘사한 뒤에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놨는지 역시 상세히 적어놨습니다. 자신이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했던 연설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건데요.


이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카이사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남긴 두 권의 책인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는 어떤 목적에서 쓰인 책인지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는 게 필요한데요.

  

지금껏 이야기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크게 아는 게 없으신 분들이더라도 한 번쯤은 그 이름을 들어보셨을 법한 인물입니다.


영어식 발음으로 줄리어스 시저라고도 불리는 이 남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로마제국의 토대를 쌓은 인물로 사실상 제국의 첫 번째 황제라도 부를 수도 있는 인물인데요. (공식적으로는 그의 양아들인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입니다.)

  

그의 이름인 ‘카이사르’는 로마가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 된 이후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로 쓰였는데요. 이 사실만 놓고 봐도 그가 로마제국의 성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카이사르


이 카이사르라는 호칭은 이후 독일과 러시아에서 각각 황제를 칭하는 카이저와 차르라는 호칭으로 이어졌는데요. 서구인들에게 카이사르는 그저 한 명의 정치인이 아니라 누구 하고도 견줄 수 없는 단 한 명의 ‘최고 권력자’ 그 자체를 뜻하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당대 최고의 정치가, 군인이자 또한 당대 최고의 작가이기도 했는데요. 이런 그의 글 솜씨는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그의 책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갈리아 전쟁기>는 그가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와 게르마니아(오늘날의 독일)를 넘나들며 여러 갈리아, 게르만 부족과 8년간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남겼던 기록이고요. <내전기>는 제목 그대로 그가 폼페이우스가 이끌던 원로원파와 맞서 지중해 세계 곳곳에서 내전을 벌이던 당시에 남긴 기록입니다.

  

카이사르가 직접 쓴 이 두 권의 책은 오늘날에도 라틴 고대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명작으로 꼽히는데요. 카이사르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또 서양 역사에서 최고의 웅변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글에 대해


“카이사르의 글은 알몸과 같아서, 인간이 몸에 걸치는 장신구를 벗어던졌을 때 생겨나는 매력으로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갈리아 전쟁기는 전쟁 기술에 관한 최고의 교과서다” 이 말은 나폴레옹이 남긴 말이고요.

  


저 역시 이 두 권의 책을 읽은 뒤 이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만큼 카이사르의 글은 간결하고, 명쾌하며, 군더더기 없이 바로 핵심으로 치고 들어가는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겪었던 일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죠.

 

오랜 전쟁 기간 동안 그 전쟁을 책임졌던 최고 지휘관이 남긴 기록,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런데 카이사르의 책과 <난중일기>에는 아주 큰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난중일기>가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일기인데 비해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는 처음부터 대중들에게 읽힐 걸 염두하고 쓴 대중서적이란 점이 그 차이인데요.



카이사르가 이 책을 쓴 건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업적을 로마 시민들에게 알려 자신의 인기를 높이고,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모으려 했던 게 카이사르가 이 책들을 쓴 목적이죠.

  

카이사르는 매년 겨울철이 돼 더 이상 전투를 벌일 수 없게 되면 그동안 써놓았던 원고들을 로마로 보내 이를 책으로 묶어 출판했는데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는 그 당시에도 로마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로마 최고의 장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미지의 땅 갈리아에서 처음 들어보는 숱한 ‘야만족’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여 승리하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만했습니다.



글쓰기는 카이사르가 갖고 있던 최고의 무기였다


카이사르가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책을 낸 건 허영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로 이뤄진 민회에서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을 비롯한 여러 고위 관료들을 선거로 뽑는 공화정 국가였습니다.


시민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어야만 전쟁이 끝난 뒤 돌아와서 집정관 선거에 나가 승리할 수 있었고, 자신이 로마를 비운 동안에도 자기 사람들을 고위 관료로 앉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인 폼페이우스가 로마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자신은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돼 몇 년 동안은 로마로 돌아갈 수 없던 처지였던 만큼 책은 자신이 로마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이뤄냈는지를 알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목숨이 오가는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죠,

  

(지금 이 글처럼 손정의, 빌 게이츠, 윈스턴 처칠, 앙겔라 메르켈, 이나모리 가즈오, 레이 달리오 등 자신만의 전략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탁월한 리더와 뛰어난 기업인들의 사례를 쉽게 분석해 나의 일상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그리고 카이사르는 전쟁 기간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어려운 상황과 위기의 순간들 역시 책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요. 자신이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처했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림으로써 그 같은 위기를 극복해낸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입으로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일이죠. 최고의 작가라면 자신이 얼마나 큰 위기와 마주쳤었는지 그리고 이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잘 이겨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숭배자로 만드는 법이죠.

  

이 같은 글쓰기 방식은 모든 병사들이 게르만족과의 전투를 앞두고 패닉에 빠진 상황을 서술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요. 앞에서 보신 것처럼 자신의 부하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를


‘유서를 쓰고 서명하는 소리가 진지 전체에 가득했다’는 말과 함께 자세하게 묘사한 카이사르는 이후 자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공포를 몰아내기 위한 카이사르의 연설


부하 병사들이 모두 공포에 휩싸인 모습을 본 카이사르는 자신이 이끌던 모든 군단의 백인대장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다음과 같이 연설을 합니다.


백인대장들은 말 그대로 100명가량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로마군의 하급 장교들이었는데요. 이들은 평소에는 병사들과 같은 막사에서 먹고, 자면서 전쟁터에서도 병사들을 실제로 지휘하면 인물들이었기에 백인대장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부대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카이사르가 이들 백인대장들 앞에서 어떤 말로 연설을 했는지를 카이사르가 남긴 문장을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리오비스투스(게르만족을 이끄는 부족장)는 카이사르가 집정관일 때 로마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대단히 노력했다. 그러던 그가 무슨 이유로 이토록 성급하게 친구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겠는가?


카이사르는 아리오비스투스가 그의 요구를 알고 그의 공정함을 이해한다면, 카이사르나 로마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행여 그가 걱정과 광기에 사로잡혀 전쟁을 일으킨다 한들 그대들이 왜 두려워한단 말인가? 왜 그대들은 자신들의 용기와 카이사르의 능력을 의심하고 절망하는가?     


(백인대장들이 불필요한 두려움에 휩싸여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꾸짖는 걸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기선을 제압함으로써 앞으로 자신이 말할 연설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죠 )      


우리는 선대에 이미 적들의 침략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을 격퇴하지 않았는가. 그때 로마의 병사들은 지휘관들 못지않게 큰 명예를 누릴 만큼 용감히 싸웠다.      


(당시로부터 한 세대 전쯤에 이미 로마군이 게르만족과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게르만족과 전투를 벌이더라도 로마군이 이긴다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보다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우리는 커다란 위협을 경험했다. 그러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우리에게서 배운 경험과 훈련 덕분이었다.     


이 모든 예에서 그대들은 흔들리지 않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았을 것이다. 로마인은 노예들이 무기를 갖지 않았을 때에도 오랫동안 그들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후에 노예들이 무기를 들고 승리를 구가할 때, 로마인은 그들을 물리쳤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노예 반란, 스파르타쿠스가 이끈 검투사들의 대형 반란도 진압했을 정도로 로마군은 강하다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 검투사들도 제압한 로마군인데 그깟 게르만족이 뭐가 그리 무섭냐는 뜻이죠. )     


게르만인으로 말하자면 헬베티족과 자주 전투를 벌였고, 두 부족의 국경에서는 물론 게르만의 영토에서도 헬베티족에게 종종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 헬베티족을 우리 로마군이 무찌르지 않았는가.     


(게르만족은 이미 로마군이 제압한 헬베티족과의 싸움에서도 패배했던 ‘별 볼 일 없는’ 집단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자들 중에는 갈리아인이 게르만인에게 패하여 도주한 것 때문에 위험을 느끼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패했는지를 보라. 갈리아인이 오랜 전쟁으로 완전히 지쳐 버린 때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리오비스투스는 수개월 동안이나 소택지로 둘러싸인 진지에 숨어 지내면서 갈리아인에서 싸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싸우기를 단념한 갈리아인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그제에 기습을 가했다. 따라서 그가 승리를 거둔 것은 군대의 용맹함 때문이 아니라 교활한 계략 덕분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갈리아인에겐 그런 전술이 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똑같은 전술로 우리 로마군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그 자신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게르만족이 갈리아인들과 싸워 이긴 건 때문에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저 교활한 계략이 운 좋게 먹혔기 때문이며, 그 같은 계략은 최고의 군대인 로마군에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식량 배급이나 험로를 탓하는 자들이 있는데, 한마디로 주제넘은 짓이다. 결국 그것은 지휘관의 직무 수행을 의심하거나 그것을 카이사르에게 촉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들은 카이사르의 몫이다. 식량은 세콰니족, 레우기족, 링고네스족이 보급하고 있으며, 들판의 밀도 이미 여물었다. 행군 명령에 대해서라면 조만간 그대들 스스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식량이 부족하다거나 행군하려는 곳의 지형이 험하다는 걱정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식량은 충분하고 행군로는 카이사르 자신이 가장 유리한 곳을 선택해 나아갈 것이니 병사들은 ‘주제넘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병사들이 군기를 앞세워 행진하라는 명령을 거부할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는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군대가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경우는 지휘관이 행운으로부터 버림받아 전쟁에서 패했을 때나, 그의 범죄나 탐욕스러운 행위가 밝혀졌을 때이다.      


카이사르의 결백함은 그의 전 생애가 입증하는 바이며, 그의 전운 또한 헬베티족과의 전투에서 명백히 입증되었다.     


(군대를 이끈 이후 패배한 적도 없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병사들을 희생시킨 적도 없는 자신의 명령을 병사들이 거부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으며 얼마 전 카이사르가 이끈 승리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훗날로 미룰 수도 있는 계획을 즉시 시행하고자 한다. 바로 오늘 밤 제4야경시(새벽 3~6시)에 진지를 철수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마음속에 공포가 강한지, 수치심과 의무감이 강한지 확인할 것이다.      


(연설을 통해 백인대장과 병사들의 걱정을 잠재운 뒤 곧바로 출진을 명합니다. 여기서 더 시간을 허비했다가는 다시금 병사들의 마음에 공포가 스며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정신없이 몰아붙여서 공포를 잊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군다운 의무감을 갖고 싸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도 따르지 않는다 해도 카이사르는 10군단과 함께 출발할 것이다. 카이사르는 10군단의 충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앞으로 카이사르의 호위대가 될 것이다.”      


(여러 군단들 중 10군만을 콕 짚어 카이사르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부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최고 지휘관에게 특별한 신뢰를 받는 부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10군단 병사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앞장서 싸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전략가는 이렇게 설득한다


카이사르의 연설을 보면 그가 탄탄한 근거와 힘 있는 사례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는데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최고의 전략가가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청중들의 나약함을 질책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했고요. 과거 사례와 최근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패배의식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이후 적들은 생각보지 강하지 않다는 걸 논리적으로 증명했고,


이런저런 걱정거리들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자마자 딴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곧바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끌어봤자 자신이 억눌러놓은 공포가 다시금 새어 나올 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연설을 마치자마자 즉시 행군에 나선 카이사르의 로마군은 어떤 결과를 거뒀을까요? 중간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모두 다 건너뛰고 결과만 말씀드리면 카이사르와 그의 부하들은 게르만족의 군대를 모조리 격파하며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라인강을 건너 자신들이 왔던 땅으로 돌아간 게르만족은 몇몇에 불과했죠. 8년에 걸쳐 벌어진 갈리아 전쟁의 첫 번째 해를 눈부신 승리를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카이사르가 자신의 책 <갈리아 전쟁기>에서 서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가 어떻게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병사들을 절망을 구렁텅이로부터 건져내 적과 맞서 싸우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독자 분들도 짐작하실 수 있듯이 제가 오늘 카이사르의 사례를 제법 길게 소개한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3월 12일 기준, 한국 사회는 사회 전체가 큰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있는데요. 물론 처음 등장한 전염병이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전염병을 예방하고 병이 더 크게 확산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카이사르가 그랬듯이 과거 사례로 눈을 돌려보면 이와 비슷한 위기는 과거에도 적지 않게 있었고, 우리 모두는 그때도 이 같은 큰 위기들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숱한 위기와 문제들을 현명하게 잘 해결해왔던 과거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에 대한 해법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 타이슨을 비롯해 호세 토레스, 플로이드 패터슨 등 당대 최고의 세계 챔피언들을 키워낸 전설적인 복싱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가 남겼던 말을 들려드리며 이번 글은 여기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모두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영웅과 겁쟁이는 둘 다 같은 감정을 느낀다. 사람들은 당신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고 당신을 판단한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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