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들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하는 트럼프 그의 속셈은 무엇일까?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트럼프의 무역 전쟁, 그 뒤에는 미국의 200년 보호무역 역사가 있다>라는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3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에서 들여오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본격화된 미국발 무역전쟁의 원인과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었던 역사를 다룬 <경제는 실제로 어떻게 성장하는가, 현실의 경제학>이란 책을 바탕으로 무역전쟁 뒤에 숨어있는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길고 긴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대대적인 무역전쟁을 시작할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가 급락한 최근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자유무역체제를 지키는 수호자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제 자유무역체제의 뿌리가 되는 WTO(세계무역기구)의 설립을 주도한 것도 역시 미국입니다. 그런데 그런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 매우 빠르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집권하자마자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무역정책이던 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했고요. 캐나다, 멕시코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재협상도 추진했습니다. 지난해 11월엔 WTO에서도 탈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비쳤습니다. 그 이전의 미국 정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월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에 30~50%의 높은 관세를 물리는 것으로 무역전쟁을 시작합니다. 2018년 3월 8일에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는 10%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합니다. 지금 이 방송을 녹음하고 있는 3월 24일 기준 한국은 4월 말까지 한 달가량 한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유예받은 상황입니다. 미국 정부가 현재 재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보고 관세를 부과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선 철강 관세를 피하기 위해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원하는 바를 상당 부분 들어주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해선 전면적인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2018년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100가지 품목에 대해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관세 규모는 최대 500억 달러, 현재 환율로 약 5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대해 중국 역시 미국에서 들여오는 콩, 수수, 돼지고기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지금껏 말씀드린 대로 트럼프 정부는 국제 무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점점 더 많은 보호무역 조치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 정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은 자유무역의 신봉자이면서 무역장벽을 통해 보호무역을 고수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온갖 압력을 동원해 시장을 열도록 하는 나라니까요.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상반기 top10에 선정된 채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지금부터 살펴볼 미국 경제 성장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외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거침없이 매기는 트럼프 정부야말로 건국 이후부터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 정부가 약 200년간 보여온 가장 미국 정부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는 실제로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현실의 경제학은 미국이 어떻게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렉산더 해밀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역대 미국 정치인이 내렸던 결정들과 연결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S. 코언과 J. 브래드퍼드는 우리가 알고 있던 자유무역체제의 수호자 미국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봤을 땐 매우 미국답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보호무역 정책이 매우 뿌리 깊은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 보호무역주의와 제조업 육성, 공산품 수출 정책의 아버지로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을 들 수 있습니다. 미국 10달러 지폐에 그려진 초상화가 바로 알렉산더 해밀턴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인 그는 재무장관이 된 뒤 정적들의 반대를 무릅쓰며 천연자원 수출에만 의존하던 미국을 제조업 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과감한 정책을 추진합니다.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예스24)
1700년대 후반만 해도 미국은 남부에 있던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수확한 농산물과 각종 천연자원을 유럽 선진국에 수출하는데 의존하고 있던 전형적인 농업 국가였습니다. 그는 이 같은 경제 구조를 바꿔 미국을 북부 제조업 공장 지대에서 생산한 공산품을 수출하는 '세계의 공장'으로 재편하기 위한 정책들을 도입합니다.
해밀턴이 활동하던 건국 초기 미국의 기술력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과는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미국이 갖고 있던 유일한 강점은 풍부한 천연자원뿐이었습니다. 해밀턴을 중심으로 한 미국 집정자들은 우선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 공산품으로부터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로 결정합니다. 수입품에 30% 이상의 높은 관세를 매겨 해외 업체들이 쉽사리 미국 시장을 넘볼 수 없게 만드는 전략이었습니다. 수입품에 부과한 높은 관세는 다시 미국의 제조업을 육성하는 데 투입됐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이 도입한 고율 관세 정책은 2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200년 가까이나 지속되니 미국을 키운 건 자유무역주의가 아니라 보호무역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170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무렵까지 미국 경제를 성장시킨 수단은 보호무역주의만이 아닙니다. 역대 미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계속해서 개입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국은행과 같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독점적인 화폐 발행권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알렉산더 해밀턴이 반대파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며 밀어붙인 정책이었습니다.
변변한 기술력도 없던 가난한 농업국가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할 때면 잘못된 신화가 따라옵니다. 정부가 경제 성장에 개입하지 않고 모든 걸 민간의 자율과 기업가 정신에 맡겨둔 덕분에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는 건데요.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에 투자하는 기업에겐 각종 혜택을 준 덕분에 미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1800년대 내내 미국 정부는 드넓은 국토를 연결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철도 산업에 국가 차원의 막대한 투자를 합니다. 미국 정부가 철도 개설을 위해 민간 철도회사들에게 공짜로 넘겨준 땅의 면적만 영국의 면적과 맞먹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무역체제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은 언제 등장한 걸까요? 전문가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가 돼서요 미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자유무역체제를 만드는 데 뛰어들었다고 분석합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과의 냉전이 불붙은 시기죠. 자신을 따르는 자유세계 동맹국들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선 미국도 이전처럼 자국 제조업의 이익만을 내세울 순 없었습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을 동맹국들에게 개방해 그들의 경제 성장과 번영을 지원할 필요가 생긴 거죠. 여기에는 200년 가까이 제조업 육성에 주력한 결과 미국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국 시장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보다 해외 시장의 문을 열어젖히는 게 미국 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계산도 물론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를 그만뒀다고 해서 미국 정부가 자국 제조업을 육성하는 데 뒷짐만 지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보호무역주의를 폐기한 이후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각종 군사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자국의 기초과학과 공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민간 기업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제조업을 육성합니다.
인터넷의 원조인 아르파넷(ARPA Net)이 가장 대표적인데요. 인터넷 역시 그 개발 역사를 파고 들어가 보면 다르파라고 불리는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이 군사 목적으로 개발한 기술입니다. 인터넷뿐 아니라 슈퍼컴퓨터, 반도체, 트랜지스터, 보잉 707, 전자레인지 등 수많은 기술과 제품들이 애초 정부 주도의 군사 프로젝트로 개발되었다가 민간 영역에 적용돼 미국 기업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줬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트럼프 정부가 보여주는 보호무역주의 강화 정책이 미국 역사에선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트럼프 정부가 왜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거슬러 보호무역주의로 돌아가려는 걸까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오늘날 미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요. 현실의 경제학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제조업 육성 정책을 포기하고 새로운 산업을 중심으로 자국 경제를 재편하기 시작합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 맡기는 대신 미국 경제를 금융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산업 구조를 금융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꾸면서 국내총생산, GDP의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작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GDP 성장의 과실이 금융업에 종사할 수 있는 고학력 엘리트 계층에게만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금융업이 주도한 GDP 성장의 열매는 소수가 독점하는 데 비해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는데 따른 고통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저학력 제조업 노동자들이 짊어지게 됐다는 것이죠.
제조업 몰락으로 인해 미국 저학력 노동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바로 자살률에 대한 연구인데요. 2016년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코노미스트 저스틴 피어스와 피터 쇼트 예일대 교수가 작성한 '무역 자유화와 죽음, 미국 지역의 증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겠습니다. 여기엔 중국 제조업과의 경쟁으로 타격을 입은 제조업체들이 주로 위치한 지역에서 백인 남성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 제조업 기업에서 일하며 중산층의 삶을 누리던 중년 백인 남성들이 제조업의 쇠락과 함께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흔히 러스트 벨트(Lust Belt)로 불리는 미국 내 제조업 쇠퇴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We Make America Great Again)이란 구호를 외치며 제조업을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그의 선언에 좌절에 빠져있던 제조업 노동자들이 호응한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지지자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겠다는 게 트럼프가 택한 전략입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과의 무역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관세 인상 등 적극적인 보호무역 조치들을 내세우는 데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앞선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때로는 매우 성급하게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글로벌 무역전쟁을 그저 그의 독특한 개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미국과의 교역 비중이 높은 나라에 산다면 미국 정부가 벌이는 무역전쟁에 깔린 배경을 국민들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꼭 필요한 거 같습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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