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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Jul 27. 2020

월요일 새벽 1시, 유일한 박사에 대한 글을 마치고서

숙주나물 장사로 시작해 한국 최초 글로벌 기업을 만들었던 유일한

미국에서 숙주나물 장사로 시작한 유일한 박사님이 한국 최초의 글로벌 기업이었던 유한양행을 만든 4가지 비결에 대해서 정리한 글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월요일 새벽 1시 가까이 됐네요. 이제 얼른 씻고 자야죠.    

 

평전 <유일한의 생애와 사상>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그 내용들을 곰곰이 살펴보니 유일한 박사님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요.      


이번 글은 A4로 8페이지를 썼으니 여태껏 제가 한 창업자에 대해서 다룬 글 중에서 가장 긴 분량이네요. 보통 이 정도 쓰고 나면 그 사람의 삶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웬만큼 다 다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에는 다르네요.     

아홉 살의 나이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아버지 유기연 선생과 함께


글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이대로 끝내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글에 들어갈 사진들을 찾기 위해 유한양행이 운영하는 <유일한 온라인 기념관>도 들어가 살펴봤는데 거기서 책에는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도 알게 됐고요.     


1919년에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독립운동 행사인 ‘한인자유대회’에 결의문 작성자와 낭독자로 참여했던 사실까지는 알았는데      


그 이전인 1909년에 겨우 14살의 나이에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운영되던 ‘한인소년병학교’에 입교해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 교육까지 받았던 줄은 온라인 기념관 웹페이지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유일한 박사


그동안 유일한 박사님이 존경받는 훌륭한 기업인이고 또 그가 만든 유한양행 역시 10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사회에 큰 기여를 해온 기업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글을 쓰면서 유일한 박사님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일한 박사님에게는 항상 ‘박사’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데요. 회장과 대표라는 기업에서의 직함만으로는 뛰어난 기업인이면서 동시에 올곧은 독립운동가 그리고 큰 교육자였던 그의 삶을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겠죠.     


유일한 박사님의 삶과 그의 4가지 원칙에 대해서 다룬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데요. 조만간 글이 업데이트되면 공유할 테니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이 살아온 삶과 그의 정신에 대해서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어서요.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운영됐던 '한인소년병학교'


===     


1904년의 어느 날, 인천 제물포항. 아홉 살짜리 한 꼬마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는 큰 배에 홀로 올라탑니다. 다른 가족들과는 이미 며칠 전 평양에서 작별 인사를 했고, 인천까지 함께 내려온 아버지와도 여기서 헤어져야 했죠.      


멀고 먼 뱃길 끝에 한 달이 지나서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요.      


다시 기차로 갈아타고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지나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주의 작은 마을 카니에 도착해서야 아이의 여정은 끝이 납니다.      


이 아이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까지는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얼마 전 막 결혼한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였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귀국 소식을 알렸던 1926년 동아일보 기사


1926년 인천항에 내려 기차로 갈아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이들 부부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있었는데요. 신문사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다음 날 <동아일보>에는 ‘적은 자본으로 식료품 장사를 시작해 수백만 원의 큰 회사를 이룬 유일한 씨, 중국인 부인과 귀국’이라는 기사가 부부의 사진과 함께 큼지막하게 실렸죠.      


이 남자는 바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였습니다. 기사 제목대로 그는 이미 그때 미국에서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죠.      


그의 아내 호미리 여사는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받은 여성으로 중국에서도 큰 부호로 꼽히는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중국 남경(난징)에서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의 가문이었으니까요.      



이들 부부가 앞으로 큰 부와 명예가 보장돼 있는 ‘기회의 땅’ 미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시달리던 메마른 땅 한국으로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특히 유일한 박사는 대학생이던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독립운동 행사인 ‘한인자유대회’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국에 돌아온다면 조선총독부와 일본 경찰의 감시와 탄압에 시달릴 거란 건 불 보듯 뻔했는데 말이죠.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유일한 박사가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4가지 비결을 다룬 완성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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