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 도박사의 가면을 쓴 누구보다 꼼꼼한 회계사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트럼프, 그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가지.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이란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은 언제나 이슈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미국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그는 대통령 자리에 도전했을 때부터 과격한 언행으로 끊임없는 논란을 만들어내면서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수년 동안 공들여가며 만들어낸 파리 기후변화 협약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단숨에 탈퇴하고 중국과의 대대적인 무역전쟁을 시작하는 등 기존 국제 사회의 질서를 허물어뜨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론이 내보내는 기사들은 주로 도널드 트럼프를 둘러싼 논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라고 하면 괴팍한 개성의 소유자나 트러블 메이커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런 트러블 메이커 이미지 뒤에 숨겨진 도널드 트럼프의 신념과 성공 비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른네 살의 나이에 뉴욕 한복판에 초호화 호텔을 지으면서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로 떠오른 그가 그로부터 약 40년 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워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방송은 주로 그가 1987년에 써낸 ‘거래의 기술’, 원제 ‘The Art of the Deal’을 바탕으로 준비했습니다. 이 책은 트럼프가 마흔한 살의 나이에 쓴 책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트럼프는 ‘미국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사나이’로 불렸는데요. 그 말처럼 그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초고층 빌딩 개발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카지노 운영으로 사업 영역을 한창 확장하던 시기에 내놓은 책입니다.
출간된 이후 32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책입니다.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 1988년도엔 한국에서도 번역돼 출판됐는데요. 당시 출판사에선 ‘42세의 사업 천재, 미국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받는 도널드 트럼프’란 문구로 책을 홍보했습니다. 거의 예언가 수준의 홍보 문구였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뒤 한국에서도 거래에 기술을 다룬 기사가 쏟아졌는데요. 제가 봤을 땐 많은 기사들이 거래의 기술 앞부분에 나와있는 열한 가지 거래 원칙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열한 가지 거래 원칙을 다룬 내용은 전체 450페이지 책 중에서 20페이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책의 대부분은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한 설명과 그가 실제로 그랜드 하얏트 호텔과 트럼프 타워, 트럼프 플라자, 트럼파 파크 등 대형 부동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과정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글입니다. 이 글을 포함한 경제, 경영, 리더십 분야의 다양한 콘텐츠를 오디오로 즐기고 싶다면 본문 하단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top 10 채널에 선정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의 책 거래의 기술을 읽고 트럼프가 어떤 인물이고 그는 그동안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어왔는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제가 거래의 기술을 읽으며 그에 대해 느낀 첫 번째 인상은 그가 매우 꼼꼼하게 사소한 일까지 직접 챙기는 계획적이고 계산적인 인물이란 것이었습니다. 돌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많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가인데요. 하지만 그의 책 곳곳에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직접 챙기는 그의 모습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초고층 빌딩 개발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카지노까지 운영하면서 돈방석에 앉았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공사 청부업체가 부당하게 공사비용을 높여서 청구했다고 생각하면 적은 액수라도 직접 전화를 걸어서 따졌습니다. 그 액수가 5000달러나 1만 달러짜리라 해도, 지금 환율로 500만 원이나 1000만 원에 불과한 액수라고 해도 말이죠. 그 무렵 트럼프가 힐튼 카지노를 인수할 때 투자한 돈이 3억 2000만 달러였는데 말입니다.
‘당신과 같은 거물이 그런 푼돈 때문에 골치를 썩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만약 내가 1만 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25센트짜리 전화를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때는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과감한 승부사라는 이미지와 달리 트럼프가 이처럼 사소한 비용도 꼼꼼히 따지고 계산하는 건 그의 아버지에게 배운 태도입니다. 스웨덴계 이민자의 자손으로 스스로 자수성가한 트럼프의 아버지는 저소득층이 살만한 저렴한 주택을 지어서 판매하거나 월세를 받고 임차해주는 일로 돈을 벌었습니다. 비용에 민감한 저소득층이 주 고객이기 최대한 건축비를 줄여서 싼값에 지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이익을 남길 수 있었던 사업이었습니다.
고객들의 선택을 받을만한 품질의 주택을 지으면서도 비용을 줄여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트럼프의 아버지는 항상 건축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럼프는 그의 아버지는 걸레나 마루에 칠할 왁스의 공급업자와 상담할 때도 큰 물품의 청부업자, 거래처와 거래할 때처럼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합니다. 트럼프 역시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버지와 함께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그의 아버지가 하청업체나 부동산업자들과 거래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집 한 채를 보러 가면 수도관부터 시작해서 보일러, 전기배선, 에어컨디셔너 상태, 기둥 상태 등 집의 모든 걸 몇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다 따져봤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그가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아무리 작은 비용이라도 나가는 돈은 꼼꼼히 따지고 불필요한 지출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디테일과 비용에 대한 이런 접근은 그가 나이가 든 뒤에도 바뀐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몇 년 전 부동산부에 근무했기 때문에 건설사나 부동산 개발업체 임원 분들과도 만날 일이 많았습니다. 그때 대형 건설회사 임원 출신 부동산 개발업체 A 대표가 트럼프와 관련된 일화를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1999년 A 대표가 일했던 건설사에서 트럼프 이름을 딴 주상복합빌딩 ‘트럼프월드’를 한국에 짓겠다고 트럼프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트럼프는 우선 먼저 설계를 맡은 건축가만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업 전반을 담당할 건설회사 임원이 아니라 건설사 하청업체 소속 건축가부터 만나보겠다는 거였는데요.
트럼프는 설계를 맡을 건축가를 먼저 만나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건물 색깔과 모양에 대해서 구체적인 의견을 내놨다고 합니다. 건축 디자인에 따라 그 건물을 구매할 수요자들의 마음이 바뀌고 건축 도면의 선 하나에 따라서 건축비 수십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걸 경험으로 누구보다 잘 아는 트럼프였기에 디테일에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말이었습니다.
트럼프에 대해서 알게 된 두 번째 모습은 그가 불확실한 리스크를 감내하는 걸 무엇보다 싫어한다는 거였습니다. 이점은 그가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카지노 사업에 진출할 때의 일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1975년 미국 애틀랜틱시티의 전망 좋은 해변가 땅값은 하늘을 모르고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그 이듬해인 1976년 주민투표에서 도박을 합법화하는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카지노가 들어설 만한 좋은 입지의 땅값이 크게 오른 것이었습니다.
트럼프에 말에 따르면 대기업 직원부터 야간열차를 타고 온 사기꾼까지 온갖 투기꾼들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들던 시기였습니다. 일 년 전이면 5000달러도 못 받았을 가정집이 순식간에 3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로 가격이 뛰었고 나중에는 100만 달러까지 가격이 올랐습니다. 도박이 합법화될 거라는 믿음이 이 같은 투기 열풍을 이끌었는데요. 하지만 트럼프는 이 같은 투기 대열에는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거금을 투자하는 건 자기 철학과는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도박 합법화 주민투표가 치러지기 전 50만 달러를 주고 땅을 사두면 투표가 통과됐을 때 순식간에 투자금의 4배인 200만 달러를 벌 수도 있지만 만약 투표가 통과되지 않는다면 투자한 돈이 그 순간 바로 물거품처럼 날아가버릴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도박 합법화가 확정되면 그 이후에 땅값을 더 쓰더라도 입지가 좋은 곳에 땅을 구입해 카지노 사업을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카지노 사업 자체가 수익성이 엄청난 사업이므로 일단 미래의 불확실성이 사라진 다음에 좋은 땅만 잘 구입해 사업을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1977년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된 이후에도 3년여를 더 기다린 1980년에서야 카지노 사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카지노 사업에 뛰어든 여러 업체가 공사 지연, 공사비 부족,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거부 등의 난관 때문에 어려움에 겪는 것을 충분히 관찰한 뒤였습니다.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뒤에도 트럼프는 신중하게 사업을 진행해갑니다. 보통 그 당시 애틀랜틱시티에 카지노 호텔을 세운 업체들은 일단 땅을 사면 호텔 공사와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절차를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호텔 공사가 끝나는 대로 바로 카지노 영업을 시작해 더 빨리 돈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같은 방식을 거부하는데요. 일단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카지노 영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실한 보장도 없는데 덮어놓고 공사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거액을 투자해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뒤로 물러날 곳이 없게 되는 거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카지노위원회가 인허가 조건으로 이런저런 요구를 해오더라도 거절할 수 없는 처지가 돼버리죠.
일단 코가 꿰이면 상대방의 요구에 무조건 응할 수밖에 없는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트럼프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트럼프는 카지노 영업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일단 확실하게 허가를 받아둔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만약 인허가 작업이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하면 그냥 땅을 팔고 카지노 사업을 접겠다는 그의 협상 전략 덕분에 약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카지노 운영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책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특성 중 세 번째는 비효율적인 관료제도에 대한 불신과 조롱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나오는 게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안에 위치한 아이스링크 스케이트장 울먼링크 리모델링 공사였습니다. 트럼프는 이 사례를 통해 관료제도의 비효율성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털어놨습니다. 1980년 보수공사를 위해 2년 반 가량 문을 닫은 울먼링크는 애초 공사비보다 수백만 달러를 더 쓰고도 6년 동안이나 공사를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이 공사는 당시 뉴욕시가 직접 진행하던 공사였는데요. 애초 처음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스케이트장 하나를 리모델링하는데 2년 반이면 너무 길다고 생각했던 트럼프는 당시 뉴욕시장이던 에드 콕에게 공개서한을 보냅니다. 자신에게 공사를 맡겨주면 5개월 안에 공사를 마치고 다시 울먼링크에서 뉴욕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뉴욕시는 이 같은 트럼프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끊임없이 연기되는 공사에 진저리가 난 언론이 트럼프를 지지해준 덕분에 결국 울먼링크 공사를 뉴욕시로부터 가져오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5개월 만에, 애초 책정된 예산인 300만 달러보다 75만 달러 가량을 덜 쓴 채 공사를 마치게 됩니다. 트럼프는 울먼링크 리모데링 공사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관료주의의 비효율성과 무책임성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합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공무원 조직의 비효율성 때문에 추가 공사 비용만 크게 늘어난 채 공사가 몇 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뉴욕시가 그동안의 공사가 왜 잘못됐는지 알아보기 위한 보고서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5개월이었는데 자신은 그 5개월 만에 공사를 마치고 스케이트장을 시민들에게 다시 개방했다는 내용입니다. 관료주의의 비효율성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불신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그동안 관료조직에서 논의해온 해법을 선택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각종 현안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오늘은 <트럼프 그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가지.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이란 주제로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누군가의 자서전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 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인데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미화시키려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책을 낼 당시의 트럼프처럼 정치에 큰 야망을 갖고 있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라면 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에는 그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 대중들이 자신에 대해 갖게 되기를 바라는 이미지가 담겨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주기를 원하는지를 아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하는 지름길 중 하나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 경제의 향방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입니다. 오늘 방송이 트러블 메이커란 이미지에 가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진짜 생각, 그리고 트럼프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전략과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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