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둔 기금이 떨어져도 내가 낸 연금 받을 수 있는 걸까?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2050년대 중·후반이면 고갈된다는 국민연금, 기금이 떨어지면 국민연금을 못 받는 걸까? 월급에서 떼 가는 국민연금을 지금보다 50%가량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연금은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돈입니다. 그 액수도 평균적으로 월급의 9%나 돼 부담이 작지 않은 액수입니다.
오늘 방송에선 최근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가 더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과 쌓아놓은 국민연금기금이 다 떨어지게 되면 과연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연금은 기금 적립금이 635조원으로 전 세계 연기금 중 3위에 달하고 있지만 ‘모두의 돈’이기 때문에 ‘누구의 돈’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 일반 국민들은 국민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무관심한 편인데요. 오늘은 국민 대부분의 노후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한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8년 7월 23일 한국경제신문은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당초 2060년에서 2050년대 중·후반으로 3~4년 더 빨라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국민연금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2050년대 중·후반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국민연금이 어떤 제도이고 왜 도입됐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국민연금 제도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가 편합니다. 다른 보험과 마찬가지로 보험 가입자들에게 돈을 거뒀다가 돈이 필요한 가입자들에게 내주는 것이죠. 다만 가입 대상자가 사실상 전 국민인 데다 강제적으로 월급에서 돈을 떼 간다는 게 다를 뿐입니다.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 도입됐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들과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들로부터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받아 적립한 뒤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은퇴한 고령자 등에게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소득이 없거나 큰 폭으로 줄어든 고령자들이 노후에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국민연금이 도입된 목적입니다.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은 도입된 지 30년 만에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민연금기금에 쌓여있는 돈은 2018년 8월 기준 635조원입니다. 2018년 정부 예산인 429조원보다도 훨씬 큰 규모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 매달 월급의 10%가량을 꼬박꼬박 국민연금에 내고 있는 건 국민연금 가입이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70년 후의 국민연금 운용 상황을 미리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있습니다. 5년마다 그 해로부터 70년 뒤의 국민연금의 재정상황을 예측해보면서 국민연금 기금이 언제까지 늘어나고 언제부터 줄어드는지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어떻게 될지, 국민연금이 부족해지지 않게 하려면 보험료는 얼마를 거둬야 하는지를 미리 예상해보는 자리입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위원회인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최근 2018년인 올해로부터 80년 뒤인 2088년까지의 국민연금 운용상황을 점검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가 5년 전 3차 위원회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3~4년 더 빨라졌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지난번 위원회에선 국민연금기금이 2060년에 다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계산해보니 그 시기가 2050년대 중·후반으로 앞당겨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국민연금에 대해 다룬 이번 화를 비롯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상반기 top10에 선정된 채널입니다)
그럼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시기를 2056년~2057년 사이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5년 전에 예측했던 것보다 3~4년 고갈 시기가 빨라진 겁니다. 2040년대 초반에 2500조원대를 기록할 국민연금 기금이 그 이후부터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많아지면서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분석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이 다 떨어지는 시기가 앞당겨진 이유는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출산율은 더 떨어진 반면 기대수명은 더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국민연금을 내야 할 사람들은 줄어든 반면에 국민연금을 받을 사람들은 더 늘어난 거니까 기금이 떨어지는 시기도 앞당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입니다. 경제가 성장해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월급에서 일정 비율을 떼 가는 국민연금도 더 많이 낼 수 있으니까요.
매달마다 월급의 약 10%가량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국민연금이 다 떨어질 거라고 하면 걱정하시는 분이 많을 텐데요. 그렇다면 이번 예상대로 2050년대 중후반에 국민연금이 고갈되게 되면 연금을 못 받는 일이 생기는 걸까요?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예스24)
그런데 여기서 먼저 한 가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엄밀히 말하면 국민연금은 내가 낸 돈을 국민연금공단이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주는 시스템만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 가입자들이 내고 있는 돈의 상당 부분은 오늘날 국민연금을 지급받고 있는 수급자들에게 주는 돈으로 쓰입니다. 현재 돈을 내고 있는 가입자들이 나이가 들어서 받게 되는 국민연금에는 그때 당시에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있는 가입자들이 내는 돈도 상당 금액 들어가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입자들한테 미리 걷은 돈으로 현재의 수급자들한테 연금을 지불하고 지금 돈을 내고 있는 가입자들의 연금은 미래의 가입자들이 내는 돈으로 마련하는 구조입니다.
정부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연금 지급이 멈추지는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처럼 쌓아둔 보험료에서 연금을 꺼내서 지급하는 적립방식 대신 연금 지급에 필요한 돈을 그때그때마다 가입자들에게 거둬서 마련하는 부과방식으로 연금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알기 쉽게 설명드리면 쌓아둔 없어지더라도 가입자들에게 필요한 만큼 바로바로 돈을 거둬서 수급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 그렇다면 2056년이나 2057년이 돼서 국민연금이 다 떨어지더라도 연금은 받을 수 있는 거니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니까 걱정할 게 없는 걸까요? 정말로 문제가 다 해결된 걸까요? 글쎄요. 단순히 한 개인만 놓고 보면 그렇게 생각해버릴 수도 있지만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게 넘겨버릴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죠. 이건 정말 변하지 않는 진리인데요.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쌓아둔 돈이 없어져서 그때그때마다 돈을 거둬서 나눠줘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가뜩이나 인구는 줄어들어서 돈 낼 사람은 없는데 평균수명은 늘어나서 돈을 받아가는 사람은 늘어졌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당시에 돈을 내야 하는 사람들, 지금은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지금 세대의 아들, 딸이나 손자, 손녀의 지갑을 털어서 현 세대에게 돈을 주는 셈입니다.
재정계산위원회의 분석을 보면 기금이 다 떨어져서 부과방식으로 연금을 마련해야 할 경우 가입자들한테 월 소득의 20%를 국민연금으로 거둬야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30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 사람이라면 60만원을, 50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 사람이라면 100만원을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셈이죠. 월급의 20%를 국민연금으로만 내야 한다고 하면 과연 이를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앞선 세대에게 연금을 주기 위해서란 이유때문이라면요.
부과방식으로 국민연금을 마련한다는 건 결국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에게 매우 큰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일 뿐 아니라 세대 간 정의에도 어긋나게 됩니다. 심각한 사회적 불만의 요인이 될 가능성도 매우 높고요.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을 늦출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현재 돈을 내고 있는 가입자들한테서 돈을 더 많이 받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보험료를 올리는 거죠.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서는 이 같은 방안에 대해서도 계산을 내놨습니다. 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30년가량 뒤로 늦추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월급의 13%대로 높여야 합니다. 1998년 이후 20년간 9%에 머물고 있는 보험료율을 4% 포인트 가량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입자들이 지금보다 보험료를 약 50%가량 더 내야 한다는 말이죠.
현재 한 달에 3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은 매달 월급의 9%인 27만원을 국민연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법에 따라 이 중에서 절반, 국민연금 납부액의 절반은 회사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험료율이 13%가 되면 한 달에 39만원을 국민연금으로 내야 합니다. 회사가 부담하는 액수를 빼면 월급 300만원 직장인이 자기 월급에서 떼서 더 내야 하는 국민연금만 일 년에 72만원입니다. 순전히 자기가 더 부담해야 하는 추가 금액만 72만원이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 누구한테 물어봐도 세금이 늘어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제적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세금, 준조세로 불리는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죠. 그러다 보니까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해왔습니다. 미래세대에 부담이 되더라도 일단 자기 지갑에서 돈을 더 내는 걸 싫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1997년과 2003년 2006년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것도 정부가 여론의 반발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공청회를 통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할 방침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에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있습니다.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고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걸 늦출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 즉 투자 수익률을 올리는 방법입니다. 앞서 국민연금 기금의 규모가 635조원으로 전 세계 연기금 중 3위에 달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국민연금은 이 돈을 그냥 쌓아만 두고 있는 건 아닌데요. 전 세계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부동산 시장 등에 투자해서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투자를 잘 해서 더 많은 투자 수익을 올릴수록 기금도 늘어나게 돼서 국민연금 기금이 떨어지는 시기도 늦춰지게 됩니다.
국민연금은 2017년 기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95%에 달하는 131조원500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주식시장의 큰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투자 수익률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증권업계가 추산하는 2018년 상반기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은 0.5%에 그쳤습니다. 2017년 상반기 수익률 5.72%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지적입니다. 연평균 기금운용 수익률이 1% 포인트만 떨어져도 국민연금 고갈시기가 5년 이상 빨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오늘은 <2050년대 중·후반이면 고갈된다는 국민연금, 기금이 떨어지면 국민연금을 못 받는 걸까? 월급에서 떼 가는 국민연금을 지금보다 50%가량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진행해봤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매달 월급의 9%가량을 보험료로 내고 있는 데다 국민 대부분의 노후 생활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한 편으로만 다루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현재 1년 이상 컨트롤타워가 없는 국민연금의 투자전략 실태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면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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