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 이세민은 어떻게 중국 최고의 태평성대를 만들었을까?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홍선표 기자입니다. <오늘은 친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제가 된 당 태종 이세민, 그는 어떻게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 되었나. 동양 제왕학의 고전 ‘정관정요’로 살펴보는 리더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마련해봤습니다.
이 방송을 녹음하고 있는 2018년 10월엔 얼마 전 영화 <안시성>이 개봉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영화 안시성은 고구려를 침략한 중국 당나라 군대와 맞서 싸우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그가 이끄는 고구려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방송에서 다루려는 인물이 바로 배우 박성웅 씨가 연기한 당 태종 이세민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지 않아서 작품 속에서 당 태종 이세민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사진들을 찾아보니 왠지 냉혹하고 잔인하기만 군주의 모습으로 그려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실제로 역사 속 당 태종 이세민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이번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에 출판돼 한국 중국 일본의 역대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왔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리더십과 조직 경영에 대한 영감을 주고 있는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바로 중국 당나라 시대 때 출판된 정관정요란 책입니다. 이 책은 황제 자리에 오른 당 태종 이세민이 황제 자리에 있던 20여 년 동안 자신의 여러 신하들과 나눠온 대화를 묶은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 소개하는 대표적인 표현들이 ‘동양 제왕학의 고전’이라는 건데요.
여기서 말하는 제왕학이란 말 그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제왕이 배우는 학문입니다. 나라를 이끌기 위해선 수많은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중에서도 신하와 백성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리더십, 권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정치력,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영 능력 등은 빼놓을 수 없는 자질입니다. 제왕학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나 그의 후계자가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학문입니다.
정관정요는 그런 제왕학을 상징하는 책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세자의 필독서이기도 했고요. 역사책을 읽다 보면 큰 야망을 품고 있는 동양의 군주들이 정관정요를 읽으면서 마음 자세를 가다듬었다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 광종은 권력을 휘두르던 권문세족들을 제압하기 전에 정관정요를 읽으면서 계획을 짰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일본 에도막부를 연 첫 번째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이 책을 늘 머리맡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자 그럼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당 태종 이세민은 어떤 사람이기에 그가 평소 신하들과 나눈 대화와 그의 일화를 묶은 책이 1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읽히고 있는 걸까요?
우리 역사에서 당 태종 이세민과 가장 비슷한 인물을 찾는다면 조선의 태종 이방원을 들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이방원은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매우 큰 공을 세우지만 주변의 견제로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러자 군대를 이끌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세자이던 자신의 동생과 자신을 반대하던 무리를 모두 제거하고 스스로 왕이 되죠.
당 태종 이세민도 똑같습니다. 이세민은 사실상 당나라의 창업주라고 불릴 정도로 나라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 용병술이 뛰어났던 그는 직접 말을 타고 전쟁터를 누비며 적들과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면서 천하를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운 엄청난 공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아버지 당 고조 이연의 후계자가 되지 못합니다. 당 고조 이연은 이세민의 형 이건성을 황태자로 책봉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자 당 태종 이세민도 태조 이방원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사실 당 태종 이세민이 조선의 태조 이방원보다 700여 년 전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방원이 이세민의 행동을 따라 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텐데요. 이세민은 군대를 일으켜서 황태자이던 친형 이건성과 친동생 이원길,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립니다. 중국 역사에선 이 사건을 현무문의 변이라고 부르는데요. 황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현무문에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해서 적들을 제거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 글은 홍선표 기자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써먹는 경제경영'의 원고입니다. 써먹는 경제경영에선 이번 글과 같이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리더의 자세부터 '가계부채가 OECD 평균보다 8배 빨리 증가하는 이유, '국민연금 기금이 떨어져도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와 같은 경제 이슈 등 경제경영 전반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쉽고 깊이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자 여기까지만 들으시면 당 태종 이세민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젊은 시절부터 말을 타고 천하를 누비면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세운 뒤에는 권력에 대한 야망 때문에 친형과 친동생까지 살해한 냉혹하고 잔인한 권력자의 모습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고 백성들의 고통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과 야망만을 좇을 것 같은 인물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당 태종 이세민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 존경받는 황제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권력을 잡은 뒤에도 무력에만 의지해서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다면 이런 존경은 받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당 태종 이세민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건 권력을 잡기 전에는 철저하게 힘과 무력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다가 일단 권력을 잡은 후에는 덕과 너그러움을 바탕으로 온화한 정치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동양 고전에선 힘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패도라고 부릅니다.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 사상을 말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덕을 바탕으로 한 정치는 왕도라고 표현합니다.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 사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패도와 왕도를 적절하게 구사한 게 이세민이 만들어낸 업적의 비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가 <정관정요>를 읽으면서 느꼈던 당 태종 이세민을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만든 그의 자질과 노력을 두 가지로만 정리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00전 중국에 살았던 한 군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끌고 있거나 앞으로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실 만한 내용들인 거 같습니다.
당 태종 이세민에게 배울 수 있는 자세 중 첫 번째는 ‘능력만 있다면 설사 원수였다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등용하는 실력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정관정요는 그가 20여 년간 천하를 다스리면서 그의 신하들과 대화했던 내용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수많은 신하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신하들은 위징, 방현령, 두여회, 왕규 등인데요. 이 중에서도 위징은 그 이름이 가장 자주 나올 뿐 아니라 황제에게도 가장 많은 쓴소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위징이 당 태종 이세민에게 간언한 게 300차례나 된다고 합니다. 최고 권력자인 황제의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했다는 건데요. 이렇게 언제든 황제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었다는 말은 곧 당 태종 이세민이 위징을 그만큼 신임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위징은 원래 당 태종 이세민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이세민이 자신의 형이자 황태자이던 이건성을 죽이고 황제가 됐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위징은 원래 이건성의 핵심 참모였습니다. 이세민과 이건성이 권력 다툼을 벌이던 시기 이세민을 제거할 수 있는 계책들을 줄기차게 내놨던 인물입니다. 그랬던 만큼 이세민이 이건성을 죽인 뒤 위징을 불러다가 질책한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보통 이럴 경우엔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경쟁자를 따르던 이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게 보통인데요.
이세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세민이 위징을 부르자 사람들은 당연히 이세민이 위징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세민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대가 우리 형제를 이간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위징이 이간질을 해서 자신과 자신의 형을 싸우게 했다는 말인데요. 그러자 위징은 기죽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황태자 건성이 만일 저의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오늘의 재앙은 없었을 겁니다”라고요. 황태자가 자신이 낸 계책을 안 듣고 망설이는 바람에 이세민이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지 만약 자기 말만 잘 들었어도 이세민은 어찌 됐을지 모를 거라는 말이죠. 손 하나만 까딱하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최고 권력자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은 한 거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이세민은 위징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오히려 그에게 높은 관직을 주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를 불러들여 조언을 구했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라고 하면 비록 자신의 원수였다고 하더라도 조직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등용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었죠.
이세민은 위징의 강직한 성격과 사려 깊고 원대한 판단력을 존중해 그의 벼슬을 계속해서 높여줬는데요. 그러자 어느 날 원래부터 그를 따르던 신하 한 명이 불만을 늘어놨습니다. 쉽게 말하면 ‘원래 우리를 제거하려고 했던 적을 이렇게 잘 대해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었습니다. 원래부터 당 태종을 따랐던 부하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불만이죠. 이에 대한 당 태종 이세민의 대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위징은 나의 적이었소. 그러나 그는 전심전력을 다해 자기가 섬기는 사람을 섬겼을 뿐이니, 이 또한 칭찬할 만하오. 나는 지금 그를 발탁해 중용했소. 어찌 고대의 영명한 군주에게 부끄러움이 있겠소? 그러나 위징은 나를 거스르면서 진실되게 간언 했고, 항상 내가 그릇된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소. 나는 이 때문에 특별히 중히 여기는 것이오”
당 태종 이세민이 인재 등용에 있어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이세민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비결은 바로 남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는 자세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세민은 전쟁터를 누비면서 말 위에서 전하를 통일한 무장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카리스마도 대단했는데요. 실제로 그의 초상화를 보면 체격도 당당하고 눈도 부리부리한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그가 자신의 형과 동생까지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그의 기세에 눌린 신하들 모두가 그 앞에서 제대로 이야기조차 하지 못합니다. 혹시나 이세민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눈치만 보고 그의 입맛에 맞는 늘어놨다는 것이죠. 문무백관 모두가 황제의 말에 무조건 찬성하는 YES맨이 됐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야 나라가 잘 운영될 수가 없죠.
어느 날 이세민은 자신의 카리스에 눌려 신하들이 자신에게 솔직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신하들을 만날 때면 표정을 부드럽게 해 신하들이 겁먹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한 의견을 들려줄 수 있도록 합니다.
“정직한 군주가 간사한 신하를 뽑으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고, 정직한 신하가 사악한 군주를 섬겨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소. 나는 대신들의 솔직한 말과 바른 논의에 의지해서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고 싶소” 당 태종 이세민이 신하들에게 솔직한 의견을 내놓을 것을 당부하면서 한 말입니다.
사실 <정관정요>를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는데요. 아무리 이세민이 신하들이 간언을 귀담아듣는 제왕이라고 하더라도 신하들이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조직 안에서 상사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요. 자칫 황제의 분노를 사기라고 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이세민의 신하들은 목숨을 내걸고 간언 하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세민이 자신의 친척들을 모두 왕으로 봉해서 각자 자기의 지역을 다스리게 하려는 봉건제를 시행하려고 하자 신하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서 황족이라고 해서 모두 왕으로 봉하는 건 백성들의 고통을 늘리면서 황제의 친척들만 살리는 길이라고 반대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이세민의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이 추진하려고 했던 봉건제를 취소했고요.
그런데 이렇듯 자신의 카리스마까지 내려놓으면서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이세민이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쓴소리를 하는 신하들 때문에 폭발한 적도 있는데요. 바로 앞에서 길게 설명한 위징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세민이 신하들과의 조회를 마치고 궁전으로 들어와 불 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를 본 황후 장손황후가 이세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징 그 시골 촌놈이 조회에서 또 짐에게 대들었소. 이 시골뜨기를 죽이지 않으면 내 마음속의 한을 풀 방법이 없을 것 같소!” 평소엔 위징이게 간언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며 비단을 몇백 필씩 상으로도 내렸던 이세민이지만 이때만큼은 그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인 이세민이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황후 장손황후는 즉시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평상복이 아닌 예복으로 갈아입고 이세민에게 절을 하면 축하를 했습니다.
남편은 지금 사사건건 자기 자신에게 대드는 신하 때문에 화가 나 죽을 지경인데 아내는 왜 갑자기 예복을 차려입고 와서 춤을 추며 좋아하는 걸까요? 당황한 이세민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장손황후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서에 보면 군주가 성군이면 신하도 충신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폐하가 성군으로 계시는 까닭에 위징 같은 신하가 직언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천하에서 이런 성군을 얻었으니 폐하 곁에 있는 아내로서 어찌 이를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고 당 태종 이세민이 중국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게 된 데에는 이런 아내의 조언이 컸던 거 같습니다.
한국인들에게 당 태종 이세민은 주로 고구려를 침략하려고 했다가 결국 패하고 물러나야만 했던 중국의 황제로 알려져 있는데요. 오늘은 그와 신하들이 남긴 동양 제왕학의 고전 <정관정요>를 통해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리더의 자세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이세민이지만 그도 태평성대가 계속되자 말년에는 여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말년으로 갈수록 신하들의 간언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 많아졌고 무리하게 고구려를 공격해 국력을 쇠퇴하게 만들었죠. 또한 자신을 뒤를 이를 후계자를 제대로 고르지 못한 탓에 결국엔 그의 후궁이던 측천무후가 그가 죽은 뒤 당나라를 차지하게 만드는 큰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면 한 때 좋은 리더라고 해서 영원히 좋은 리더로 남을 수는 없다는 사실과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선 항상 자신을 갈고닦으려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 태종 이세민이 남긴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나라를 건국하는 것보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게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 말처럼 한번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그 성과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게 더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오늘은 친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제가 된 당 태종 이세민, 그는 어떻게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 되었나. 동양 제왕학의 고전 ‘정관정요’로 살펴보는 리더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마련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청취자 여러분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홍선표 한국경제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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