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소가 온다>, '아주 좋은' 제품을 만들면 망하는 까닭
누구나 이름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읽어본 적은 없는 책. 제가 생각하는 고전(古典)의 정의입니다. 누구나 그 제목을 들어본 적은 있고 대충 어떤 내용을 말하는지는 알지만 막상 그 책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고전이 고전으로 불리는 건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아무리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내용에 대해서 쓴 고전이라고 해도 그 내용을 오늘날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자병법>이나 사마천의 <사기>, 이순신의 <난중일기> 같은 책에서 조직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때로는 아끼는 부하더라도 참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요즘 세상에 잘못한 부하에게 물리적인 처벌을 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아무리 고전이더라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가 달라졌기 때문에 책에 나와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 중에서도 지금 당장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마케팅 분야 고전 <보랏빛 소가 온다>가 그런 책인데요. 사실 아직 나온 지 15년밖에(?) 안 된 책이라 고전이라 부르기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는 기업 경영 분야에서, 그것도 가장 빠르게 변하는 마케팅 분야에서 15년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책이라면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 책을 처음 펴보고 놀랐던 건 2004년 처음 한국어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찍어내고 있다는 건데요. 책 앞부분에 나와 있는 출판 정보를 보니까 지난해인 2018년 5월 6일, 초판 27쇄를 찍었다고 하더군요. 출판계에서 사용하는 판과 쇄의 정보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면 지난 15년간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있었고 그런 독자들을 위해 책을 꾸준히 찍어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마케팅 분야는 특히나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입니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상품과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방법’인 마케팅 기법도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크게 성공했던 마케팅 기법이 오늘은 전혀 먹히지 않을 수도 있고요.
이 책이 한국어판이 처음 나온 2004년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자체가 없던 시절입니다. 같은 해 미국에선 하버드대학교 캠퍼스에서 페이스북이 막 창업됐고요.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마케팅이 마케팅의 주류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됐는데요.
그렇다면 스마트폰도 없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없던 시절에 쓰인 <보랏빛 소가 온도>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팔리고, 읽힐 수 있는 걸까요?
이 책의 메시지를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광고 같은 마케팅에 돈을 쓰지 말아라. 마케팅에 쓸 돈이 있다면 그 돈을 당신이 개발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리마커블(Remarkable·놀랄 만한)하게 만드는 데 투자해라.
그렇게 만든 제품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좋아하고 자신의 경험을 남들에게 알리는 걸 좋아하는 ‘입소문꾼’에게 알려라. 일단 입소문꾼들한테서 당신의 제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마치 감기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듯이 당신의 상품은 시장에 널리 알려질 거고, 상품 판매량도 치솟을 거다.’
(팟캐스트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경영'을 들으시면 다양한 경제, 경영 이슈에 대한 쉽고 깊이있는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이 뽑은 top10 채널입니다.)
책의 제목에도 사용된 보랏빛 소라는 표현은 평범한 제품‧서비스하고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놀랄만한 제품을 말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누런 소, 검은 소, 흰색 소, 얼룰덜룩 젖소라 모여서 풀을 뜯고 있는 한가로운 목장에 갑자기 보랏빛 소가 나타났다고요.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물론 다른 소들의 눈길마저도 한 번에 잡아끌지 않을까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보랏빛 소는 이렇게 시장과 소비자를 놀라게 하는 탁월한 제품, 리마커블한 제품을 말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 되는 데요.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들으시면 많은 분들이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떠올리실 거 같습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서 많은 구독자를 갖고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자사의 상품을 사용하고 소개하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상품을 홍보하는 수단을 말합니다.
예, 분명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아직 SNS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엔 2004년 무렵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인플루언서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고 스니저(Sneezer·재채기하는 사람. 재채기를 통해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처럼 자연스레 상품을 홍보하는 사람을 말함)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요.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나면 이 책에서 말하는 스니저 마케팅이 오늘날 유행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은 마케팅 예산을 제품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인플루언서 마케팅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플루언서 마케팅 자체가 하나의 주류 마케팅 수단이 돼버렸죠. SNS 스타를 섭외해 상품을 홍보하게 하는 비용 자체도 다른 광고 매체들과 비교해 그리 싸지 않은 편이고요.
이 책의 핵심은 마케팅에 예산을 들이는 대신 그 돈을 제품 개발에 투자하고, 매우 인상적이고 놀랄만한 제품을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돈을 들이지 않고 입소문을 내라는 것입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많은 돈을 들이는 건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죠.
이 책의 저자 세스 고딘은 입소문이 날만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소비자를 타깃으로 상품을 만들려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는 말처럼 ‘모든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제품은 타깃 소비자가 없는 제품’이기 때문인데요.
절대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기획한다는 건 ‘뻔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이라는 지적입니다. 누구나 마음에 들 만한 상품이란 건 결국 누구도 싫어하지 않도록 그 상품만의 뾰족한 특성을 사포로 밀어낸 그저 그런 무난한 상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장에는 이런 무난한 상품들이 넘칠 정도로 많아서 이런 제품을 신제품이라고 내놔봤자 아무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무난한 상품을 만든 뒤에 아무리 TV광고를 때려봤자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TV를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애초에 회사가 광고하는 상품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30대 초반의 싱글남인 저 같은 경우에는 TV에서 하루 종일 아기 기저귀 광고를 해봤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화장품 광고도 마찬가지고 냉장고나 청소기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는 그 상품을 여태껏 사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사지 않을 사람들한테까지 전달되고, 이를 위해 많은 매우 큰돈을 지불하는 건 낭비라는 게 세스 고딘의 주장입니다.
사지도 않을 사람들한테 광고를 보내느라 돈을 쓰느니 이 돈을 제품 개발에 돌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세스 고딘이 말하는 ‘보랏빛 소’, 리마커블 한 제품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걸까요?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언제나 보랏빛 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식은 없다’입니다. 보랏빛 소라고 한데 묶여 불리는 제품들이더라도 그 제품들은 아주 단순하거나 아니면 아주 복잡하거나, 아주 재밌거나 아니면 아주 진지하거나, 이렇게 제품마다 극단적인 특성들을 갖고 있습니다. 평범하고 무난한 제품은 없죠. 저마다 독특한 특성들을 담고 있는 제품들이기에 언제나 보랏빛 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식은 자기 자신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대신 그는 보랏빛 소로 불리는 제품들과 기업들이 이 제품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는지를 정성 들여 설명합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1994년에 개당 750달러라는 가격의 사무용 의자를 내놔서 대성공을 거둔 허먼 밀러, 단순히 페인트통의 디자인을 바꿨을 뿐인데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인 페인트 제조사 더치 보이, 언제나 고객들로 들끓는 매장을 만든 도넛 브랜드 크리스피 크림, 다 쓰러져 가던 싸구려 모텔을 사람들이 누구나 오고 싶은 명소로 만든 피닉스 호텔의 사례 등등이 있습니다.
세스 고딘은 어떻게 하면 100%의 확률로 보랏빛 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보랏빛 소를 만들지 못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설명해주는데요. 바로 ‘아주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얼핏 잘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는 내용인데요. 세스 고딘은 리마커블 한, 놀랄만한 제품의 반대말은 나쁘거나, 형편없는 제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품 개발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만족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크게 좋은 점도 없지만 딱히 흠잡을 만한 점도 없는 제품. ‘음 아주 좋은 걸’하고 회사 직원 모두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야말로 리마커블 한 제품의 극단에 서있는 제품이라는 지적입니다.
시장을 평정했던 제품들 거의 대부분이 그 개발 단계부터 회사 구성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던 상품이었다는 것이죠.
<보랏빛 소가 온다>는 판형(책의 크기) 자체가 작은 데다 분량도 200페이지 정도밖에 안돼서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책입니다.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이들과 차별화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경제경영 분야 이슈에 대해서 이렇게 글도 쓰고, 팟캐스트와 유튜브도 만들고 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만들고 있는 콘텐츠를 어떻게 남과 차별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게 됐습니다. 독자분들도
자신의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내 것을 남과 차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실 겁니다.
홍선표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지금 이 글처럼 경제 상식과 이슈에 대해 쉽고 또 쉽게 설명하는 저의 책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이 출간됐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31가지 주제만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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