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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003. 인력거를 왜 혼자 타시나요?


인력거꾼으로 첫 출근하기 전날 밤, 나는 오랜 시간까지 뒤척이고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첫 출근이 긴장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늦은 시간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니었다. 다름이 아니라, ‘한 명’의 예약 손님 때문이었다. 


혼자서 인력거를 탄다니?(문제의 예약 문자)


아띠 인력거에선 하루 전에 카카오톡을 통해 인력거꾼에게 예약을 공지한다. 예약 손님 숫자, 태울 장소, 시간 등을 알려준다. 그날 처음으로 받아본 예약 공지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예약자가 여자 이름에, 숫자는 ‘성인 1명’.


왜 ‘혼자’ 인력거를 타는 걸까? 
어떤 사람이 ‘혼자’ 탈까? 
‘혼자’ 탄 사람이 나랑 어색하면 어떻게 하지? 
말이 없는 사람이면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야 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난 단순한 사고 회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걱정이 많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닥치면 그걸 해석하기 위해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긴다. 인력거를 혼자 타는 경우도 흔한 경우는 아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생각에 빠졌다. 

썸 타는 사람이 있을 때 이후로 새벽까지 뒤척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 빨리 자자.’ 하면서 나에게 최면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밤새 뒤척이다가 알람 소리가 들리자마자 이불 밖으로 빠져나왔다.
  
혼자 온 손님을 만난 건, 저녁 여섯 시. 서른 살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여자분은 좋은 사람이었다. 왜냐면 나에게 먹을 걸 건넸기 때문이다. 
“이거 드시고 시작하세요.”
몸에 좋은 야채 음료였다. 단숨에 야채 음료를 들이켜자 기분이 좋아졌다. 어렸을 땐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 거절하라며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납치되지 않을 정도로 큰 어른이 되니, 공짜로 먹을 걸 주는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란 걸 느꼈다. 

아주머니가 건넨 야채 음료. 난 과일음료가 더 좋.....


음료수를 다 마시고 느지막하게 여자분과 투어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왜 혼자 인력거를 탔을까?’ 
무턱대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의문점은 묻어두고 북촌을 돌며 투어를 진행했다. 그런데 궁금했던 의문점은 대화 중에 자연스레 풀리기 시작했다. 나와 대화가 편해진 손님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손님이 혼자 인력거를 탄 이유’ 
거기엔 슬픈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해외여행’에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해외로 나가본 곳 있으세요?"
“삶의 여유가 없어서 못 가봤어요. 애들 다 키우고 난 지금에야 국내부터 조금씩 놀러 다니고 하는 거지. 예전엔 놀러 다닐 생각도 못했어요.”
서른 후반쯤으로 보였던 손님은, 실은 고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놀랄 만큼 동안이었다. 손님이 혼자 온 이유는 이거였다. 아이들에게 인력거 투어를 같이 가자고 했는데, 자녀 둘 중에 아무도 엄마랑 함께 오려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요새 엄마가 하자고 하는 것마다 다 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아이들 때문에 부쩍 서운하다고 말했다. 
인력거 투어 막바지엔 거의 자녀 이야기만 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역시 자녀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내가 일하느라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애들 다 키우고 나니, 나는 시간이 많은데 애들이 시간이 없네요.


우리 가족도 사정은 비슷했다. 어렸을 때 나는 나대로 공부하느라 바빴고, 부모님은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바빴다. 세월이 지나 이제 서로 여유가 되는 시기가 되었는데 그다지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대화 없이 지나다 보니, 서로 엮이지 않는 상황이 너무 익숙했다. 이미 취미나 관심사 등, 많은 것들이 서로 달라져서, 어쩌다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도 딱히 할 얘기가 없었다. 

손님은 인력거에서 내리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한테 잘 하세요. 꼭!”
마치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날 집에 들어가자마자 베란다로 갔다. 그리고 플라스틱과 종이가 가득 찬 박스, 두 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주 오랜만에 분리수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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