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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004. 무자식이 상팔자

손님: 중년 남자 1명, 중년 여자 1명(관계: 부부)


“우리 딸이 이 회사 다니는데.”

아마 자식 얘기할 때 조용히 있는 부모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태웠던 중년 부부도 그랬다. 인력거 투어 초반엔 내 설명만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 장소를 지날 때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바로 한진 그룹의 땅을 지날 때였다. 그 땅은 북촌 안에 있는, 돌담으로 크게 둘려있는 공간인데 바로 한진 그룹 소유의 땅이었다. 

도깨비와 지은탁의 첫 만남. 돌담길 뒤로 한진 소유 땅이 있다.


"여기가 한진 부지에요."

라며 내가 적당한 설명을 곁들이는데, 자기 딸이 이 회사에 다닌다며 아저씨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때부터 아저씨는 수다스럽게 딸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딸이 부산 지사에 다니고 있고, 공기업이라 안정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가 얘기하는 회사는 ‘한진’이 아니라 ‘한전(한국 전력회사)’이었다. 아저씨가 잘못 알아들은 건지, 내가 발음이 이상했던 건지. 어쨌든 아저씨는 그 땅을, 딸이 다니는 회사의 땅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사실을 바로잡아주고 싶었지만 난 사람 말을 끊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딸 자랑에 기뻐하는 아버지 기분을 초칠 생각도 없었다. 흐뭇하게 자식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중년부부가 자식 자랑을 할만했다. 요즘같이 취직이 어려운 시기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딸을 뒀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공기업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자랑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부부의 속을 뒤집어놨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고양이’였다. 인력거를 타고 가다, 길가에서 배를 까집고 뒹구는 고양이가 보였다.
"북촌의 고양이는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아요." 
내가 고양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북촌에 사는 고양이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인력거꾼 '제시' 작품


그 말을 듣자 아주머니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의 고양이 때문에 우리 딸이 연애를 못해요. 만날 집에서 고양이랑만 놀고 있으니 외로운 줄 모르지. 고양이가 없어야 외로워서 애인이라도 만나는데. 이러다 결혼도 못하는 건 아닌지 몰라.”
라며 애꿎은 고양이를 탓했다. 남자친구랑 헤어진 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따님. 그런데 고양이를 키운 뒤로 오랫동안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왜 문제냐옹." -인력거꾼 '제시' 작품
내가 귀여워서 연애를 못한다니.


걱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딸내미가 회사 옮길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친구들이 다 서울에 있고 부산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외롭다고 하더라고. 친구들이 자주 부산으로 찾아가긴 하는데 그걸론 부족하겠지. 친구들이랑 가까운 데 살면서 자주 만나고 싶다고 하니깐.”
고양이 한 마리가 어찌나 부부의 마음을 심란하게 휘저어 놓았던지, 나에게 끝없이 고민을 털어놨다. 부부는 자식이 취직을 해도 여전히 자식 걱정뿐이었다. 결혼 못하면 어쩌나 걱정. 딸이 회사를 그만두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부모는 자식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겐 영원히 어린아이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통화 내용은 항상
“밥은 먹고 다니니?”, “차 조심해라.” “길 조심해라.” 
라고 걱정으로 시작해서 걱정으로 끝났다. 아버지 나이가 오십이 넘어 육십 줄을 바라보는데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자식 걱정이었다. 


무자식이 상팔자.

자식을 낳으면 걱정거리 하나 느는 건데, 왜 굳이 붙일 필요 없는 혹을 붙이는 건지. 결혼도 안 해봤고, 애도 키워보지 않았으니, 내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경험 없는 나로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르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부모님의 풍성한 흰머리를 보면, 내가 속 썩인 일이 하나둘 기억난다. 
자식 걱정하는 부모님을 보면 애를 왜 낳는지 의문이 들면서도, 딸이 다니는 회사를 자랑하던 부부의 모습을 보면 나름 즐거워 보이기도 하고. 둘 중에 어떤 게 정답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아 참, 아저씨! 그 땅 한전 땅이 아니라, ‘한진’그룹 땅이에요.'

심란한 중년 부부를 위해, 이 말은 끝끝내 아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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