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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009. 시간 보다 중요한 것

손님: 중년 여자 손님 1명


하루가 끝나고 일기를 정리하다 보면 손님의 얼굴, 손님과 나눈 이야기가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런데 어떤 손님은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고,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눴는지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 오늘 손님이 딱 그랬다. 다섯 명의 여자 손님 중 다른 인력거꾼들이 두 명씩 태우고, 나만 손님 한 명을 태웠다. 
내가 홀로 탄 손님에 대해 알게 된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함께 온 사람들이 25년 지기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란 것. 그 외에 손님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투어가 짧았냐고? 
아니다투어는 무려 두 시간짜리였다. 인력거 투어 중에 가장 긴 투어였다.
손님이 맘에 들지 않았냐고?
아니다. 손님과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손님 성격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손님이 조금 바빴을 뿐이다. 투어 내내 통화하고, 문자 하고,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었다. 내가 말을 걸면,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나도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다. 간간히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내용이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두 시간 동안 함께 한 손님이 기억에 남지 않는 반면, 투어 도중 마주친 행인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기도 했다. 손님과 두 시간짜리 투어를 하고 있을 때, 경복궁 돌담길에서 젊은 엄마와 아들을 만났다. 
“엄마아아아아! 저거 저거!”
아이는 인력거를 보며 소릴 질렀다. 그때 젊은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는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두 어깨는 축 늘어져있었다. 아들과 함께 밖을 돌아다니다 진이 빠진 듯했다.
“하아, 아들아. 지금 너보다 엄마가 더 타고 싶어.”
엄마는 인력거에 탄 손님을 부러운 듯 쳐다봤다.


젊은 엄마와 아들이 간절한 눈으로 인력거를 바라봤던 그곳


두 시간 동안 함께해도 가물가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깐 마주쳤는데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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