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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010. '남' 얘기 말고 '당신' 얘기 하세요

손님: 60대 여자, 세 살 짜리 남자 아이(관계: 할머니와 손자)


인력거 손님들 중에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번에 탄 손님이 딱 그랬다. 딸내미의 아들을 봐주러 대구에서 올라왔는데, 딸내미가 호텔도 예약해주고, 걷기 불편할까봐 인력거 투어까지 예약해줬다는 얘기부터 시작했다. 딸은 미국에서 유학을 한 이대 나온 여자, 아들은 변호사. 사회적으로 봤을 때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자식들이었다. 투어가 끝날 때까지 할머니의 자식자랑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식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자식이 해외여행을 몇 번이나 보내줬는지 줄줄이 읊었다. 내가 두 자녀분을 만나 뵀거나, 아는 사이였다면 그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본 적도 없는 자녀 얘기를 듣고 있었다. 마치 엄마친구 아들 이야기 들을 때 느낌 같았다. 나랑 관련도 없는, 하지만 잘 나가는 사람 이야기.


엄마만 아는 엄마친구 아들


관심도 없는 얘기에 신물이 날 즈음, 다행히도 할머니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노인에 대해 잘 아시나요?”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길거리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게 인사를 하고 난 후였다.
내가 모르겠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본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저도 얘한테는 할머니이긴 한데.”
할머니는 옆에 앉은 손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실버산업 쪽에 관심이 많아서 노인 상담, 심리 쪽을 배웠거든요. 저는 노인 중에서도 젊은 노인에 속하니깐,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캐어하는 일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한 번 여쭤본 거예요. 이쪽 분야를 잘 아시나 싶어서.”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할머니는 실습하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노인 분들 대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부터, 특히 노인 중에서 ‘치매’ 환자 분들이 제일 힘들었다는 얘기까지.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어서 노인 상담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할머니는 인력거 투어 내내 길거리에서 노인 분을 만나면 꾸벅꾸벅 인사하고 말을 붙였는데, 어쩐지 그 모습이 특이해보이긴 했다. 할머니는 노인 분을 가능한 많이 만나며 실전에서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밤늦게 일기를 쓰면서 할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정리했다. 오랜 시간 자녀 자랑만 들었지만, 내가 할머니에 대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부분은 할머니 자신의 이야기였다. 아주 짧은 찰나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에피소드에 ‘노인에 관심이 많은 젊은 할머니’란 제목을 붙여줬다. 이대 나온 딸과 변호사 아들을 둔 할머니라고 적지 않았다. 
만약 인연이 닿아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노인 상담과 관련해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물어볼 것이다. 자녀 이야기가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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