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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Oct 26. 2018

030. 말할 수 없는 비밀

손님: 중년 여자 2명


북촌의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노을이 한옥 위에 걸려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북촌의 흔한 노을 풍경 -출처: Cafe area instagram
노을 진 광화문 -출처: 아띠 인력거 instagram


이 최상의 타이밍에 인력거를 탄 손님들은 중년 여자 손님 둘.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분이었다. 한 여자분은 인력거를 타는 내내 쉬지 않고 얘기했고, 다른 여자분은 말없이 다소곳하게 인력거에 앉아있었다. 

대화는 나와 말이 많은 여자분, 단둘이서 주고받는 형식이었다. 말이 많은 사람들은 맞장구를 조금만 쳐줘도 말이 더 많아지는 법. 내가 계속 이야기를 들어드리니 한 분이 말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나는 대화하는 와중에 다른 한 분이 소외되는 것 같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조용한 여자분에게 간간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조용한 여자분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대리인을 통해 들어야 했다.  
"오늘 인력거 타시기 전에 뭐하다 오셨어요?" 
"이 친구는 여기 오기 전까지 개인적인 일처리를 하다 왔어요. 피곤해죽겠다는 걸 내가 억지로 끌고 나왔는데, 하도 징징거려서 인력거를 태워준 거예요." 
말 많은 여자분이 질문을 대신 대답했다. 마치 높은 사람 이야기를 대변인을 통해 듣는 기분이라 할까? 조용한 분에게 직접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탓인지 말이 없었다. 그렇게 투어가 끝날 때까지 조용한 분의 목소리는 못 들어보는 듯싶었다. 
일정이 모두 끝났을 때 북촌은 어두워져 조명등만 보였다. 나는 말이 많은 분에게 여쭤봤다. 
"어디에 내려드릴까요?"
"글쎄요. 밥을 좀 먹어야 하는데."
그때 조용한 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주변에 막걸리 맛있는 곳 있나요?"
"아, 저기 아래 산체스 막걸리라는 곳이 있긴 한데."
처음 듣는 목소리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필자도 가 본 산체스 막걸리 집. 사진은 미국식 감자전과 막걸리.


"그럼 거기에서 내려주세요."

조용했던 여자분은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계속 쏟아냈다. 

"미국에서 살다가 20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거긴 막걸리가 한 종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한국이 너무 좋아요. 여긴 종류가 많아서 행복해요."

그리고 여자분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어휴, 말 안 하느라 죽는 줄 알았네."

"네? 일부러 말 안 하셨던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이제 조용하지 않은 여자분은 이렇게 답했다.

"제가 듣기로 한국말 어눌하게 하면 조선족으로 오해할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그냥 입 꾹 다물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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