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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Dec 10. 2019

아들의 장애를 등록했다.

엄마는 너를 위해



세상이 둘이라면

하나는 네가 없던 어제,

다른 하나는 네가 있는 오늘.


네가 조그만 손에 꽉 쥐고 온 것은

새로운 세상이었지.


- 엄마는 너를 위해, 박정경



그동안 미뤄왔던 재준이의 장애등록을 결심하고 주민센터에 갔다. 준비해 온 서류를 내고 확인을 기다리는데 연륜이 있어 보이는 부부가 들어왔다. 남편의 어머니가 편찮으셔 장애등록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공무원 한 분이 이쪽으로 오시라며 설명을 시작한다. 아들의 장애등록을 하러 갔던 나는, 엄마의 장애등록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서류를 확인하던 공무원은 한 달 반 뒤 ‘장애정도 결정서’가 우편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나가려는데 장애등록에 관한 설명을 듣는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의 장애등록이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들의 장애등록을 하러 갔으면서도 나는, 엄마의 장애등록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폐성 장애로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 자폐 진단검사와 지능검사. 소아정신과에서 두 가지 검사의 결과지를 받는 데까지 50만 원이 넘게 들었다. 검사비가 높은 편인지라 보건복지부나 각 지자체에서 검사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런저런 기준이 있어 사실상 지원금은 받기가 힘들다. (2017년에도 이번에도 받지 못했다.) 또 정신과 진료의 경우 실비보험 혜택을 받기도 까다롭다. ( 때문에 아이의 발달이 의심되어 검사를 해보고 싶을 때는 웬만하면 소아정신과보다 재활의학과에 먼저 가보길 추천한다. )


장애아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그놈의 돈 이야기는 빠지지가 않는다. 참, 생각보다 장애는 별게 아닌 것 같은데 생각보다 참 돈은 별거다. 매달 치료비로 얼마씩 쓴다, 양가 부모님에게 매달 얼마씩 받아 치료실에 다닌다, 우리는 일단 집 사는 건 뒤로 미루고 치료를 받는다, 이건희 자식이면 장애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지 않아? 하며 까르르하고 끝내곤 하는데, 그 까르르 속에서 엄마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미뤄뒀던 재준이의 장애등록을 하게 된 것도 그 ‘돈’때문이다. 내년 재준이의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 장애등록을 하지 않으면 치료비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는 발달재활서비스를 더 이상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장애등록을 하면 내년 생일인 만 6세부터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의 일부 금액이나 ‘장애아동 양육 서비스’ 등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재준이가 그린 밤하늘?? 우주?? 뭘까요?




이런저런 복지제도를 살펴보다 이제는 미루지 말고 장애등록을 해야겠구나 했던 것인데 장애등록을 하던 그 날, 나는 재준이가 자폐를 진단받던 날이 생각났다.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모든 것이 바뀐 날.


나와 남편은 재준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도 팔고 차도 팔고 직장도 그만두고 제주도로 이주도 했었다. 이 정도면 성의껏 재준이를 돌보고 있지 않나, 내 상황 안에서 해줄 만큼 해주고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장애등록을 하던 그 날,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젠 진짜 재준이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

 



한 달 반 뒤에 우편으로 올 것이라고 했던 ‘장애정도 결정서’가 왔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한 달 반이라고 했으니 한 달 안에 오겠거니 생각했던 우편은 한 달이 지나고, 한 달 하루가 지나고, 한 달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사일이 지나도 오지 않더니, 정말 딱 한 달 반 만에 왔다.


작은 우편봉투에 들어있던 종이 세 장. 그 안에는 재준이를 심사한 결과가 쓰여있다.


심사결과: 심한 장애

향후, 장애 변동 가능성을 감안하여 6년 후 재판정이 필요합니다.


장애 변동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그래서 6년 후에  재준이는 재판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희망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6년 후 재판정을 받을 때까지 열심히 케어해야지. 요즘 재준이 치료를 너무 줄였는데 괜찮을까 걱정을 하다,


갑자기 주민센터에서 마주친 부부가 생각났다. 엄마의 장애등록을 하러 왔던 그들도 나를 보며, 아들의 장애등록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들이 장애등록을 해주려던 그 엄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이제 그런 삶이, 재준이가 태어날 때 손에 꽉 쥐고 있다 나에게 보여준, 그런 세상이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보고, 느끼고, 쓰기로 했다. 재준이와 또 다른 재준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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