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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Dec 13. 2019

자폐, 별 거 아니지?

혼밥과 자폐

재준이가 자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재준이를 처음 봤을 때 하는 소리가 있다.

"재준이 자폐아 같지 않은데? 말만 좀 못 하지, 괜찮은데?"

처음에 나는 이 말을 듣고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를 고민했었고, 그다음으로는 자폐가 어떤 건지 설명해줘야 할지를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말을 들으면 가슴 한편이 슬쩍 답답해지며 이런 생각이 든다.

‘자폐는 실체가 없는 괴물이구나.'


자폐아 같은게 어떤거죠?ㅠ


‘암 걸릴 것 같다’라는 말이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 잘 사용하던, 특히 인터넷 상에서 많이 쓰였던 표현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고, 미치고 환장하겠고, 머리 끝까지 열이 오르고, 이 상황이 아주 부당하게 느껴지고......’를 줄여서 ‘암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어찌나 자극적이고 얼마나 신속하게 표현이 되는지. 이 말은 등장하자마자 유행하듯 퍼졌는데, 얼마 가지 않아 '쓰지 말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암을 겪어본 사람들이었다.


어떤 단어는 중립적인 의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역사 때문이다. 본인, 혹은 가족 누구라도 암에 걸려본 사람은 암의 ‘ㅇ’ 자만 봐도 치가 떨리고 무섭다고 한다. 암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 사람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암은 내가 겪은 역사고, 앞으로 내 삶을 어떤 식으로든 지배해 갈 존재이기 때문이다. 암에 걸렸을 때의 심정, 암이 주는 아픔과 고통, 주위의 반응, 사회의 오해, 가족의 희생.... 겪어본 사람은 안다. '암 걸릴 것 같다'가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몇 년 전, 방송인 황교익 님이 ’ 혼밥을 하는 사람은  (사회적) 자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비난이 일자 그는 이렇게 해명했다.

"'사회적 자폐'는 혼밥을 사회적 현상으로 읽으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다. 자폐는 단어 그대로 '자신을 가두는 일'이다. 즉 사회적 자폐란 '사회적 영향에 의한 자발적 고립'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많이 억울했을 것이다. 악의로 한 말이 아닌데. 사전적인 의미로 사용했을 뿐인데. 나는 그의 순수한 의도를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자폐’를 겪어본 나는, ‘혼밥은 자폐'라는 말을 듣고 내가 겪은 역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사 중 가장 아픈 '자폐에 대한 편견'에 마음을 다친다.


김창열 작가의 작품을 보는 재준



보통 장애나 질병은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그로인해 그 장애나 질병에 대한 편견은 더욱 견고해진다. 장애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정신지체’ 같은 말이 사용되고, 아예 일상적인 욕이 되어버린 ‘병신’도 있다. 그는 ‘자폐’를 한자 뜻 그대로 ‘자신을 가두는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해명하지만, 자폐는 장애 그 자체를 의미한다.



부정적으로 사용된 '자폐'를 보며, 나는 유치원 원장님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자폐아들은 폭력성이 있다던데, 재준이가 친구들을 때리고 그러나요?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재준이가 폭력적이에요?"

나는 그가 사용한 ‘자폐’를 보며 유치원에서 학부모들에게 돌린 설문지를 떠올린다.

"내 아이가 장애아와 같이 수업을 받아도 괜찮은가요?"

많고 많은 학부모 중 나에게만 서명하라고 했던 서약서가 떠오른다.

"원에서 발생한 사고는 원이 책임지지 않는다. 원에서 발생한 일은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혼밥’이라는 단어를 보면 ‘자폐’가 생각난다. 그리곤 혼밥과 자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재준이는 혼밥을 할 수 있을까? 자폐인 중 혼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혼밥도 하지 못하는 자폐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은 그 자식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만약 그가 자식으로 자폐인을 뒀다면, '혼밥은 자폐'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거대한 것을 겪어보지 않았을게 분명하다. 겪어보면 쓸 수 없다. ‘암 걸릴 것 같다’, ‘혼밥은 자폐’ 같은, 그런 말은.


나는 앞으로도 그들이 그런 것은 겪지 않길 바란다.

단 한 사람도 겪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들은 말한다. 재준이를 보고 ‘자폐아 같지 않다’고. 나는 이제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게 자폐야. 자폐, 별거 아니지?"


사랑하는 할머니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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