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주씨 Jan 03. 2020

저도 제가 장애아를 낳을 줄 몰랐어요.

‘당신’을 위한 장애인 복지제도

특수학교를 지어달라며 장애아 부모들이 무릎을 꿇는다. ‘무릎 호소’라고 이름 붙여 뉴스로, 기사로 여기저기에 쓰인다. 무릎 정도도 꿇지 못하면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님비현상’ 같은 진부한 이야기. 비장애인인 당신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




‘애착 인형’이라는 게 있다. 엄마(주양육자)와 떨어지면 분리불안을 느끼는 어린아이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항시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형.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엄마들은 아이에게 애착 인형을 하나씩 마련해줬다. 엄마만큼 심리적으로 가까운 인형. 아이가 매일 소중히 안고 다니는 인형.



나는 재준이의 애착 인형을 직접 만들었다. 사고로 손가락 두 개를 잃은 아빠를 보고 자라, 사람 손은 여덟 개일 수도 열 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나처럼, 인간의 신체에 대해 편견이 없는 사람이 되라고 특별한 인형을 재준이에게 만들어줬다.



왼쪽 귀가 없는 곰숭이 빠빠


곰+원숭이(혼혈을 의미)인 ‘곰숭이’ 빠빠. 내가 재준이에게 첫 번째로 만들어준 인형. 빠빠는 왼쪽 귀가 없다. 빠빠는 한쪽 귀가 없으니 귀가 있는 오른쪽으로만 이야기하라고 재준이에게 늘 말해줬다.




재준이가 빠빠를 좋아하기에 다음 인형도 직접 만들었다. 두 번째로 만든 인형은 눈이 보이지 않는 펭귄 ‘펭스’. 재준이가 펭스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펭스는 어린 재준이만큼 큰 사이즈로 만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황제펭귄 ‘펭스’




다음으로는 알비노 카멜레온인 ‘또바기’. 또바기는 순한글로 ‘언제나 늘 한결같이 꼭 그렇게’라는 뜻이다. 화려하게 변신하는 다른 카멜레온들과는 달리 한결같이 흰색을 유지하고 있어, 오히려 눈에 잘 띄는 또바기. ‘보호색’이라는 카멜레온 최고의 무기를 갖지 못한 친구.


알비노 카멜레온 ‘또바기’




나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가치관은 어떻게든 책임지고 올바르게 가르쳐야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그 유명한 ‘Free thinker’,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재준이를 키워내야지. 아픈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내야지. 동화책도 내가 직접 만들어서 인성교육도 해야지.




그런데 이게 웬걸. 아이가 좀 이상하다. 검사를 받아보니 ‘자폐’라는 진단이 나왔다. 재준이가 자폐라니.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아이는 Free thinker가, 편견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가장 약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내 아이가 그 대상인 장애인인 건 말이 안 되는데.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 집안에도 남편 집안에도 정신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다. 부모님이 알고 있는 조상(?)님들 중에서도 정신장애인은 없다. 그런데도 태어났다.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폐아를, 다름 아닌 내가 낳았다. 그렇다. 내가 장애인을 낳았다.



재준이가 찍은 뽀로로 친구들



‘장애’라는 게 그렇다.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간다. 나에게, 내 가족에게, 내 친구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지구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가장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가장 열심히 산다고 해도 장애는 그들을 피해 가지 않는다. 어리면 어린 대로, 젊으면 젊은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나이를 불문하고, 이유도 불문하고 그냥 갑자기 누군가를 찍어서 찾아간다. 나는 한동안 그게 무서웠다. 그 ‘장애’라는 것이 나에게도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한순간의 사고로, 또는 ‘병’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와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겠다는 것이.






특수학교를 지어달라며 무릎을 꿇는 장애아 부모들의 모습이 내 눈에 보인다. ‘치매 국가책임제’를 외치는 치매노인의 가족들이 내 눈에 보인다. 이제 나와 관련 없는 소수의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다. 모두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장애를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우리 모두 의료보험을 들고 있는 것처럼, 장애인 복지는 장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한 보험이다. 그래서 장애인 복지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만을 위한 복지가 아니다. 무릎 꿇은 장애아 부모님의 뉴스는 당신과 관련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 복지는 당신과 당신 가족을 위한 ‘복지’라는 이름의 보험이다. 비장애인인 당신이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자폐, 별 거 아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