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능
올해 7살이 된 재준이는 아직도 “엄마”라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세요.” “열어주세요.” 같은 간단한 말도 하지 못해 짜증을 내거나 울어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한다. 3살짜리에게도 시키면 쉽게 할 수 있는 지시사항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준이는 병원에서 ‘지능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고, ‘자폐적 성향’과 ‘낮은 지능’이라는 두 가지 항목을 충족시켜 자폐성 장애로 등록이 되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도 재준이가 영재가 아닐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만 두 살짜리 아이가 1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는데, 그것도 모서리부터가 아닌 중간부터 척척 맞추는 모습을 보면 어떤 부모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당시 나는 재준이와 일상적인 대화는 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당연하게도 재준이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재준이가 뽀로로 대사를 통으로 외우는 모습을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한 살 많은 누나도 잘하지 못하는 숫자를 거꾸로 배열하는 모습 같은 걸 보였을 때, ‘뭔가 다르다’며 주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던 재준이였다. (이건 <자폐증 개론> 같은 책에도 나올 만큼 자폐인들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재준이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재준이가 하는 행동들을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는 ‘얘가 머리는 비상한데’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비상한 머리로 할아버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재준이는 지능검사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아이들이 받는 지능검사라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선생님이 지시 하는 것, 예를 들어 눈코입이 있는 사람 얼굴을 그려보라고 한다던가, 숫자를 세어보라고 한다던가, 사물이 그려져 있는 단어카드를 내보이며 이게 뭐냐고 묻는 것이다.
이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재준이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다. 재준에게 눈코입이 있는 얼굴을 그리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선생님의 지시를 잘 알아듣지 못해 사람 얼굴을 그리지 못한다. 나와 함께 단어카드놀이를 할 때는 (발음은 부정확할지라도) 잘 말했던 단어들, ‘자동차’ ‘비행기’ 같은 걸 처음 보는 선생님이 말해보라고 한다고 해도 재준이는 말하지 않는다. (말만 하지 않으면 다행인데 재준이는 자꾸 검사를 거부하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못하는 재준이는 지능검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한 항목(시공간)에서는 평균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나는 그 항목을 검사할 때 선생님이 시키는 걸 재준이가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모든 부분의 지능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바로 자폐의 특성이라고 했다.
3년 전 이런 검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검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준이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낯가림이 심하다. 그런데 처음 본 사람과 낯선 방에 단 둘이 들어가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하라고 하면 재준이는 당연히 그에 따를 리가 없다. 내 자식을 제대로 평가도 못했으면서 이런 결과를 낸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이 검사는 ‘사회적 지능검사’라는 것을.
의사소통에 기반하지 않는 지능, 사회성을 동반하지 않은 지능은 사회에서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자폐인들이 가진 뛰어난 기억력, 독특한 감각처리 방식은 그 자체로는 특별할 수는 있어도 사회적으로는 가치가 없다고 평가된다. 인터넷에 무언가를 치면 관련 자료 수십, 수백만 개가 나오는데 뛰어난 기억력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억력이 좋지 않더라도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자료를 잘 찾는 사람이 사회에는 더 필요하다. ( 나는 자료를 잘 찾는 것도 의사소통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자폐인들의 특별한 감각을 재발견해내는 시도들이 많이 있다. 이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비자폐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감각하는 자폐인의 능력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에게는 아주 의미 있고 기쁜 소식이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자폐인들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자폐인들의 의사소통 능력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