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선민의식
1. 얼마 전, 대학원 동기들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학부에서도 언어병리학을 전공했던 동기들이 학부 때 이런 과제를 해봤다고 합니다.
'말더듬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해보기 위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을 더듬으며 이야기하기’
예를 들면 ‘맥도날드 알바생에게 말을 더듬으며 햄버거를 주문하는 것’ 같은 체험이라고 합니다. 전공자 두 명과 이야기하는데, 두 친구 모두 해봤던 과제였다고 합니다(보편적인 과제인가 보죠?ㅠ). 그런 과제가 있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답답해지더라고요.
2. 미국에서 어떤 백인이, 흑인들이 겪는 인종차별에 대한 고통을 이해해보고자 하루 동안 온몸을 까맣게 분장하고 흑인 체험을 하겠다고 합니다. 흑인들은 자신을 흉내 내는 백인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백인이 하루의 체험 동안 무엇을 느꼈다고 한들, 정말 그게 흑인들이 느끼는 그 감정일까요?
3. 어떤 재벌이 빈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루 동안 쪽방촌 생활을 해보겠다고 합니다. 쪽방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체험하겠다고 하는 재벌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재벌이 그런 체험을 해서 느낀 것은 쪽방촌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같을까요?
비장애인이 장애인 체험을, 백인이 흑인 체험을, 그리고 재벌이 쪽방촌 체험을 하며 무엇인가를 느낄 수는 있겠죠. 그게 실제 당사자가 느끼는 것과 같지는 않겠지만요. 뭐,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내가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누군가의 고통을 흉내 낸다'는 생각이요, 저는 그런 발상 자체에서 공감능력의 결여를 느낍니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고통을 단순히 체험도구로 사용해도 되는 건가요? 그러한 고통을 나의 체험도구로 사용해서 전시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선민의식'이 제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타인의 삶이나 고통은 나의 체험도구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겪어보지 못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체험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요. 저는 오히려 그런 체험이 왜곡된 시각이나 한계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제는, 그런 수업은 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