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주씨 Jul 18. 2020

코로나 시대의 자폐아

재난

얼마 전 보게 된 기사 하나.


일주일에 한 두 번, 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었는데 코로나 19로 지난 2월 초부터 복지관이 문을 닫았어요. 그 이후 모든 치료가 중단됐죠. 지금은 아이 몸에 근육이 없다고 보면 돼요. 겨우 눈만 깜빡이는 수준이에요.




 올해 1월, 입을 꾹 닫고 있던 재준이가 드디어 종알종알 옹알이를 터트렸다. 드디어 말문이 터지는 걸까 내심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눈맞춤이나 상호작용도 좋아지는 것 같아 뭔가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재준이를 참여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봤다. 마침 동네 복지관 프로그램에 한 자리가 남아있다고 했다. 매주 네 명의 아동이 참여하는 숲 체험에 놀이 선생님 두 분, 공익쌤 두 분(1:1이라니!!!)이 따라가서 지도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잘됐다 싶어 바로 등록을 하고 상담도 끝냈다. 친구들과 선생님께 인사하는 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며 숲 체험 날을 기다렸다. 어린이집에서도 재준이가 친구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옹알이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게 잘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이집도, 치료센터도, 복지관도 문을 닫았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몇 주동안 집에만 있으니, 옹알이를 곧 잘하던 재준이가 또 입을 닫았다. 하루에 단 한 번도 입을 떼지 않는 날도 있었다. 절망스러웠다. 또 이전처럼 갑자기 입을 꾹 닫고 아기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이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인 것 같았다.



 뇌 발달에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있다. 예를 들어 청각발달의 결정적 시기는 생후 12개월까지이다. 만약 이 시기에 청각장애 등으로 청각적 자극에 노출이 되지 못하면, (이후 청각 자극에 노출이 되더라도) 청각능력을 개발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마찬가지로 언어 발달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는데, 생후 5년까지이다. 나는 언어발달의 결정적 시기 안에 재준이의 말문이 꼭 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후 5년의 끝자락에서 기적적으로 터진 재준이의 옹알이가 나에게는 한 줄기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아니 코로나로 인한 모든 것들이 재준이의 입을 닫게 만들었고, 이 소중한 언어발달의 결정적 시기를 망쳐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규칙적이었던 생활에 변화가 생긴 재준이에게는 이상한 버릇(혹은 강박) 몇 가지가 생겼다.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30분에 한 번씩 들락날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30분에 한 번이지, 화장실에서 나온 후 곧바로 다시 들어가 소변이 나올 때 까지 변기 앞에 계속 서있기도 했다. (긴급 보육으로 보낸) 어린이집에서도 재준이가 갑자기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가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는 연락을 주셨다.

 

 또 마스크를 쓰면 두 손을 양쪽 귀에 대고 있어야 한다거나, 한 손으로 양쪽 귀를 번갈아가며 만져야만하는 강박도 생겼다.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 계속 한다.)


마스크를 쓰면 두 손으로 양쪽 귀를 잡고 있거나,
한 손으로 양쪽 귀를 번갈아가며 만진다.


아침 9시까지 잘 자던 애가 새벽 5시 6시에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도 종종 생겼다. 변화된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강박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정부에서 장애아를 키우는 가정에게 코로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 겪는 힘든 상황에서 장애가정에까지 관심을 갖는 정부의 세심함에 놀랐고, 재준이가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했다. 나는 원장 선생님께 필요한 것은 '치료'라고 말씀드렸다. 이후 정부에서 발달재활 바우처를 6개월 간 사용할 수 있도록(원래 1개월 안에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 기간을 늘려주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동안 받지 못했던 치료를 받으러 열심히 센터에 다녔고, 다행히 재준이는 다시 옹알이를 시작했다(그 사이 만 6세가 되어버렸지만ㅋㅋㅋㅠㅠ).


재준이와 아빠






재난의 크기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않다. 장애인이나 취약한 분들에게 재난은 훨씬 가혹하다.

 지난 장애인의 날,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남긴 글이다. 코로나는 비장애인과는 또 다른 이유로 발달장애인에게 가혹한 재난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코로나 상황을 재준이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가 덧셈을 배울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