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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언어학자라 불리는 스티븐 크라센(Stephen Krashen)의 강연을 봤다. 강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How do we acquire a language?"
"우리는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는가?"
크라센은 인간은 모두 동일한 방법으로 언어를 습득한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유의미한 차이 없이, 오직 한 가지의 방법으로만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특정 소화기관들을 순서대로 지나 음식물을 똑같이 소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크라센은 연구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는 데는 관련된 몇 가지의 요인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가지는 동기부여(motivation), 다른 한 가지는 자존감(self esteem), 마지막으로는 불안(anxiety)이다. 내가 이 강연에서 의미 있게 들었던 부분이 이 '불안'이라는 지점이었다. 크라센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불안감이 낮을수록 언어 습득이 잘 됩니다. 사실 제 가설은 진정으로 언어 습득을 하기 위해서는 불안이 0(zero)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언어 습득에 성공하려면 불안은 언어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어학 수업이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입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입력은 관통하지 못합니다. 언어 습득을 하는 뇌의 그 부분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막는 블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블록을 '정의적 필터(affective filter)'라고 부릅니다.... 촘스키 박사가 말하길, 두뇌 어딘가에는 언어 습득 장치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이 장치에 입력을 넣는 것입니다. 여기 입력이 있습니다. 낮은 동기부여, 낮은 자존감, 높은 불안감 : 블록이 올라가고 필터도 올라가서 입력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한 가지 방법으로,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습득합니다. 우리가 낮은 불안 환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입력을 받았을 때입니다."
재준이는 어린 시절부터 감각적인 문제나 불면증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아마 대부분의 자폐 아동들은 재준이와 비슷한 문제들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따라서 이 ‘코티솔' 수치로 스트레스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예상되는 결과이지만, 자폐아동은 일반아동에 비해 코티솔 수치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있다.
* 코티솔 : 스트레스(불안, 두려움, 아픔 등)를 받았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 만약 지속적인 스트레스 자극으로 코티솔이 계속 분비되게 되면, 우리 몸은 균형이 상실되어 내분비계와 면역체계가 망가지게 된다고 한다.
자폐와 코티솔에 관련된 여러 연구 중 내 눈에 들어온 연구들이 있다. 말을 할 수 있는 '고기능 자폐'아동의 코티솔 수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저기능 자폐'아동보다 낮거나 일반아동과 차이가 없다는 연구들이다. 즉, 자폐 아동 중 스트레스가 적은 아동들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적어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인지, 말을 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가 적은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는 위의 크라센 강연, 불안(스트레스) 환경 속에서는 언어를 습득할 수 없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여러 연구들을 찾아보며 나는 재준이의 스트레스 상황이 말을 습득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어지는 글
Canisius College. (2015, June 2). Elevated cortisol in autism, research shows. ScienceDaily. Retrieved July 23, 2020
Putnam, S. K., Lopata, C., Thomeer, M. L., Volker, M. A., & Rodgers, J. D. (2015). Salivary cortisol levels and diurnal patterns in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Journal of Developmental and Physical Disabilities, 27(4), 453-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