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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Jul 13. 2022

자폐인과 함께 사는 건 외로움이다.

우영우 아빠는 말하셨지...

 우리가 밤하늘에서 별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별의 빛이 빛의 속도로 달려 지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주의 팽창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끝없이 우주가 팽창하다 보면 별들은 지구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결국, 별의 빛이 빛의 속도로 지구로 달려오더라도 우주의 팽창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지구에서는 별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재준이를 키우며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나는 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빛의 속도로, 최선을 다해 가고 있지만, 결국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결말. 내가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멀어지기만 하는 존재. 나는 재준이가 팽창하는 속도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재준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이름을 불렀을 때 돌아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준아, 이재준”

나는 돌아 앉아있던 재준이의 이름을 불렀다. 역시나 재준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재준이의 등을 보며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다 “재준아, 엄마 좀 봐주면 안 돼?”라고 말했다. 그 순간 갑자기 속에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때 나는 자폐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자폐는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꽃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이고, 있어도 없는 것이다.


 나는 재준이 뒤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내가 우는 소리에도 재준이는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최근,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재준이 학교 수업을 빠지고 다녀왔기에 학교에 제출할 체험 학습 보고서를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었다. 입으로 소리를 내며 글을 쓰는데, 재준이가 내 목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그러더니 자꾸 타자를 치려고 하며 방해하려는 게 아닌가. 피곤했던 나는 '안된다'라고 엄하게 말하며 재준이를 나무랐다. 재준이는 안된다는 말에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마치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는 듯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소리 내어 글을 썼고, 빠르게 보고서를 완성한 후 프린트를 했다. 프린트를 한 종이를 꺼내자마자 재준이는 연필을 들고 다가왔다. 그러더니 보고서 맨 아래에 한 글자씩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 바다, 이재준, 엄마'


 원하는 단어를 다 썼는지 재준이는 뒤로 물러섰고,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를 뗬다. 아주 옅은 미소였지만 뿌듯해한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을 수 있었다.


 

 재준이는 내가 보고서를 쓰는 소리를 듣고, 우리의 여행 이야기였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기 머릿속에 있는 여행의 기억을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종이에 쓴 것이다. 나는 마음이 이상했다. 재준이는 내가 '안된다'라고 하자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만약 재준이가 계속해서 타자를 쓰고 싶어 했다면, 혹은 '내 체험학습 보고서니, 내가 쓰고 싶다'와 같은 말을 했다면, 나는 재준이에게 당연히 쓰라고 했을 것이다. 재준이는 분명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재준이는 그냥 잠깐 방해를 하려고 한 것 같아 보였는데..


 이렇게 나는 아직도 재준이를 잘 모른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떤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재준이는 보고서를 직접 쓰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그러니까 내가 아직도 재준이를 잘 몰라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닐까. 지금 재준이는 내 옆에 있다. 나와 같이 경험하고, 함께 느끼고 있다. 나는 왜 그 사실을 자꾸 잊는 걸까? 8년을 같이 살았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이렇게 자폐를 모른다.


 재준이는 꽃이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  응답을 했고  자리에 있었다.




 지금 밤하늘에는 빛의 속도로 지구에 다다른 밝은 빛의 별이 아주 잘 보인다. 나와 재준이는 그 별을 함께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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