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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Jul 15. 2022

멋진 엄마가 되기는 틀렸다.

나는 '꿀꿀'하는 엄마


 재준이는 겁이 엄청나게 많다. 아니, ‘많아 보인다’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겁이 많다는 건 재준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오해였으니까. 재준이는 시각 자극에 예민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정보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걸 몰랐던 나는 미안하게도 재준이를 ‘겁쟁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뽀로로를 좋아하는 재준이를 위해 한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뽀로로키즈카페에 간 날이었다. 거긴 모든 아이들의 로망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뽀로로와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공연도 하는 곳이며, 뽀로로가 살고 있는 집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는 동안 나는 왠지 멋진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뒀다 ‘짠’ 하고 선물을 해주는 엄마 말이다.


 긴 시간을 달려 키즈카페에 도착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을 공개하기 직전, 그러니까 ‘짠’을 바로 앞에 둔 그 때였다.

“악"

재준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도망갔다. 입구 앞에 있던 뽀로로 동상을 보고 겁을 먹은 것이다. TV로 보던 2D 뽀로로와 키즈카페의 3D 뽀로로 동상은 재준이에겐 완전히 다른 종류인 것이다. 동물 행동학자이자 자폐 당사자인 ‘템플 그랜딘’ 박사에 의하면 ‘자폐인과 같이 시각적에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적인 환경에서 아주 사소한 것만 잘못되어도 오싹함을 느낀다‘고 한다. 재준이는 난생 처음 보는 뽀로로 친구들 동상 앞에서 ’오싹함‘을 넘어 두려운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멋지게 ‘짠’은 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그날은 멋진 엄마는 커녕, 아이가 좋아하는 걸 구분하는 것도 실패한 엄마가 된 날이었다.



자폐 아이에게 2D와 3D는 다르게 보이나 보다ㅠ




 또 이런 적도 있었다. 재준이와 영화관에서 뽀로로 극장판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영화관의 뽀로로는 2D이므로 지난번처럼 놀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제대로 ‘짠’을 해볼 참이었다.


 처음 가보는 영화관이기에 재준이가 당황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미리 연습했다. TV로 뽀로로를 틀어 놓은 채로 영화관처럼 형광등을 끄는 연습도 하고, 소리를 크게 키워도 봤다.



뽀로로 극장판을 보러 갔다.

 

  연습의 연습을 거듭한 후 비장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다. 연습의 효과가 있었는지 재준이는 영화 시작 전 광고의 큰 소리에도 적응을 했고, 불이 꺼지는 순간에도 별 탈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보려던 뽀로로 극장판 제목은 <공룡섬 대모험>이었다. 재준이는 이전까지 공룡을 본 적이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동글동글하고 거대한 생명체가 뽀로로와 함께 나오자 재준이는 겁을 먹었다. 주변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반응을 보며 나는 재준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공룡과 뽀로로는 친구이며, 곧 뽀로로 친구들과 같이 모험을 할 것이며, 아니 그냥 공룡은 귀엽다. 무섭지 않은 귀여운 친구다’로 다급하게 결론을 냈지만, 결국 재준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한 첫 영화관 경험은 짠하게 끝이 났다.





 

 이렇게 겁이 많은 재준이가 그림을 그릴 때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처럼 거침이 없다.  과감하게 선을 그어 틀을 잡고, 망설임 없이 눈, 코, 입을 그려나간다. 그리려는 사물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는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한 번 쳐다본다. 디테일을 완성하기 위해 목표 대상물을 떠올리는 과정이다. 그렇게 기억을 떠올리곤, 그림의 작은 부분들을 완성해 간다.





 

 가끔은 그림의 특정 부분을 본인 마음에 드는 것으로 바꿔 그리기도 한다. 한동안 재준이는 돼지코에 빠져 뽀로로 친구들 얼굴의 코를 모두 돼지코로 바꿔 그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을 내 앞에 가져와서는 “꾸꾸(꿀꿀) 돼지”라고 말하며 꺄르르 웃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럴 때는 나도 같이 “꿀꿀”이라고 하며 재준이와 웃는다.




 나는 자폐 아이들의 감각 사용을 보며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시각’이라는 같은 감각을 사용하지만 어쩔 때는 겁쟁이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가장 용감해지기도 한다. 시골 마을에 살았던 겁쟁이 소년이 지구를 구하는 용감한 ‘슈퍼맨‘이 되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특별한 시각으로 재준이는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나는 재준이와 같은 세상을 보지 못해 알 수는 없지만, 엄마로서 이 세상이 너무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재준이의 특별한 감각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는 것은 내 인생의 숙제가 되었다.  


 나는 멋지게 ‘짠’을 해주는 엄마보다 ‘꿀꿀’을 해주는 엄마. 재준이에게 필요한 엄마가 되기 위해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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