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이를 키우면서
재준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우물의 넓이다. 내가 이렇게 옹졸한 사람인가 싶을 만큼 내 우물의 넓이는 터무니없이 좁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우물만 하게 보인다. 그래서 우물 속에서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이 너무 좁았다.
재준이가 크는 게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36개월, 자폐를 진단받은 후부터 그랬다. 빠르게 성장하는 다른 아이들 틈에 있는 재준이를 보는 게 무서웠다. 다른 아이들과 덩치는 똑같은데 혼자만 아기같이 행동하는 재준이. 혼자만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만 몸을 쓰는 게 어색하고, 혼자서만 노는 재준이.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우물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만 했다.
그 우물 속에서 나는, 나를 많이 원망했다. 아이가 자폐인 것도 내 탓이었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도, 불안이 높은 것도, 감각이 예민한 것도.. 셀 수 없이 많은 아이의 문제는 양육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면, 하늘이 너무 작았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재준이의 미래는 너무 작았다.
재준이는 앞으로도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회에서 고립되어 살아갈 것 같았다. 자립할 수 없기에 나와 남편이 죽으면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좁디좁은 우물 속에서 좁은 하늘만 봤다.
그런데 그때의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이 있다. 나를 원망하고 내 탓을 하기 위해, 아이의 못난 부분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재준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배워가며 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아이의 그 멋진 모습을 보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미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가 받는 가장 큰 벌은 바로 아이의 진짜 모습,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멋지게 성장해 나가는 재준이, 진짜 재준이를 보기 위해 우물에서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도르래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우물 속에서 보았던 아주 작던 하늘은 끝이 없을 정도로 넓었다.
어느 부모도 아이의 미래를 미리 재단할 수 없다. 아이의 미래가 보인다면, 그건 자기가 가진 우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물 밖에 나오고 나서야 하늘의 크기가 얼만큼인지 알게 되고, 하늘을 재단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현재와 미래의 나는 이렇게 바꿔나가고 있는데, 아쉽게도 과거의 나, 재준이를 보며 자책하는 일만 했던 그 시간 속의 나를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도르래를 내려줘 본다. 우물에서 나오고 싶을 때 언제든 타고 올라올 수 있도록.
그리고 우물 안에 갇혀 있던 과거의 나에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멋진 아이를 길러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