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자면, 우주에서 행성을 관찰하는 우주 탐사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밤이 되면 눈에 보이는 별들. 우주 탐사선은 그 별에 가기 위해 지구를 떠난다. 나는 그렇게 지구를 떠나 우주를 관찰하는 수많은 탐사선 중 하나,
'뉴 호라이즌스'다.
뉴 호라이즌스는 이전까지 인간이 다다르지 못했던 우주,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행성. ‘명왕성에 간 우주선이다.
명왕성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2006년 8월,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을 태양계의 행성에서 퇴출시켰다. 태양계의 행성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에서 ‘수금지화목토천해’로, 명왕성을 제외한 채 다시 정의되었다. 명왕성은 그렇게 갑자기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했고, ‘134340 플루토’라는 새로운 이름이 되어 ‘왜소행성’으로 분류됐다.
그렇게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잊혀진 행성이 되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이 사건이 잊혀갈 무렵,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우주 탐사선 하나가 명왕성에 도착했다.
지구에서 출발해 9년 6개월을 날아 명왕성을 만난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였다.
그렇게 나는 태양계에서 잊혀진 행성을 만났고, 그 행성을 관찰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행성 그러니까 자폐인인 재준이를 관찰하는 중이다.
최근 나는 재준이의 새로운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요즘 재준이는 단어를 연결해서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엄마 재준이 노란색 (엄마,재준이한테 노란색 줘.)”
과 같이 말이다. 이렇게 새로운 모습이 관찰되는 시기, 이때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이럴 때 재준이의 속도를 무시하고 나의 계획을 밀고 나가다,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재준이에게 실망을 하곤 했다. 이럴 때일수록 재준이는 다른 행성이고, 나는 관찰을 하는 탐사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구와는 다른 자전과 공전 속도, 다른 중력을 가진 행성. 나는 지금까지 관찰한 재준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우주로 나가게 된 일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나는 이전까지 지내왔던 것처럼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없나. 내가 살아왔던 곳의 법칙들. 이를테면 하루는 24시간이고, 1년은 365일, 발을 땅에 대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중력 속에서, 아기는 만 1살이 되면 걷고, 2살이 되면 말을 하는, 이 깨지지 않는 규칙과 공간 안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를 벗어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창백한 푸른 점’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다. 지구는 우주에 있는 수없이 많은 행성 중 하나일 뿐이다. 저 작은, 단 하나의 행성의 법칙을 무한의 우주에 적용하려 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행동이다.
지구 안에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아주 작게 보이는 그 별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아름다운 행성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재준이에게 더 이상 내가 살던 곳의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탐사선이 되어 관찰을 하고, 해석을 할 뿐이다. 지구 안에만 있는 사람들에게 우주에는 이런 행성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나는 뉴 호라이즌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찾아본 적이 있다. 명왕성 탐사 임무를 마치면 더 먼 우주, 지금껏 인간이 가보지 못한 태양계 바깥쪽을 탐험할 것이라고 한다. 남은 동력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먼 우주를 탐험하다, 수명이 다하면 무한의 우주 어딘가를 떠다니며 자유롭게 여행을 한 뉴 호라이즌스의 끝.
먼 우주의 행성을 관찰하다 수명이 다하면 무한의 자유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결말.
나는 그런 끝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