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주씨 Mar 19. 2023

자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기

그 많은 장난감을 두고...


 내가 근무하는 언어치료실에는 다양한 장난감들이 구비되어 있다. 아동과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매 회기마다 장난감을 사용하여 어떤 어휘나 문장을 교육할지 생각한다. 아동의 언어 수준에 맞춰 구성과 조작법이 단순한 장난감을 사용하기도 하고, 역할놀이 장난감을 활용하여 상황에 초점을 맞춘 치료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고민이 깊어지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자폐 아이들이다. 자폐 아이들은 그 많은 장난감 중 한두 개의 장난감에 꽂혀 40분 내내 가지고 노는 경우가 많다.무발화부터 한 단어 수준으로 발화하는 아이, 문장으로 발화하는 아이 등 언어 수준이 모두 다른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K는 40분 내내 망치 구슬놀이를 하고, Y는 과일 자르기만 한다. P는 망치 구슬놀이와 타요 주차장 놀이를 번갈아가며 하고, M은 소방서 놀이만을 한다.




초반에는 이 점이 장점이 된다. 특정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는 의도가 강하고 집중력도 좋아 이런 점을 이용하면 교육을 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 회기마다 같은 장난감만을 가지고 놀려고 하니 문제가 된다. 자폐 아동들이 선택한 교구들은 조작법이나 구성이 매우 단순하여 이끌어낼 수 있는 어휘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 장난감들을 이용해 이끌어낼 수 있는 어휘란 어휘, 문장이란 문장은 모두 교육을 했는데, 계속해서 같은 장난감만을 이용해서 놀려고 한다. 그렇다고 매 회기마다 똑같은 언어치료를 할 수는 없기에, 나는 저 장난감들을 생각하며 매 회기마다 새로운 조작법을 찾아내고, 새 어휘나 문장을 찾아내느라고 머리를 짜낸다.



그러던 어느 날, 망치 구슬놀이만 40분 동안 하는 K의 회기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나는 이 교구를 활용하여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어휘나 문장, 새로운 놀이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다. K는 이 단순한 장난감을 매번 같은 방식으로 가지고 논다. 망치로 색 구슬을 쳐서 떨어트린 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구슬을 아주아주 가까이서 본다. 아래로 내려가는 구슬과 K의 코가 닿을 듯 말 듯 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K는 떨어지는 구슬을 보기 위해 얼굴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이 단순한 놀이를 40분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한다.



망치 구슬놀이를 이용한 회기 계획을 세우며 도저히, 도저히 새로운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리를 양손으로 쥐어뜯던 나는, '아, K는 대체 저게 왜 좋을까? 이게 뭐라고 40분 동안 이것만 가지고 노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때, 이전에 어디에선가 읽었던 글이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공놀이가 좋아 온 인생을 공놀이에만 빠져 사는 사람이 있다는 글이다.  맞다. 공놀이가 좋아 하루 종일 공놀이만 연습하는 사람도 있고, 피아노에 빠져 1년 365일 피아노만 치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체 그게 왜 좋냐'고, '그 단순한 게 뭔데 하루 종일 그것만 하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자폐 아이들이 너무너무 좋아해서 푹 빠져있는 것에 내가 뭐라고 '대체 저게 왜 좋을까?'라며 물음표를 던지는 것인가.




10살이 되어도 하루 종일 뽀로로 친구들 피규어만 가지고 노는 재준이도, 40분 내내 망치 구슬놀이만 하는 K도, 타요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굴러 떨어지는 것만 관찰하는 P도, 단지 자폐라는 이유만으로 '그게 왜 좋냐'라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K의 회기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K가 좋아하는 망치 구슬놀이로 말이다. 나는 K가 처음으로 세 어절을 연결해 말을 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빨간색 공 주세요."

K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통해 얻은 말이었다.

'그래, 세 어절 짜리 문장을 더 생각해 보자.'

나는 K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방식과 똑같이 얼굴을 가까이 대보았다. 망치로 구슬을 치자 빨간색 구슬이 순식간에 내 눈앞을 지나갔다.

"빨간색 공이 지나가요."

그래, 이번엔 이걸 해봐야겠다.

"빨간색 공이 빨리 지나가네."

이것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